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7~09.06 기내식 사진 특별할 것 없어요
내가 **씨 꼭 책임지고 남미 데려갈 거야
입버릇처럼 매번 말씀하시던 L 이사님이셨다.
누구 하나 업무를 책임질 사람이 없었던 중남미 사업이었다. 멕시코 선적 첫 시작부터 꼬일 대로 꼬인 L 이사님은 한참 밑에 직원으로부터 전화로 쌍욕까지 찰지게 드셨다. 나는 중간에서 눈치를 보며 업무를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업무는 둘째 치고라도 인품은 회사에서 1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능력이 되는 한 L 이사님을 도와 드리고 싶었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그렇듯이 내가 업무를 손대기 시작하면 그 업무는 내 것이 된다. 나는 그걸 각오하고 중남미 업무를 맡았다. 다른 업무도 벅차서 매일 몇 시에 퇴근할지도 미지수인데 중남미에서 오는 대부분의 메일은 스페인어로 왔다. 출근하자마자 그 날의 목표가 "칼퇴"였던 나는 자꾸 메일이 스페인어로 오니 이걸 번역하고 충분히 이해를 한 다음에 다시 영어로 메일을 쓰자니 다른 업무보다 시간이 몇 배로 더 걸렸다. 내가 왜 이런 것까지 하고 있지? 그냥 난 사원 월급만큼만 해도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중남미 업무 맡기 이전부터 나는 진심으로 회사를 빨리 그만두고 싶었다. 여기 더 있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았다.
12시간 이상의 시차가 나기 때문에 한번 메일을 보내면 중남미 거래처로부터 답변은 2일 뒤에나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영어로 메일을 써도 최대한 일목요연하게 썼다. 조금이라도 복잡하게 썼다가는 거래처에서 되묻는 메일이 와서 시간은 또 지체됐다.
그래서 나는 스페인어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 스페인어 가능자가 지금까지 없고, 그렇다고 스페인어 학원비가 회사에서 지원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거래처에서 오는 스페인어 메일을 전부 외우기 시작했다. 영어와 비슷한 단어라서 심리적 거리감은 생각보다 덜했다. 처음 인사말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스페인어로 메일을 보내니 중남미답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업무 소통은 그나마 빨라졌고, 거래처에서 오는 스페인어 메일의 수준은 훨씬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구글 번역기와 스페인어 단어 사전을 항상 켜 놓고 틈날 때마다 좋은 문장은 메모해 놓고 암기하느라고 오후 시간이 훌쩍 갔다. 이것도 나름 꽤 재미있었다. L 이사님도 먼 타국에서 업무에 자신감을 좀 더 얻게 됐고, 성과가 나면서 나에게 남미를 데려가겠다고 하셨던 약속이 조금씩 현실화되어 가는 듯 보였다.
물론 극소수의 반대가 엄청났다. 5년도 안된 사원 나부랭이가 임원도 안 가본 남미를 간다니 자존심도 상하고 질투도 나셨을 것 같다. 위에서 굳이 내려와서 소사원한테 윽박지르기도 하셨지만 난 별로 겁도 안 났다. 이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사람도 금방 안 보게 될 줄 알았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대답도 안 했다.
어느 날 회사 메일로 비행기 티켓이 날아왔다. 눈을 비비면서 다시 봐도 인천-브라질행이었고 내 영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 당시 유일하게 직항이었던 D항공을 타고 미국을 경유해서 브라질을 가게 됐다. 가끔 유럽에 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12시간도 벅찼는데 24시간 비행을 어떻게 견딜까 싶었다. 그래도 회사 비용으로 브라질에 간다는데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이라도 상관없었다.
비행기에서 사육당했던 기내식 사진이다. 좁아터진 이코노미석으로 모시게 돼서 미안하다고 L 이사님은 말씀하셨지만 그때 나는 짐칸이라도 들어가서 가고 싶었던 남미였다.
올해 9월 말에 예약된 영국 티켓은 상황 보고 취소할 계획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1월에 세부를 갔다 온 것도 기적 같다.
남미 가는 비행기라고 기내식이 특별할 건 없지만, 사진을 보니 그때 당시 추억이 마구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