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월곡산 산책

피곤해서 낮잠 자다가 시간이 늦어서 도봉산 대신 월곡산으로

by 문간방 박씨

신입은 오전에도 피곤해했다.

오후라고 졸린 게 아니었고, 내 교육 때만 피곤해하는 게 아니었던 거다. 다른 동료들한테 들은 이 소식에 나는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신입이 오전에도 눈을 비비고 엄청나게 피곤해하는 동안 나도 너무 피곤했다. 허리도 아파서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다. 정말 이 날은 집에 가서 눕고 싶은 날이었다. 머리가 멍해서 거래처에 수십 개의 메일을 쓰면서도 틀린 건 없는지 평소보다 한 번씩 더 확인했다.


교육을 하면서 평소보다 말은 적게 하고 일찍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부러 쉬운 단어를 골라서 해석해서 스스로 터득하게 하려 했다. 그런데 신입이 퇴근 후 영어동아리와 전화영어 수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해서 걸었던 내 기대와는 달리 문장 해석은커녕 단어 뜻도 헷갈려했다. 어쩌다 보니 해석까지 내가 해주고 있었고, 몸은 쉬고 싶어도 머리와 입은 계속 서류를 보고 읽는 법을 알려줬다. 신입은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듣고 있으려고 했으나 여전히 졸려했고, 나란히 앉아서 교육을 시키는 나도 이 모습을 보는 게 고역이었다.


우리 서로 이러지 말고 10분만 자고 합시다


라는 말을 하마터면 할 뻔했다. 나도 엎어져서라도 좀 쉬고 싶었다. 서로 각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카푸치노 한잔씩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피곤해하는 게 우습기도 했다. 빨리 끝낸다고 끝냈는데 시간이 1시간 10분이나 지나가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토요일이다. 어제 퇴근길에도 정신없이 잤다. 집에서도 푹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2시간 동안 정신 못 차리고 골골대다가 다시 침대에 가서 누웠다. 블라인드 치는 것도 귀찮아서 햇빛이 좀 들어와도 그냥 누워서 잤다. 깨서도 한참을 누워있다가 일어나 보니 도봉산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 집 근처 난이도가 최하인 월곡산에 가기로 했다.


20200321_154703.jpg 이 자그마한 언덕 코스도 오늘은 힘들었다
20200321_154915.jpg 월곡산은 다른 산보다 돌이 많은 느낌이다
20200321_155024.jpg 봄이 오긴 왔나 보다. 날씨가 따뜻했고 꽃이 이제 피고 있었다
20200321_155315.jpg 산에 이렇게 깔아 둔 길이 좋더라. 푹신푹신해서 밟으면 촉감이 좋다
20200321_155401.jpg 초록 초록한 새순이 예쁘다. 이래서 난 봄이 좋다. 내 생일이 봄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20200321_155417.jpg 특이하게 생긴 돌. 거북이 같이 생기기도 했다
20200321_155520.jpg 오래된 나무 옆구리에서 새 나무가 자란다. 색깔 대비가 선명하네
20200321_155555.jpg 봄의 상징 개나리
20200321_155958.jpg 산에 이런 표지판이 있어도 난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간다
20200321_160246.jpg 2주 뒤면 꽃 피겠다. 그땐 도봉산 가서 꽃구경해야지
20200321_160838.jpg 지금은 터만 남았다
20200321_161017.jpg 평소에 절대 안 찍는 파노라마 사진도 한번 찍어봤다
20200321_161229.jpg 재개발구역 한복판에 있는 우리 집. 빨리 재개발돼서 큰 마트도 생기고 스타벅스도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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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음료라더니 정말 참새들이 와서 물을 마시네
20200321_162112.jpg 월곡산 정상 한번 찍고 집으로 가는 길
20200321_162139.jpg 여름이 되면 여기서 물이 흐르려나?
20200321_162208.jpg 성북구에서 관리를 잘한 것 같다.
20200321_162224.jpg 물을 좋아해서 찍어봤네
20200321_162448.jpg 담장 옆 개나리
20200321_162859.jpg 월곡산 내려오는 길에 발견한 집이다. 200평 정도 되는 곳에 판잣집을 짓고 밭을 일궈서 누가 살고 있었다.
20200321_163155.jpg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 개나리가 예쁘게 폈네
20200321_175838.jpg 몸보신을 핑계로 점심 겸 저녁을 밖에서 먹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철판볶음밥.


내려오는 길에 월곡역 근처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 한 분을 봤다. 야채 옆에 뜯어진 마스크를 두고 '마스크 4천 원'이라고 종이 상자에 써 두셨다. 궁금증에 안에 몇 장 들은 거냐고 물었더니 1장 들었고 4천 원이라고 하셨다. 정작 할머니는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으셨는데 생계를 위해 길가에서 파시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씁쓸했다.


꽃샘추위가 물러나고 봄이 왔듯이, 사람들 마음과 길거리에도 봄바람이 불어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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