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초졸의 아버지, 고졸의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온 나는 가난이 창피한 적이 없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지원되는 물품이나 현금지원에도 나는 스스로 지원받아야 하는 학생이라고 손을 들고나갔었다. 애써 괜찮아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난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 배움을 잘 따라는 모범생이었다. 말 잘 듣고 착한 모범생이었기에 나 스스로 그렇게 학습된 행동을 보여준 것이었을 것이다.
가난함은 경제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식의 가난함도 포함이었고 주변에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지인도 없었으며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되기 위해 먼저 험난한 길을 걸어가 본 어른도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경제적으로도 학력으로도 경험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나에게 편안하고 단단한 길을 만들어 준 적이 없었다. 그저 월급을 받는 족족 아끼고 아끼며 살다 사기당하고 무너지고 또 가난하고 또 큰일이 생기고 또 작은 돈을 모으고 또 배신당하고 사기당하고 반복되는 삶이었다. 부모님을 위해 누구나가 부러워했던 나의 그림 그리는 재능을 포기하고 어쭙잖은 실력은 나의 삶의 족쇄가 되어 한이 되어 괴롭게만 만들어 갔고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그저 가난하게 살지 않으려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살아왔다. 그 시절의 가난이나 불우함은 괜찮다며 스스로 되뇌며 나는 갑옷을 만들었고 그 갑옷은 얼기설기 세상의 경험조차 하지 못했던 작은 손으로 만든 그것이었기에 부서지기도 쉬웠다. 나도 부모님과 똑같이 사기를 당하고 작은 월급을 모으기만 하다가 또 사기를 당하고 사람에게 당하고 나는 다를 거라 하며 지낸 시간을 오롯이 부모님의 길을 따라 걷는 인생이 되고 있었다.
배우지 못함이 이렇게 한이 될 줄은 몰랐다. 알아야 한다. 공부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라든지 일을 하는 방법이라든지 어떤 일이든 배움이 가난하고 마음이 가난하고 돈이 없어 가난하여 어떤 것을 옳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어린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부딪히고 잃어보고 바닥을 치고 이것보다 더 최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갔다. 올라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를 닮은 내 아이는 나의 삶을 닮아선 안되었다. 나는 배워야 했다. 알아야 했다. 이렇게 사는 삶이 아닌 보통의 삶을 흉내내기라도 하려면 나는 그것을 배워야 했다. 사람들을 지켜봤다. 그들을 살펴봤다. 있어 보이려는 흉내를 냈다. 그리고 가진 것 없는 나의 단 하나의 재산은 지켜나갔다. 사람의 기본이 되는 예의와 정직함,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나의 존엄성은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책을 읽고 교양을 쌓았다. 기본적인 예의와 사회적인 관습을 알아갔다. 굶어도 교향악단 정기 연주회는 다녀왔고 전시회도 다녀오고 철학책도 읽고 있어 보이려 노력했다. 그 있어 보이려는 노력이 나의 부모님은 쓸데없는 일이라며 나무라셨다. 그리고 밟고 누르셨다. 돈이 되지 않는 일, 그저 쓸데없는 일을 하는 멍청한 딸이라며 혼내셨고 돈을 벌어오라며 내몰았다.
아마 부모님이 아시는 길은 그것 하나였을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런 삶.
앞은 보이지 않고 그저 눈앞에 하루를 보내기에 바빠 숨 막히는 그 삶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것만이 살아가는 길이라 믿고 계시는 당신들에게 나는 나의 길을 보여줘야 했다. 그렇게 나의 자식도 그 삶을 가라고 내몰고 싶지 않았다. 당장 돈은 들어오지도 않았고 굶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배웠고 배움의 인연을 기회 삼아 발품을 팔아가며 부탁드린다고 또 조아려가며 기회를 잡아갔다. 나도 당신들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싶었다. 내가 지나온 길 위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도 분명 진흙 속에 빠져버릴게 분명했다. 나는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먼저 걸어온 사람들의 넓고 깨끗하고 단단한 그 길을 걷고 싶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숨 쉴 시간도 없이 달렸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 두 분의 연봉을 합한 금액을 받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40살이 가까워지는 지금 나의 삶이 잘 살아왔다고 그게 맞는 것이었다고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님은 60-70대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부모님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 내가 조언을 해주고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있다. 그리고 나를 닮은 나의 딸은 - 다정하고 예쁜 말을 하며 마음씀씀이가 풍족한 아이가 되었다.
예의 바르고 말을 예쁘게 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한다는 칭찬을 자주 듣고 있다.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가진 것이 없이 살았지만 그간의 나의 삶이 헛된 것은 아니구나 돌아보게 된다. 감정이 가난하지 않고 베풀 줄 알고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나의 딸. 그 모습은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었다. 아마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아이의 삶에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은 것 같다. 오롯이 나의 것이던 나의 인생은 저물었다. 그러나 아이의 세계를 지켜줄 수 있는 좋은 엄마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때로 지금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길을 잃을 때 올곧게 자라고 있는 나의 아이눈에 비친 나를 돌아본다. 나는 너의 거울이고, 너는 나의 거울이니 내가 길을 잃지 않고 올곧게 걸어갈 수 있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고 내가 낳은 나의 딸이 나에게 이야기한다. 엄마는 최고라고.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너의 세계에서 최고가 된다면 그것이 최고의 보상이 아닐까. 나는 부자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