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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r 18. 2020

신입사원을 보며

신입사원 교육을 하며 처음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던 내가 생각이 나서

취업은 어렵다.

취업하기 쉬웠던 때가 있었나 싶다.

부사장님도 본인이 취업할 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씀하시고, 내가 24살에 이력서를 내던 시절에도 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더 얼어붙은 경제 상황과 코로나로 모든 공채와 면접 일정이 연기가 되면서 당장 먹고살기가 어려워졌다.


서울에서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아서 대학 4년을 버티면서 나는 뭐라도 돈을 벌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나 인턴 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한글 이력서는 기본이고 영문 이력서까지 되는 대로 다 뿌려봤지만 전부 탈락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들어가고 싶었던 인턴 자리는 무보수였지만 워낙 유명한 외국계 제약회사여서 경쟁률이 치열했다. 그곳에 들어간다고 정규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다들 이력서에 그곳에서 일했다는 한 줄을 더 넣고자 했던 것이다.


11년 전 어느 여름에 모 공기업 채용에 1차 서류전형이 통과가 돼서 여의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2차 시험을 보러 갔었던 기억이 난다. 나와 비슷한 연령은 물론이고 당시 지금의 내 나이인 많은 사람들이 '신입'으로 지원을 했었다. 고등학교를 통째로 빌릴 정도로 응시자가 많았던 시험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그리고 논술이었다. 국, 영, 수는 내가 풀어도 어렵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만점 아니고서는 떨어지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논술은 학교 다니면서 종종 발표했었던 '스포츠마케팅' 주제를 떠올리며 김연아를 예로 들어서 '노력'과 '끈기'에 대해서 1000자 정도를 썼었던 것 같다. 시험을 마치고 아 또 떨어졌겠구나 라는 허탈함에 주말의 텅 빈 여의도 거리를 걸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몇 주 뒤 그 시험에 합격을 했다는 연락이 왔고, 나는 최종 면접을 보기 위해 본사로 갔다. 가서 보니 나를 포함해서 6명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 6명 안에 포함되었는지 의문이다. 최종 면접 때는 내 가슴까지 오는 큰 흰 종이에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서 그림이든 글이든 써서 30분 간 임원 3명 앞에서 설명을 해야 했다. 나름 전공을 살려서 열심히 했다고 했는데 나는 그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내가 지원했던 그 어느 회사보다 연봉이 셌기에 7.5평 원룸에서 잠도 이루지 못하고 몇십 번이나 자다가도 이불킥을 했었다. 그로부터 3달 뒤 그 회사보다 연봉이 500만 원이 적은 회사에 불행 중 다행으로 입사를 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됐다.


회사에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어떤 식으로든 이직을 하거나 퇴사를 했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한 사람도 있었고, 다소 감정적으로 사표를 던지고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 개중에는 나에게 같이 그만두자고 오랜 시간 설득을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만두기 위해 인수인계를 할 사람도 없었고, 지금의 일을 정리해놓고 나간다는 게 퇴사보다 더 큰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한 회사에 오랜 시간 다니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세무조사와 같이 숨통을 죄는 일도 많았지만 그런 일들도 부딪히고 대응해 나가면서 더 많은 걸 배웠다.


3월 2일 자로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교육을 하면서 나 나름대로 최대한 기초적인 정보 전달을 했다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목이 아프도록 설명을 하면서도 신입사원의 피곤한 얼굴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신입사원의 입장에서는 사무실에 나오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다. 짬이 찰수록 자리는 넓어지고, 햇빛 잘 들고 구석진 자리에서 근무를 한다. 하지만 신입의 경우에는 누구나 보이는 자리에서 긴장된 상태로 눈치도 살펴야 하니 피로함이 크다. 하루에도 몇 잔의 커피를 마시는 우리 신입을 보며 11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내일모레 있을 2차 교육을 위해 교육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30문제를 만들어서 문제를 풀어보라고 시켜보려고 했다. 그런데 괜히 시험 보는 것처럼 문제지를 던져줘서 부담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30문제 푸는 대신 나란히 앉아서 실무 서류를 보면서 차근차근 다시 알려주는 걸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2차 교육 땐 우리 직원이 피곤해서 서서 듣는 일이 없도록 커피도 한잔 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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