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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Dec 02. 2019

눈치는 자기중심적이다

지난 11월2일 뉴욕타임즈엔 <행복과 성공을 위한 한국인의 비밀> (원제: Korean secret for happiness and success)이란 제목으로 '눈치'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쟤는 눈치도 없나?"

우리 사회에서 눈치가 없다는 말은 집단 안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당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집단주의적인 사회에서는 소속이 생존과 깊이 연관된다. 집도 절도 없다는 말은 오갈데가 없으며 따라서 알아서 챙겨주는 곳이 없는 고아같은 신세란 뜻이다. 소속을 중심으로 안과 밖이 확실히 나뉜다. 이 안에서는 서로가 챙겨주고 뒤를 봐준다. 내 손에 당장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최소한의 생존은 걱정안해도 된다. 생존의 불안을 집단적 돌봄으로 해결하는 공동체. 그러니 자손을 이어가고 집안에 인물이 나오는 것은 공동체의 과제이다. 감히 딸 둘만 낳고 버틴다는 생각은 할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집단의 돌봄은 집단의 문화를 알아서 체득한 자들에 의해 이어지며 어떤 개인의 '눈치 없음' 은 징계나 방치의 충분한 근거가 된다. 다시 말해 눈치가 없다는 말은 소속되길 원치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그런데 전근대에서 근대, 근대에서 현대로 축지법을 써서 건너온 우리 사회는 혈연이나 지연처럼 경험과 세월로 소속을 결정지은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이런 눈치 문화를 계승했다. 1차 사회가 아닌 2차 사회에서도 눈치없는 이는 소속감, 나아가 충성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 영역이 정해진 집단 안에서 행동의 타이밍이나 반경의 적정범위를 가늠하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는 '눈치 없는' 사람은  '이기적'이거나 '미성숙한' 사람이다.

이런 집단의 압력은 꾸중과 칭찬의 이중 강화 작용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예의바르고, 싹싹한 아이는 눈치를 빨리 채는 아이다.


내가 결혼해서 제일 놀란 것은 '눈치가 없다'고  비난하는 남편의 말이었다. 말하자면 집단주의적 문화가 나의 원가족보다 강한 셈인데, 이 말은 나에겐 외계어와도 같았다.

대체 어떻게 눈치를 보라는 거지? 

나는 자라면서 눈치를 보라거나, 눈치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무수히 곱씹게 되었는데 숨겨진 의미는 너는 참 이기적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눈치는 배려나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교환으로 기대되는 사랑이나 인정을 갈구하는 약자들의 몸에 밴 습관이다. 따라서 자동적이고 무사유적이다. 타인을 관찰하지만,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타인을 편하게 해주고 받을 것을 챙기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눈치는 자기 중심적이다.   


눈치가 없다고 비난할 이유가 없다.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면 된다. 자신의 불편함을 말로 표현하기조차 싫다면 관계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라는 것은 자신이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관계에서 약자가 되는 그 잠깐의 순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실은 그 관계는 수평적이 아니라는 언질을 하고 싶은 것이다.  


눈치를 보라는 말보다는 

당신이 나를 관찰한 바에 의하면 내가 어땠을 것 같냐고 물어보라. 

그리고 상대의 말을 들어라. 

내가 미처 관찰하지 못한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바램을 이야기하면 된다. 

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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