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 쑤 Jun 06. 2022

헤어짐

어제는 친구를 만났다. 셋이 만나기로 한 날, 아들이 친 사고를 남편이 대형사고로 만들었다.

그 자리에 나가지 못했고, 그날 기차를 타고 온 친구가 동네 사는 친구에게 책을 맡겼다.

책을 전해주겠다고 진작부터 문자를 남긴 친구에게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


그 친구는 언제나 상대가 바쁜데 연락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바쁠 땐 그냥 바쁘다고 하면서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귀한 거니까 그래도 곧 시간을 내겠다고 했는데 이 주가 지났다.


그 사이에 뭔 일인가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내가 SNS에 쓴 글 밑에 동네 친구가 댓글을 달았고, 나는 장난스럽게 댓글을 또 달았다.

새로운 사람이 또 댓글을 달아서 보려고 들어갔더니 댓글이 사라졌다.

나는 처음엔 다른 사람이 지운 걸로 생각했다.

정황을 파악하려고 다른 사람한테 톡을 보내 놓고 기다렸는데 그 친구에게서 톡이 왔다.

댓글을 지웠으며 너의 포스팅에 자기가 수준 낮은 글을 써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밑에 단 다른 사람의 댓글이 불쾌했나? 그 사람이 나랑 친한 사람이라 솔직히 말 못 하는 걸까? 에이 무슨 소리야. 항상 뭔가 불편하면 움츠러드는 친구라 조심스러웠다. 괜찮아 그냥 두지~ 뭔가 아쉬워 그렇게 말했지만 그 친구는 자기가 잘 못 쓴 거 같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일이 그냥 찜찜하게 남았는데 뭐 별일도 아니었으니까 또 시간을 내서 만나자고 한 거였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나는 몹시 불쾌해졌다.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책 받으러 나왔지, 바쁜데 뭐하러"

무슨 소리지? 카페를 찾아 들어가는 내내 얼굴이 굳어 있다.

저녁을 먹지 못해 뭐라도 먹을 수 있는데 들어가자고 하니까 어색하게 자기 아들이 바지를 못 샀다는 얘기를 했다. 자기가 사준다고 했는데 같이 나갔으면 샀을 걸 못 샀다는 둥.

카페에 들어가더니 자기가 사준다고 한다. 그래 매번 그 친구가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다는 걸 알기에 내가 샀으니까 친구가 사고 싶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메뉴를 보더니 어 커피가 뭐 이리 비싸 이런다. 나는 그래도 가만히 있었다. 산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이 정도는 한번 얻어먹어도 됐다. 하지만 계산대 앞에서 통신사 할인 앱을 찾으면서 계산을 안 하고 있다. 아휴 이거 왜 이렇게 안돼? 말하는 친구의 말투에 짜증이 확 섞였다.

나는 그냥 내가 낼게 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민망하고 불쾌했다.


자리에 앉아 나눈 이야기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자신이 싫어하는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에게 황당하다는 얘기였다.

요지는 내가 댓글로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이 형편없다는 걸 사람들 앞에서 드러냈다는 거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지만 깊이 생각하라고 계속 강요했다.

깊이 생각하면 안 그런 일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뜬금없이 여자가 옷을 벗네 마네 하는 얘기가 웃겼고, 나는 그걸 이어서 재밌는 댓글을 달았다. 중요한 건 그 애가 수치심을 느낀 거였지만 문제는 내게 던져졌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러는 건 아니라는 얘기였다.

나는 답을 정해놓고 화를 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거 같다.

너무너무 화가 나서 너랑 더 이상은 친하게 지낼 수 없겠네 하고 싶었나? 아마 그런 거 같다.

정말 마음속 깊은 곳에선 그 친구를 얕보는 거였을까?

아니었다. 나는 그 친구가 하는 놀라운 일들을 진짜로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도 친구가 가지는 한계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계가 있는 일들이, 한계로 인한 자동적 반응이 섞여있는 선한 노력이 웃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게 산다. 아니 그렇게 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 알고 선택하지 않고 그렇게 안 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마저도 몰라서 그냥 아무렇게나 사는 경우가 많다.

그 친구가 예민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 짜증이 날 때가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건 그냥 지나가고 왜 그래 하고 한번 더 칭찬해주거나 북돋아 주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때 내가 정말 그 친구랑 주고받고 있었나? 생각해보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친구는 금융이나 생활력이나 이런 부분에서 야무지고 나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생각해보면 그 친구를 북돋기 위해 잘 모르지만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어떤 부분들에 대해 충고하면 그냥 응응 하고 들어주긴 했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를 응원하고 싶어 권한 대로 한 일도 있었다. 그게 솔직하지 않은 거라면 그래 솔직하지 못했다.


결국 이야기를 잘 끝냈다

중간에 사실 소리를 지르고 냅다 나가버리고 싶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다.

8년 전에 사이가 틀어진 어떤 친구도 생각해보니 그렇게 멀어졌다.


방금 카카오톡으로 선물이 왔다.

메시지를 열지 못하고 플랭크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했다.


사람이란 게 참 진하고 끈적끈적하다.

플랭크를 하고 있는데 끈적끈적하게 그 애 얼굴이 떠올랐다.


톡을 열어보니 힘들 때 마시라는 메시지와 함께 시원한 음료수였다.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열기 전에는 이런 거 안 줘도 된다고 하려고 했는데 으레적인 말에 단호함이 풀렸다. 더 이상 주고받을 것이 없을 때 관계는 종결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복 강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