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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Aug 28. 2018

10시의 글쓰기

꼼꼼나라 적응기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쉬는 시간이 쉬는 시간같지가 않다.


체크 리스트를 써서 지워가는 방식은 십수년간 해봤지만

몇 년전부터 안 하기로 했다.

가계부 결산이나 잔고를  맞추는 일 따위도 평생 성공해본 적이 없다.


이런 내가 2중의 정체성을 가진 직장인이 되고 보니,

날마다 흉내내기 바쁘다.

알고 나면 별거 아니야라는 말에 나는 스윽 문을 닫는다.

알고 싶지 않아. 흉내만 낼 작정이다.

자발적 무지의 상태.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이 급 상승,  백만 볼트를 찍는다.

눈을 감고 답을 찍는 아이처럼, 감으로 넘어가는 서류의 더미들.

날마다 새로 생각나는 루틴한 과정들.

놀랍고도 놀라운 실적의 대양들.

내가 찬양하는 기록의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어찌되었든 나는 기록과 승인의 꼼꼼한 훈육을 거치는 중이다.


이것이 몸에 배면 나는 자유로와질까?

아니면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될까?

무엇이든 기능적이 된다는 건 편하고 이로운 일이라는 신념들은 정말일까?


내가 사랑하는 삶은 불확실성을 사랑하는 호기심 혹은 야성, 무지함을 버리지 못하는 상태.

문명의 이로움을 스스로 벗어던질 수 있는 기개와 대책없는 투신.


어딜 가든 두 개의 구조 사이에 낀 미아같은 나의 자리는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정체성은 언제나 사막에 떠있는 신기루처럼

이상적이고 아름다와서, 아직 내 것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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