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있다는 게 실감나는 순간

인종차별

by Anne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시선이 느껴지면 그곳을 쳐다본다.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럼 나랑 눈을 마주치고 눈을 피하지. 처음 한 달 동안은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뭐야? 싶었는데. 오늘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온다.


외국인, 아니 동양인으로 서양에 있는다는 건 정말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노력이 필요한 거다. 쳐다보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다르게 생겨서 쳐다본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옷도 유별나지 않다. 검은색 긴팔티와 검은색에 흰색 줄이 있는 면바지를 입었을 뿐이다. 머리스타일도 그냥 하나로 묶은 것이다. 매일 샤워하는 청결 상태는 무난하다. 그럼 무엇인가?



IMG_1395.heic


2월의 어느 날, 3개월 여행의 중반쯤.

비엔나의 트램 안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더니 두 명과 눈이 마주쳤다. 한 명은 바로 뒤의 남자, 한 명은 거의 한 칸은 떨어져 있는 거리의 할머니. 뭐지 싶어서 3초간 쳐다봤는데, 둘 다 내 눈을 피하지 않다가 3초가 되자 눈을 피하더라. 내 몸에 뭐가 묻었나 싶어 쳐다봤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냥 쳐다본 거구나. 동양인 여자애가 타니까 쳐다본 거구나.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그전에도 여행하다 시선을 느낀 적이 몇 번 있다. 그때는 그냥 어쩌다 눈이 마주친 거겠지. 그냥 한 번 쳐다본 거겠지. 내 머리스타일이 신기한가? 했다.(땋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근데 이제는 알겠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서야 알게 되었다. 인종차별 당한 거구나. 난 저들에게 신기하게 생긴 동양인일 뿐이구나. 한 명의 사람으로 나의 스타일이나 얼굴이 달라 쳐다본 게 아니구나. 기분이 매우 더러워졌다.

그리고 위의 글을 썼다.


나는 진지하게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특이한 모습이었는지도 생각해 봤다.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씁쓸했지만 쓸데없는 의심을 안 하고 싶어서였다. 참 그랬다. 그들은 무례하게 시선으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데 내가 뭐라고 그들을 함부로 의심하고 싶지 않아서 배려하는지. 과도한 의심과 오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오래 해보거나 살아본 사람은 안다. 그런 시선은 그냥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


해외여행을 하면서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든 건 사실 다른 무엇보다도 저 시선이었다. 돈이 드는 것, 현지식과 입맛이 안 맞는 것, 말이 안 통하는 것, 관광지가 예상과 다른 것,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몸이 힘든 것. 다 견딜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해외를 나가면 겪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고, 몸이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시선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밖에 나가있는 것,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 자체에 트라우마를 만들어 간다. 그전에는 현지인들 또는 여행자들에게 말 거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과 이야기하며 새로운 것도 듣고 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선에 대해 깨닫고 난 후, 괜스레 '내가 말 거는 것을 짜증 나게 생각하면 어쩌지. 무시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말을 걸기 힘들었다.


몇 번의 다른 인종차별도 당해봤다.

대놓고 니하오 하며 얼굴 들이미는 인간도 만나봤고, 멀리서 자기들끼리 '차이나, 차이나' 하는 소리도 들었다. 식당 직원이 대놓고 늦게 들어온 사람의 주문을 먼저 받고 내 테이블에 오지 않는 일은 꽤나 몇 번 겪은 일이다. 사실 그런 건 그냥 화내고 끝낼 수 있다. 똥 밟았네 생각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한 번은, 호스텔 숙소 라운지에서 여행 계획을 짜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남자애들 무리가 '나는 중국인이 싫더라~' 하는 이야기들을 하더라. 옆에 중국인일지도 모르는 동양인인 내가 떡하니 있는데. 영어를 못하는 줄 아나 싶어서 외국인 친구랑 일부러 영어로 통화도 했다. 근데도 계속 동양인에 대한 혐오 발언들을 하더라고.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때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외국은 환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냥 이유 없이 동양인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라는 것을.


*


예전부터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해외에서 사는 것의 어려움에 재정적 문제, 언어적 문제, 문화적 문제, 인종차별 문제 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게 인종차별이 될 수 있는지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연 설명을 해보자면, 지나가다 마주치는 사람을 한번 쳐다보는 것. 나는 그게 인종차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한국에서 길거리를 지나가다 나와 다른 옷차림을 보거나 미모가 아름답거나 외국인이면 한번 쳐다보게 된다. 그런 건 자연스러운 거다. 근데 3초 정도의 빤히 쳐다보는 것, 지나쳤는데 뒤돌아서 다시 계속 쳐다보는 것, 그건 명백히 다른 시선이다. 해외 여행하며 몇 번이나 그런 시선을 느껴봤다. 그럴 때면 해외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가끔은 이렇게 깊이 들어가 생각하는 스스로가 한심해질 때도 있다. 그냥 무시하자. 자기들끼리 그렇게 생각하라고 해. 나는 내 일만 잘하면 돼. 근데 그게 쉽지 않은 것도 잘 안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생각을 하다 보면 무언의 유리벽이 하나씩 깨지는 것 같다. 내가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는 것이니까. 나의 세상이 넓어진다고 생각하면 하나의 상처로 남기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