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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r 27. 2020

벚꽃 꽃을 가장 좋아한다는 조카님

너는 봄에만 피는 벚꽃보다 사계절 활짝 피는 꽃이 되길 바라

고모 방에서 벚꽃 꽃이 제일 잘 보여요

라며 오늘 아침도 5세 조카님은 내 침대 위로 훌쩍 뛰어 올라왔다.


요즘 허전한 마음에 다이소에서 방울토마토와 대파 씨앗을 사서 두 개를 같이 심었다. 퇴근하고 나면 항상 내 책상 위를  궁금해하는 조카에게 5일 뒤면 이 화분에서 싹이 나올 거라고 기를 했다. 그랬더니 내가 출근하고 나서도 수시로 방에 와서 싹이 나는지 확인을 했나 보다.


오늘 아침에는 세수를 하는데 조막만 한 손이 내 잠옷 하의를 잡아당긴다. 너무 잡아당겨서 서로 민망해지자 슬그머니 옷을 올려준다. 내가 비누로 눈도 못 뜨고 쳐다보니 화분에서 흰 게 보인다며 빨리 따라오란다.


새싹이 신기한 조카님
새순이 5개 올라왔다. 사진으로는 착한 사람들 눈에만 보인다

한 달 전 우리 집에서 리모컨 쟁탈전으로 신경전을 벌일 때 조카가 리모컨은 아빠가 들어오면 나에게 주겠다고 선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저녁 7시면 조카랑 나는 건조기 너머로 120번 버스에서 양복 입은 남자가 언제 내리는지를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라마를 틀어놔야 한다는 고집에 나는 두 손 다 들었다.


그러던 조카와 함께 텔레비전을 본 것은 '클래식'과 재방송으로 나오던 '동백꽃 필 무렵'이었다.


큰 숨 쉬는 버릇을 어디서 배워왔는지 클래식을 보는 동안 주기적으로 큰 숨을 쉬던 조카 눈에도 손예진은 예뻤다고 한다


통통한 고모보다 손예진이 예쁘단다

N번방으로 코로나보다 더 시끄러웠던 며칠 전 나는 범죄자가 인터뷰를 했다는 기사를 보고 뚫린 입이라고 뭐라 지껄이는지 뉴스로 보고 싶었다.


마침 그 날 야근이었던 아빠가 9시가 돼도 안 들어오니 조카는 리모컨을 넘길 수 없다고 강하게 버텼다. 그러던 중 조카가 색종이접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 나는 몰래 뉴스를 틀었다.

N번방 범죄자 인터뷰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만화껐다고 서럽게 우는 조카님

펑펑 울면서 고모는 왜 고모 하고 싶은 대로만 하냐고 소리치는데 그 순간 날 원망스럽게 보던 엄마 눈빛에 나는 여기서도 비빌언덕이 없구나 싶었다. 이제껏 회사에서도 안 울고 버틴 거 집에서라도 펑펑 울까 아주 잠깐 고민을 했다.


어제 외근을 두 탕 뛰고 나서 꿈도 안 꾸고 푹 자던 나를 조카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6시 30분에 문을 두드리며 나를 깨웠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설 때면 회사 늦게 가라고 현관문 중문을 막고 나에게 안기는 조카가 이제는 눈에 밟힌다.


코로나로 두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조카를 2월 에 만났을 때 서로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어린이집 휴원이 매주 늘어가면서 이제 우리는 한 달 넘게 동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됐고 또 서로의 영역에 대해 이해도 하게 된 것 같다. 회사에서 힘들 때 먹으라며 쌀과자와 말랑카우를 호주머니에 넣어주는 조카를 오늘도 칼퇴를 해서 얼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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