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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Nov 27. 2022

정말 반가운 Y군 이야기

1년 1개월 만에 만났어요

Y군에게 예정에 없이 연락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원래 내가 연락하고 싶거나, 누군가와 말하고 싶을 때 거의 주저하지 않고 실행하는 편이다. (심지어 회장한테까지) 물론 말하기 전에 한번 생각을 하거나 한 두어 시간 후 아니면 며칠 뒤에 내가 결론을 내서 말을 할 때도 많다.


내가 Y군한테 연락을 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는 대화다.


지나가다가 보기 드문 강아지를 봤을 때,

퇴근하고 창밖을 봤는데 노을이 예쁠 때,

예전에 같이 갔던 곳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날 때,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개기월식을 보라고 카톡을 했다.


Y군 : 어쩐지 오늘 달이 특이하다 싶었어요

Sorita : 얼른 소원 빌어

Y군 : 안 그래도 방금 소원 빌었어요

Sorita : 난 욕심부려서 여러 개 빌었어

Y군 : 어떤 소원 빌었는지 궁금하네요. 로또 당첨되게 해 달라고 빌었나요?

Sorita : 아니, 로또로 부족해서 명확하게 수치로 이야기했어.
 1,000억 벌게 해 달라고......


우리는 올해 초부터 한번 보기로 했는데 둘 다 뭔가 힘든 시기였다.

2022년 가기 전에는 꼭 보자고 했다. 그런데 11월에 내가 튀르키예에 가고 12월도 일정이 생기면서 이러다가 평생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 다가오는 일요일에 2시간만 보기로 했다. (진짜 서로 너무 바쁜 티 낸다)


장소는 압구정도 아니고 압구정 로데오다.

압구정 로데오도 내가 좋아하는 곳 중에 하나다. 조금 일찍 가서 오랜만에 갤러리아 백화점 구경을 하려고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다.


Y군 생일이 1달이나 지나버렸다. 카카오 선물하기로 띡 보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선물 핑계로 얼굴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갤러리아 백화점도 예전에 회원이었다.

회원 카드는 아마 내 방 작은 금고 (어렸을 때 엄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신 어린이 금고를 아직도 쓰고 있다) 안에 있을 거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역시 남다르다. 화장실 갔다가 나오니 핸드 밤이 비치되어 있더라. 무려 이솝 제품이었다!


종로 수송동 파란 기와집이 불가능하다면 압구정 로데오 근처에서 살고 싶은 것이 2순위다.

이유는 갤러리아 백화점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도 혼자 살게 된다면 여기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집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참 백화점 구경하다가 Y군을 만났다.

올해 힘들었다고 하는데 작년보다 살이 오동통했다. 참고로 나도 올해 ㅈㄴ 힘들었는데 체중이 중학교 때 몸무게로 빠졌다. 그래도 근력은 빠지지 않았으니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다.


출장을 다니고,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거의 못 먹다 보니 밖에 나오면 한식이 그렇게 좋다.

Y군도 자취를 하기 때문에 뜨끈한 돌솥밥에 순두부를 먹기로 했다.


가격은 알고 있던 것보다 천 원 비쌌고, 직원은 불친절했다. 만약 내 밑에 직원이었으면 내가 겁나 뭐라 했다. 이런 재수 없는 직원 한 명 때문에 사업이 망하는 거다


북창동 순두부는 계란을 마음껏 깨뜨려 넣을 수 있고 반찬도 무한리필이다.

그런데 이곳은 가격이 북창동보다 2천 원 더 비싼데 계란 하나를 추가하려면 천 원이나 내라고 적혀 있었다. 무슨 최고급 사육장에서 클래식 음악 들으면서 자란 닭도 아닐 텐데 이건 너무한다 싶었다. 앞으로는 북창동 순두부만 갈 거다. (공항점만 빼고! 공항점은 돌솥밥이 아니다)


계란을 좋아하는 나는 Y군이 비건을 하는 덕분에 계란 2개를 순두부찌개에 넣어서 먹을 수 있었다.

팔팔 끓는 순두부찌개에 서둘러서 계란 두 개를 깨뜨려서 넣고 휘휘 저어서 먹느라 음식 사진 찍는 걸 까먹었다.


밥 먹고 커피 마시러 골목길을 돌다가 크로와상이 주렁주렁 매달린 트리가 있던 베이커리 카페로 들어갔다.


내가 트리 사진 찍는데 Y군이 움직여서 본의 아니게 사진을 찍어버렸네


2층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자리 선정이 가장 중요한 나는 자리를 두 번 더 옮겨서 완전 구석 자리로 갔다. 우리 이야기는 극비라 들으면 안 되는 게 많기 때문이다


Y군이 사는 거니까 알아서 사 오라고 했더니 소금 빵과 바질 빵을 사 왔다. 내가 아까 노티드 도넛 몸에 안 좋다고 해서 그런지 크림빵은 하나도 안 샀더라.


아직도 청소년처럼 잘 먹는 Y군에게 내 빵까지 전부 양보했다.

우리는 딱 2시간만 보기로 했는데 2시간 50분 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Y군은 내가 그 나이였을 때 가지고 있었던 고민과 계획들을 너무 비슷하게 하고 있었다.

리틀 Sorita라고 여겨질 정도라서 그런지 나는 대화를 하면서 그 당시의 힘들었던 나 자신에게 하는 충고를 직접 하는 느낌이었다.


네 윗사람들이 우습게 느껴질 때도 있고 한심해 보이겠지만, 그 정도 자리까지 허투루 올라간 게 아니다. 언젠가 너도 그분들이 왜 그런 식의 판단을 했고, 하찮아 보이는 말을 했는지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거다.


지금 계획하고 있거나 하고 싶은 거 전부 다 해봐라. 무엇이든 배우고 습득하기 딱 좋을 때가 지금이다. 술을 끊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네가 잘 되면 알아서 사람들한테 연락이 오게 될 거다.


너는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꽤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힘든 상황도 내가 딱 버틸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주어지더라. 그 고비를 넘겨야 다음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 지금 포기하면 앞으로 일어나야 할 일들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잔소리 같아 보이는 말들이지만 나는 정말 내가 Y군처럼 사원에서 이제 막 대리로 올라갈 때의 나 자신에게 해주는 진심 어린 말이었다.


Y군과 헤어지고 나서 나는 압구정 현대백화점으로 왔다.

Y군이 오래전부터 나에게 주고 싶었다는 아주 무거운 선물을 들고 압구정 로데오에서 도산 공원을 지나 압구정역에 있는 현대백화점까지 왔다.


내가 압구정 현대백화점을 좋아하는 이유다. 난 카트 손잡이가 찝찝해서 물티슈를 준비했는데 카트 사용 전 비닐로 손잡이를 감싸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더라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저녁 반찬을 산 다음 나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Y군이 나에게 술을 선물해 줬다. 어쩐지 너무 무겁더라


오늘 저녁에 먹을 갈치다. 세네갈에서 온 갈치님이시다


숙소에 오자마자 짐을 풀고 Y군이 선물해 준 것을 드디어 개봉했다.


내가 좋아하는 파스텔톤 포장지다. 스티커도 간지 나네


포장지를 벗기니까 아주 두꺼운 상자가 나온다. 또 청와대 마크가 있다


소곡주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고모할머니들하고 장어 먹으러 갈 때 이 술을 가져가기로 했다. 이미 고모할머니께 일정 잡아 달라고 연락했다


잔은 차 마실 때 사용해야지. 잔이 마음에 든다


도자기 재질이라 선반이 있으면 진열해 놓고 싶은데 아직 좋은 공간을 못 찾았다.  일단 인덕션 옆에 둬야지


올해 3월 초 어떤 놈이 아군이고 적군인지 모르던 어느 날, 나는 Y군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연봉과 복리혜택을 주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는 지금 계속하던 일 하면서 더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오늘 내가 그때 대화 이야기를 하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얼마 주실 거냐고 이 녀석이 묻는 바람에 웃음이 터졌다.


일생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빠처럼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 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 자체도 요즘 시대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Y군은 현재 있는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끝까지 잘 버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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