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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r 17. 2020

처음으로 출근을 원했다

설거지는 극한 노동이다

서열 1위 조카님이 집에 머물게 되면서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일이 늘었다.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훈훈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건 먹기만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먹을 땐 즐거우나 치울 땐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절대 모자라게 상을 차려서는 안 된다. 남더라도 많이 담고, 누구나 손이 닿을 수 있게 같은 반찬은 양쪽으로 각각 둔다는 게 엄마의 철칙이었다.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고 고기를 좋아하는 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불판으로 삼겹살과 소고기를 구워댄다.


10년 넘게 회사에서 밥을 먹다 보니 밥은 먹기만 하고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카페에 가면 내가 원하는 원두를 골라서 라테든 플렛화이트를 아이스나 뜨겁게 내 기분대로 사서 마셨다. 그런데 집에서 밥을 먹게 되면 내 전자동 커피머신으로 커피까지 전부 내려드려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나면 또 온전히 컵이 설거지로 나온다. 지난 주말엔 해도 해도 끝이 없던 설거지를 하면서 오른쪽 어깨가 내려앉고 허리가 뻐근해짐을 느꼈다. 불판을 세척할 때는 오른쪽 손목도 아프면서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다 끝난 거 같으면 무심한 듯 싱크대 안에 차곡차곡 쌓이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누가 "나는 밥만 먹었는데 왜 이렇게 설거지거리가 많아?"라고 했을 때 내 안의 잠재된 폭력성이 튀어나올뻔한걸 꾹 참았다.


차라리 출근하는 게 낫겠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설거지는 정말 극한 노동이었다.


그래도 먹기 전 항상 훈훈한 밥상을 보며 잊지 않고 사진은 찍었다.

먹을 땐 정말 행복했던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설거지하기 힘든 불판에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반찬 필요 없이 밥하고 국 그리고 김만 꺼내도 될 텐데...
오리기름에 마늘과 브로콜리를 같이 볶았다. 깻잎에 무쌈을 올려서 싸 먹으면 느끼하지 않고 맛있다. 옆에 문어숙회도 쫄깃했다
꼬막과 두부, 김치전 그리고 김치찜이다. 이 날은 설거지가 많지 않았고 유난히 맛있게 먹었던 날로 기억하네


이번 주 일요일에는 설거지거리를 피해서 밥도 나가서 따로 먹고 영화나 한편 보고 올까 계획 중이다. 무료 영화표 기간이 3월 30일 까진데 코로나가 이렇게 장기전으로 나올지 몰랐다. 맨 뒷자리에서 마스크 쓰고 영화 보고 설거지 필요 없는 외식이나 하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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