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천장의 커피 얼룩은 '살아있다.'

그 날 폭력의 기록.

by TIQUE

그 사람이 언제, 어떤 말로, 어떤식으로 또 나를 상처를 입힐지- 내가 스스로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나는 폭력에 노출되었었다. 눈을 뜨고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그 사람에 눈에 띄지 않은 공간에서 나는 숨어 숨을 쉬었다.

5년의 긴 폭력 끝에 법이 정해준 보호의 정도에서 나는 숨을 쉬고 있지만 이따금씩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나는 또 그 날로 돌아간다.

폭력이 머문 자리에는 그 날의 기억이 살아있다. 나는 그저 아무일 없는 평범하고 즐거운 하루 였는데 오늘은 어째선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집 안 천장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 날, 그 사람의 폭력이 거기 있었다. 저 천장의 얼룩은 마시던 커피를 통째로 집어 던졌던 폭력의 잔재였다. 천천히 돌아보니 천장에는 내가 살고자 발버둥 치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빨래를 개던 작은 방엔 집어던진 무선청소기때문에 패여버린 바닥의 자국이 있었고 딸아이의 밥을 차려주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왔다갔다 했던 엄마로서의 주 무대인 부엌에 조차 깨진 그릇과 던져진 수많은 물건들 덕분에 여기 저기 패여있었다. 참 많기도 하다 - 싶었다. 나는 살기 위해 얼마나 바둥거렸었던지 바닥의 패인 자국들은 나의 발버둥이었다. 나에게 다가 오지말라고, 나를 상처 주지 말라고 ,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그 사람에게 던졌던 수많은 나의 방어였다. 목이 졸리고 패대기쳐져도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이사를 간다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운 좋게도 형편에 맞게 집을 구한다 해도 이사비며 시기에 맞게 아이의 어린이집이라던지 나의 일이라던지 모든게 다 새롭게 준비를 해야하는 일이었다. 주변에서는 쉽게들 부모님의 집으로 가라고 했지만 나야말로 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엄마인데 나는 또 아이에게 큰 울타리가 되어 줘야할 사람이니까 멋진 엄마로서 살아갈거니까 해보는데까진 해보자- 하는 고집도 있었다. 그 고집으로 고작 집안의 조그만한 흔적들로 그날의 기억이 밀려와 마음이 고통스러워질거란 생각은 못했었다.

고개를 숙이고 여러가지 정신과 약을 먹어가며 나 스스로를 갉아 먹으며 살아오는 동안 나는 저 폭력의 흔적들을 보지도 못할만큼 시야가 좁아져있었구나. 저렇게 천장에 커다랗게 얼룩이 남았는데도 이미 2년이나 지난 시간인데도 나는 발견조차 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봤어도 오늘처럼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를일이었다. 작은 보조 계단을 가져와 물티슈로 닦아보았다. 손이 닿는 부분엔 쉽게 지워졌고 구석 구석 이미 찌들어버린곳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큰 얼룩이 그저 물티슈 한장으로 어느정도는 지워졌다. 아마 나도 그 얼룩마냥 보이는 곳만 잘 닦여 있었던 모양이다. 전혀 피해자같지 않으세요. 치료받으신 분 같지않으세요 하는 그런 말들은 아마 저정도의 물티슈로 닦은 나의 마음의 부분이었을것이다.

5년의 폭력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2년이 지나고 있는 이 시간 동안 나는 상처를 마주하지도 못하고 괜찮아야만하는 나를 보여주기에만 급급했던것 같다. 이 흔적들은 완벽하게 내가 괜찮을리가 없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제 인정하자. 나는 폭력의 피해자였다. 나는 처절하게 살고자 했던 생존자였다. 고개를 들어 흔적을 찾는데에 2년이나 걸린 것을 슬퍼할 이유는 없다. 나는 큰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깨끗히 낫지도 않은, 오히려 살이 차올라 흉이 되어버린 몰골이 되었지만 나는 살아있다.

물티슈 한장으로 오늘은 닦아내 보기라도 했다. 어디에 어떤 흔적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기라도 했다. 나는 이제 그 날 그 곳에 폭력에 노출 되어 있던 나를 마주하고 다음으로 나아 갈 수 있는게 아닐까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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