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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의 서랍 Mar 14. 2016

hiver '16 . 바이 코리아! 봉쥬르 프랑스!

2주간의 프랑스 체류기


여행을 간다.
나의 낭만적인 시월드, 프랑스로.

당일 새벽까지 짐을 싸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아이의 하루치 유아식과 프랑스에서 먹일 밑반찬을 만들면서 나의 2주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의 시작은 준비하면서 설레는 시점부터라고 하는데, 여행의 목적지가 시월드인 관계로 티켓, 숙소 등 모든 준비를 남편과 시부모님이 미리 해두어서 난 떠나기 하루 전에야 여행이 시작된 셈이다. 어렸을 땐 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것이 참 설레고 재미있었는데, 나이가 드니 무조건 편한 것이 좋다.

여행으로 집을 비우는 기간이 꽤 길어서 우리는 혼자 있게 될 고양이가 걱정되었다. 고양이는 외로운 것보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 더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집에 머물게 하고 환경을 최대한 신경 써주기로 했다. 그런데 구정 연휴 때문에 물 급수기 배송이 늦어진단다. 매일 깨끗한 물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남편은 오랫동안 쓰지 않고 뇌 어딘가에 쟁여두었던 최소한의 물리 지식을 꺼내어 임시 급수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유리병까지 동원하여 엄청나게 복잡한 설계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나는 좀 더 간단한 설계를 제안했다. (나는 직접 만들지는 못하면서 개선 아이디어에만 능한 사람이 분명하다) 집에 있는 통으로 만들어서 참 볼품이 없다며 옥토넛의 고양이 캐릭터 스티커로 디자인을 마무리하는 남편의 귀여운 행동에 풋 웃음이 터졌다. 급조한 급수기를 설치해놓고 하룻 밤 동안 테스트를 하겠지만, 우리가 예상한 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여러 개의 통에 물을 담아 놓기로 했다. 제발 잘 지내주기를 바란다.


출발 아침.

공항 검색대를 지난 후, 아침부터 쫄딱 굶은 우리 부부는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 위해 카페(파리크라상)로 들어갔다. 대충 끼니를 때울 생각이었는데 샐러드와 샌드위치가 너무 훌륭해서 나와 남편은 미소를 줄줄 흘리며 경쟁하듯 먹어치웠다. 집에서 아이와 항상 '그 밥에 그 반찬'을 먹던 나는 오랜만에 먹는 퀄리티 있는 샌드위치에 비로소 여행의 시작이 느껴졌다. 여행지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 한두 시간의 여유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뭉게뭉게 키워주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공항 면세 구역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즐거운 얼굴이다. 물론 29개월 아이와 12시간이 넘는 비행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닥치면 고생하기로 하고 일단 여행의 도입부를 최대한 즐겨주었다.

파리크라상
출발~~~!!


아이와의 비행은 힘들지만 아이 덕분에 패스트 트랙도 이용하고, 프라이어리티 라인으로 비행기도 탈 수 있으니, 아이는 이미 아이 노릇? 을 다 한 셈이다. 이제 부모 노릇만 잘 하면 된다. 하하.
우리 바로 뒤에 가수 정준영(28)과 씨엔블루의 이종현이 서 있었는데, 한창 젊고 어린 그들은 게이트를 지나서 비즈니스 클래스로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다소 씁쓸한 기분으로 '이코노미 피플'을 반겨주는 통로로 걸어 들어가면서, 아이에게 "너는 20대에 자비로 일등석을 타는 멋진 사람(자수성가한 부자)으로 자라거라~"라며 아이에게 덕담(부담) 한마디를 잊지 않고 해 주었다.

비행기에 탄 아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능숙하게 안전벨트를 혼자서 찰칵 잠그고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게 벌써 너의 네 번째 비행이니, '이 정도쯤이야' 표정에 엄마는 조금 안심이 되는구나. 우리 잘해보자.
탑승할 때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는 뽀로로 색칠공부 세트를 선물로 주는데, 그 아이디어가 참 좋다. 아이는 벨트를 채우자마자 "밥! 밥!"을 외쳤고, 하늘로 올라가서 벨트 사인이 꺼지면 줄게~라고 설명해 보지만 쇠귀에 경 읽기... 탑승할 때 받은 뽀로로가 힘을 발휘하여 아이의 배고픔 타령을 십 분 정도 늦춰 주었다. 정말이지 뽀로로는 살면서 우리를 여러 번 살렸다.

벨트 사인이 꺼지고, 아이에게 준비된 죽을 대령했다. 아침에 먹은 것과 똑같아도 역시 비행기 안에서 먹으니 더 맛있나 보다. 두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는 주변 탐색에 나섰다. 아이는 가장 먼저 앞 의자에 붙은 화면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터치를 해 보더니, 정전식 터치에 익숙한 아이는 정압식 터치가 답답한지 짜증을 부렸다. 아... 우리는 예상보다 너무나 일찍 비장의 무기 '아이패드'를 꺼내 줄 수밖에 없었다. 무겁게 들고 온 온 갖 스티커 북과 크레용 모두 싫단다. 12시간을 아이패드로 버텨내야 한다.

아이는 생각보다 투정도 부리지 않고 8시간 넘게 잘 버텨 주었다. 한국 시간으로 밤 10시가 넘어가자 아이는 졸려 하며 쉽게 잠에 곯아떨어졌다. 남편과 나는 '우려와 달리, 아이와 장시간 비행할만하네~'라는 의미의 눈빛을 교환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잠든 지 30분도 되지 않아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면서 잠에서 깼다. 생 살을 건드리며 올라오는 어금니 때문이었다. 티딩젤을 미리 구매할 수 없었던 우리는 약국에서 추천해 준대로 해열제를 먹이려고 하는데, 이러다 기절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면서도 해열제 스푼이 다가오는 것이 보이긴 했는지, 안 먹겠다고 더 자지러지게 운다. 승객의 수면을 위해 조명을 다 끈 시점이라 정말 엄청난 민폐였다. 게다가 우리 자리가 비행기의 꼬리 부분이어서 일등석으로 올라가는 계단참 부근에서 아이를 달랠 수밖에 없었는데, 아마 정준영이 두 다리 쭉 펴고 자다가 아이 우는소리에 화들짝 깼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계속 울었다. 주변 사람들이 달래려고 하면 더 울었다. 남편 얼굴을 보고도 울었다. 도착 2시간을 남겨놓고 나는 북유럽 하늘 어딘가에 내 영혼을 몽땅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30분가량을 펑펑 울던 아이는 해열제 약기운이 느껴졌는지, 서서히 잠잠해졌고 그 뒤로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아이패드를 하셨다. 1분도 자지 않고 이렇게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보기는 처음이다. 아이가 아이패드를 하는 동안 간간이 영화를 보긴 했지만, 한 편(마션) 보는 데 7시간이 걸렸고, 두 번째 영화(스티브 잡스)를 채 끝내지 못하고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다. 비행기 삯을 최신 영화 시청비로 가끔 착각하는 나로서는 왠지 본전을 뽑지 못하고 뷔페식당을 나오는 것처럼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시월드는 파리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차로 한 시간 더 가야 하는 곳에 있다.
파리에서 낭트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우리는 한 박자 쉬었다. 너무(x100) 피곤했다. 바로 쓰러져 자고 싶은데 비행기와 차를 더 타야 한다니. 어른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아이는 면세점의 반짝반짝하는 명품들 때문인지 낮과 밤의 구분을 이미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는 듯, 에르메스 가방들을 구경하며 태양 같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현실 적응 면에서 네가 나보다 낫구나.

면세점 명품 강아지와 대화 시도


아이는 두 번째 비행기 안에서 결국 잠이 들었다. 벨트 사인이 들어와도 아이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승무원은 보조 벨트를 가져와 아이와 나를 한 몸으로 엮어 주었다. 그래 우리는 이렇게 한 몸이었지. 아이가 나보다 덩치가 더 커지고 가끔 늙은 엄마를 무시해도 이렇게 항상 꼭 안아줘야지.

낭트에 거의 도착하려는데,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서 비행기가 많이... 아주 많이 흔들렸다. 날씨가 흐린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심하게 흔들려서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착륙을 시도하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비행기... 프랑스어로 기장의 설명 방송이 나오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살려만 주시면, 남편이 앞으로 아무리 날 힘들게 하거나 실망시켜도 무조건 다 용서하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대인배처럼 살겠노라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그 지역에 폭풍이 심해지고 있었고, 활주로에 갑자기 비행기가 몰려서 우리는 10분간 주변을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여행 가는 것은 좋지만 비행기를 타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싫다. 기내식도 싫다.

스모 선수가 나를 덮치면 이런 기분이겠지... 할 정도의 무거운 느낌으로 내 몸의 2/3을 차지하며 잠이 든 아이를 끌어안고 게이트를 나가니 시부모님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반겨주신다. 어머니는 나를 오랜만에 만나니 가슴이 '둑흔둑흔' 하다고 표현하고 싶으셨던 모양인데, 영어 표현이 어려우니 힙합 가수처럼 손을 가슴에 얹고 심장이 뛰는 모습을 재현하신다. 우리 시어머니 너무 귀여우시다. 우리는 양 볼에 가벼운 키스를 나누고 우리가 묵을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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