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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r 24. 2020

불길한 예감은 피해 가지 않는다

술 먹으면 집에 조용히 들어가 주시길

작년 겨울부터 퇴근 후 버스를 안 타고 30분 정도를 걸어 다니고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재개발구역과 따닥따닥 붙어 있는 빌라촌을 지나가야 한다. 걷다 보면 개성 있는 빌라와 골목길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골목길을 잘못 들어도 다른 길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또 다른 집이나 담벼락에 막혀서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온 적도 많았다.


겨울엔 저녁 6시만 넘어도 골목길이 깜깜했지만 가로등은 100미터에 하나 있을까 말까 다.  평소와 똑같이 벽화가 가득 그려진 담벼락 옆을 지나가는데 왼쪽에서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났다. 주민들이 슬리퍼를 신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종종 봤기 때문에 나는 담배 냄새를 피해서 빨리 걸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담배냄새가 나던 방향을 보니 큰 전봇대가 보였다. 그리고 전봇대 아래로 사람 발이 나란히 보였다. 전봇대에 사람이 가려질 정도이니 키가 작고 덩치도 작은 여자겠구나 싶었다. 그냥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갈까 라는 고민을 잠깐 했다. 그런데 되돌아가기에는 나는 이미 긴 골목길 절반 이상을 지나왔고, 조금만 더 걸으면 편의점이 나온다. 저 멀리 보이던 편의점은 그 날따라 더 환하게 보였다. 집에 가서 저녁을 빨리 먹고 싶은 생각에 나는 별 일 있겠나 싶어서 그냥 지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태연한 척 앞을 보며 지나갔지만 내 두 눈동자는 전봇대를 향했고 정체 모를 발에서 서서히 얼굴로 향했다. 그 순간 생각보다 꽤 덩치가 있던 남자가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간발의 차이로 그 남자를 피했다. 만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내가 지금껏 본 적 없는 엄청나게 취한 사람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니 왠지 내가 뛰면 또 달려들 거 같아서 최대한 속보로 걷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비틀거리면서도 내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정상적인 남자가 이 골목길에서 따라와도 의심스러울 판에 부랑자 같은 주취자가 따라오고 있다는 게 기가 막히고 짜증도 확 났다. 강단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들고 있던 가방을 집으로 오는 도중 2번이나 떨어뜨렸다. 아마 그 사람이 내 팔목이라도 잡았으면 입었던 코트는 불태워서 버렸을 거다.




19살에 상경해서 여성전용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부모님께서는 여성전용 원룸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없는 돈에 고시원도 아니고 무려 7.2평이나 되는 원룸을 4년 계약하셨다. 그때 2년 전세계약금이 부모님이 계시던 지방의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비싼 원룸이지만 샤워실이 너무 작아서 나는 근처 헬스장에 등록을 해서 운동을 하고 거기서 샤워까지 하고 집에 오곤 했다. 종로에서 저녁 8시에 영어학원 수업을 마치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씻고 나면 밤 11시였다. 평일 일과는 항상 똑같았다.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운동복을 챙겨서 현관문을 들어오는데 누가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내 방은 5층이라서 항상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그 날은 왠지 찝찝해서 계단으로 올라갔다. 내가 계단을 올라가면 자동으로 센서등이 켜진다. 처음엔 한 칸씩 한 칸씩 올라갔다. 올라가던 중 계단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센서등은 켜져 있지 않았다. 뒤따라오던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탔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3층까지 올라갔을 때 2층의 센서등이 켜지면서 점퍼에 캡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따라 올라오는 게 보였다. 처음엔 믿기지가 않아서 몇 초간 서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제 계단을 2계단씩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고 센서등은 시소를 타듯 켜졌다가 꺼짐을 반복했다. 처음 원룸에 들어왔을 때 안전을 위해 열쇠 장치를 다른 방보다 1개 더 달았다. 그런데 5층까지 뛰어 올라왔을 때 숨도 차고 손이 떨려서 열쇠 한 개는 풀었는데 마지막 열쇠 칸 구멍을 자꾸 헛짚었다. 어떻게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문 2개를 다 잠그고 현관 안전고리까지 걸고 나서도 안심이 안됐다. 그다음 날 오전 10시에 복도에 대걸레를 가지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고 난 후에야 집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초여름인데 짙은 회색 잠바를 입고 캡 모자를 쓴 사람을 며칠 뒤 슈퍼를 다녀오는 길에 마주쳤다. 트라우마인지 온몸에 소름이 끼쳤지만 그때 그 사람인지 아닌지 확신도 없었다. 그 사람은 땅만 보고 걷고 있었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원룸에 살면서 밤에 문고리가 살며시 돌아가는 걸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혼자 서울에 올라와서 독립을 했다며 해방감을 느꼈던 것은 불과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막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술에 취한 아저씨가 아가씨 술 한잔 더 하자며 따라 내렸을 때도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어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들 무관심했다. 그때 마침 옆을 지나가던 아저씨께 뛰어가서 상황을 얘기하니 우렁찬 목소리로 술 처먹었으면 집으로 곱게 꺼지라고 소리를 치셨다. 그러자 술 취한 아저씨가 꼬장 부리던 걸 멈추고 차렷 자세로 벽만 바라보고 있었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 고마우신 아저씨는 내가 사는 곳이 어디냐며 데려다주겠다고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 밖을 같이 나왔다. 원룸에서 혼자 사는 것만 아니었어도 그 아저씨한테 내가 사는 곳을 얘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 전 겪었던 사건이 생각이 나서 나는 집과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외치고 도망치듯 뛰어왔다.



교복을 벗고 서울에 와서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고 자유롭게 공부를 하게 될 줄만 알았던 내 기대와는 달리 4년 동안의 원룸 생활은 쉽지가 않았다. 불안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원룸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서 경비가 있는 안전한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이러한 경험 덕분인지 대학을 졸업 후 직장을 잡고 1년 후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사설 경비가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현관문 열기 전에 뒤를 살펴도 되지 않는 또 다른 아파트에서 마음 편히 지내게 됐다.


뉴스에 나오던 나와 비슷한 사건들을 볼 때마다 피해 여성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강산이 변할 정도의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의 일들이 생각이 난다. 지하철 역이나 버스를 타고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굳이 경험하지 않았어도 될 일들을 겪었던 나 자신을 다독거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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