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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r 30. 2020

3월의 마지막 주말 아침은 특별하게

주말 아침엔 빵 대신 호박고구마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


누가 보면 우리 엄마는 사람들한테 거짓말로 돈을 크게 뜯긴 적이라도 있는 줄 알 거다.

엄마는 차라리 돈을 뜯기는 건 상관이 없는데, 상대방이 모를 거라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인간들이 가장 혐오스럽다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어제 도봉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군고구마 파는 노점상을 봤다. 양철통에 군고구마를 굽는 냄새가 12,000보를 산행을 하고 내려온 내 발길을 단단히 잡았다. "꿀 호박고구마"라고 써 놓고 고구마도 따로 팔고 있었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나는 엄마를 찾았다.


나는 돈을 벌면 내가 사고 싶은 거나 쓰고 싶은 거 전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주문하거나 마트에서 식료품을 사면 엄마는 기가 막히게 똑같은 상품을 더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내셨다. 그러면 나는 내가 산 물건들을 환불을 해야 하는 수고를 매번 해야 했고, 몇 천 원에서 몇 백 원 차이로 S기업 손녀도 아닌 주제에 돈을 함부로 쓴다 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우리 집 돈 관리는 아빠가 하고 계시지만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한 교육은 엄마한테 전부 배웠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 댁에 가서 용돈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엄마는 내 통장을 만들어 주셨다. 외갓집에 가면 그 당시 아빠 월급의 10배 이상을 벌었던 의사 이모부를 보며 외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아빠 월급은 좀 올랐냐고 항상 물으셨다. 어렸던 내가 외할머니의 근심을 덜어들이고자 당시 아는 가장 큰 숫자인 100만 원을 받는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매번 외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집에 갈 때면 항상 돈 귀한 줄 알고 돈을 철저히 모아야 한다고 하시며 내 손에 배춧잎 몇 장을 쥐어 주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지갑이 있었고, 그 지갑 안에 동전과 지폐는 천 원, 오천 원, 만원 순서로 정리를 해 뒀어야 했다. 돈을 호주머니 안에 그냥 넣는 것은 돈에 대한 큰 실례였다. 오히려 호주머니 안에 돈을 그냥 넣고 다니던 사람들이 흘린 돈을 어렸을 때 종종 주웠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이것 봐, 천 원짜리를 그냥 구겨서 호주머니 안에 넣으니 이렇게 구겨진 상태로 흘리지" 라며 길거리에서 교훈을 주셨다.  


교복을 벗고 상경할 때 엄마는 서울에서 소매치기 안 당하게 지갑은 가방 가장 안쪽에 넣을 것을 강조하셨고, K은행 체크카드를 만들어서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셨다. 그때 엄마 품에서 떠나서 서울로 가는 기차 밖에서 엄마는 나를 보며 펑펑 우셨다. 사람들이 그랬단다. 딸애를 서울로 보내 놓고 나면 이제 딸하고 같이 살 수 있는 날은 없다고... 대학 졸업하자마자 시집가서 남의 식구가 될 거라고들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고, 나는 대학 졸업하고 사람 대신 회사와 결혼을 하게 됐다. 그리고 정년퇴직하고 나면 제주도에 집을 사서 평화롭게 살 거라던 아빠의 굳은 결심은 서울에 집을 사는 걸로 생각을 바꾸셨다. 이렇게 우리 세 식구는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도봉산에서 엄마는 여기엔 호박고구마랑 밤고구마가 섞여있는 건데 이 사람이 호박고구마 인척 적어둔 거고 밤고구마가 비율이 훨씬 많다며 내 손을 잡고 끌고 나오셨다.


나는 단점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 얼굴과 이름 기억을 못 한다. 잘 못한다기보다 아예 기억을 못 한다. 그래서 외근을 나가서나 주말에 걸어 다니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디서 봤다고 연락이 오지만 나는 아무도 만났던 기억이 없다. 직업상 여러 거래처를 만나야 하는데 3번 정도는 빈번하게 봐야 누가 누군지 좀 기억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주 가끔은 누군가가 본인과 비슷한 다른 사람을 본인이라고 속이며 나를 만나러 와도 난 모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도 한다.


사람도 구별 못하는데 호박고구마랑 밤고구마를 내가 어떻게 구별을 할까? 어쨌든 엄마랑 나는 집 근처 마트에 와서 진짜 호박고구마를 샀다.

 

고구마 굽는 사진 찍으려고 했는데 누가 보면 내 셀카인 줄...



이사 와서 오븐을 처음 써보는 거라 굽기 시간을 잘못 보고 9시간 59분 구울 뻔했다. 난 또 이 표시가 9분 59초인 줄 알았지....



고구마 굽는 시간을 못 기다리고 치아바타에 올리브 오일 찍어 먹은 후 그 접시에 고구마도 먹었다. 접시를 한번 씻고 사진 찍을걸 그랬다


한 개당 천 원짜리 호박고구마다. 노릇노릇하니 맛있었다. 맛있는 고구마는 먹을 때 목도 안 메인다


수능 끝나고 군고구마 장사도 해보고 싶었는데 고구마 굽는 통이 생각보다 꽤나 비쌌다. 나한테 안 팔려고 그분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는데 그때 당시 고구마 통과 리어카까지 해서 100만 원이라고 얘기를 하니 단번에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수능 끝나고 시간이 남았을 때랑, 대학생 시절 그 흔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나는 정규직 입사가 가장 쉬웠다.


매 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으로 호박고구마 6천 원어치 사서 구워 먹으며 주말에 쉬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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