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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Jul 27. 2023

오늘치 우울

 울고 싶은 기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들을 선착장에 내려주고 돌아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는 길, 아이와 나는 말없이 걸었다. 습기를 머금어 무거운 바닷 바람, 내리꽂은 햇살은 어릴 적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던 그 빛처람 살갗을 태우려는 것 같았다.

 필요없다고 아들이 내려 놓은 지갑을 내가 챙겨왔어야 했다. 갑자기 물건을 찾아야한다는 아들 말에 같이 정신이 없어지고 허둥지둥하게 된다. 확실한 근거 없이는 집요하게 지시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뒤에서 준비해놓고 기다려 주지도 못하는 나. 그저 같이 허둥대다가 아이에게 민폐가 되는 기분.

 오는 차 안에서 불현듯 말했다. ” 근데 표 사려면 주민증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아들의 외마디에 속상한 나는 나를 탓하기 시작한다. 어른이 되서 그런 상식쯤 제때 척척 나왔어야지. 게다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 왜 그 순간엔 떠올리지도 주장하지도 못했을까.

 나는 하고 싶은 잔소리를 꼭꼭 씹어 먹은 후에 가볍게 말했다. "신분증은 항상 갖고 다녀, 그거 무거운 것도 아니고. " 하고 싶은 말을 늘 다 못한다. 아니면 내 딴엔 잔소리 안하는 멋있는 엄마나 하려는 거였을까. 몸 속의 출렁이던 액체들이 무겁게 멈춘다. 주민증이 없었지만 다행히 터미널의 무인 발급기에서 등본을 출력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간단한 일이었다. 아이는 군인들이 모여있는 자리로 가야 한다고 했다. 멀리서 잠시 보다가 나는 미련없이 돌아 나왔다. 핸드폰을 보는 아이를 스토커처럼 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돌아오는 고속 도로는 하염없이 막혔다. 작열하는 대기에는 어릴 적 보았던 흰 구름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여름이 되면 참 심심했다.할일이 없어서 방에 누워있다가 창밖에 펼쳐진 하늘 그림을 일없이 보곤 했다. 눈처럼 흰 구름이 몽실몽실 쌓여 있고 하늘은 얼마나 시원한 파랑색이었는지.


아이는 빨리 자란다. 내가 어린 아이였던 시간들이 어제같은데 내 아이가 군인이 되었다.

아이는 늘 엄마가 빨리 늙는다고 걱정을 한다. 나는 엄마가 늙을까봐 걱정한 적이 없다. 엄마는 평생 본인이 늙는다고 슬퍼하셨다. 그런 엄마에게 동정이나 눈길을 주지 않고 당연히 엄마가 거기 있을 걸 의심한 적이 없었다.

 엄마가 정말 늙으셨다. 아빠도 나이가 드셨다. 오면서 내내 나는 Rameau의 음악을 들었다. 나의 몸 속에는 쳄발로 소리와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와 비올라 소리, 첼로 소리가 들어있다. 내 세포 어딘가에 음악 조각들이 박혀있고, 누르면 악기 소리가 나올 것이다. 아버지의 정서는 표정이 아닌 소리였다. 아버지가 늙었다. 아버지는 그러게 사라지면 안되는 사람인데 점점 작아지고 있다.

내가 죽고 나면 아이는 걱정하던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고 슬퍼하겠지.

나는 한번도 제대로 걱정해본 적이 없는 부모의 상실을 어떻게 감당할지 겁이 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가 사라지고 내가 사라지고 종국에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까지도 사라지는 세상을 나는 생각해낼 수가 없다. 나는 내 삶의 모든 순간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이랗게 미숙한 존재에게 인생은 한번 뿐이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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