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 쑤 Aug 24. 2018

10시의 글쓰기

커피 내리기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 지는 20년 쯤 된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책에는 커피 원두를 사러 간다는 멋부린 문장으로 끝나는 수필이 실려있었다.  그 작가가 누구인지 생각은 안나지만, 고통스러운 일제 시대 한복판에서 서양 문물에 취해 한가롭게 커피 향 얘기나 늘어놓는 그 수필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슬쩍 경멸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할아버지나 할머니 대로 올라가면 나의 조상 중에는 분명 그런 인물들이 있었을 것 같다(나의 선조들의 가족사는 복잡한 내 성정과 내면을 마치 역사로 풀어놓은 것 같다)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는 환경만 허락되면 남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언제든지 발현되려고 한다. 감각의 세계가 주는 사적인 즐거움은 그만큼 강력하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때 즈음부터 커피 원두를 2~3 Kg씩 사와서는 냉동실에 넣어두고 매번 조금씩 갈아서 커피를 내려 드셨다. 어릴 적엔 녹차를 즐기시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커피 맛에 푹 빠지셨다.  그 시절 나는 아버지 옆에서 실험도구와도 같은 신기한 싸이폰이나 모카포트로 내린 에스프레소를 몇 모금 얻어마시곤 했다. 이후 한참 뒤에는 직장동료들과 국내에 상륙한 신기한 커피집에 들락거렸다. 같이 간 동료들이 사약같은 에스프레소에 놀랄 때, 나는 커피마니아 후배와 함께 로마에서 마셔봤던 거네, 집에서 아빠가 드신다네 하는 허세스러운 태도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다. 당시의 커피는 내게 기호로 가득찬 상징물과도 같았다.


사먹는 커피가 남들을 만날 때만 뿌리는 비싼 향수 같은 것이었다면,

입덧 이후 커피 도구들을 장만해 내리기 시작하면서

커피는 나의 세계로 들어왔다.

양파를 까거나 고기를 뒤집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커피 필터를 반듯하게 접어 울지 않게 드리퍼에 올리고,

원두가 적당히 갈렸는지 보면서,  평평하게 필터에 커피를 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또, 물의 온도를 맞추거나, 물을 떨어뜨리는 방식, 원두가 부푸는 것을 보면서 재빨리 달팽이 모양으로 물을 붓는 일들은 신성한 의식이나 실험의 순서처럼 정확한 타이밍과 의미가 있다.


내가 내린 커피 맛이 마음에 든다.

그 맛은 늘 다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 내 커피를 마시면서, 맛있어요 라고 말할 때는 살짝 묘한 기분도 든다.

정말? 갑자기 나는 아무맛도 못느끼게 되버린다.

이 맛은 아주 평범하고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고 말이다.


나의 기호와 노동과 내가 보낸 시간,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어쩌면 그렇다.

나는 20년을 커피를 내렸지만, 그것이 썩 괜찮은지 아닌지 아무에게도 검증 받지 않고

오로지 내 즐거움만을 위해서 내려왔다.

믿었던 것은 오로지 내 감각뿐이었다.


나의 감각을 다른 이에게 묻는 것,

그것은 나를 온전히 믿어야 하지만

또 너의 언어를 존중하겠다는 의미.

우리는 떨어져 있는 미지의 존재이지만

실은 늘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것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작가의 이전글 10시의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