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게 기차역을 놓쳤다

황당한 해외여행 일화

by Anne

오스트리아 빈에서 당일치기로 멜크 수도원을 가는 날이었다. 빈에서 멜크로, 멜크에서 빈으로 왕복 기차는 미리 예매해 두었다. 기차에 타서 편안히 가기만 하면 되었다. 당일날, 그렇게 기차를 타고 가다가 곧 있으면 멜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메시지가 들렸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멜크 수도원에 도착해서 가면 되었지만, 유럽에서는 화장실이 무료인 경우가 별로 없었고, 수도원이나 성당은 방문객을 위한 화장실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화장실을 빨리 쓰자. 하는 생각에 같이 여행하던 친구에게 말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변기에 앉아 있는데, '띵-' 역에 도착했다는 벨 소리가 들렸다. 이럴수가. 허겁지겁 화장실 문을 열고 바로 옆의 문으로 달렸다.


아... 내가 내리기 직전, 문은 닫혀 버렸다. 친구의 뒤통수가 창문 너머로 보였다.

헛웃음이 났다. 무슨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이가 없었고, 도착하기 직전에 화장실을 가려한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한편으로는 역이 다 왔는데 나에게 언질을 주지 않은 친구에게 괜히 화가 났다. 나중에 들어보니 친구는 내가 먼저 내렸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낙담하며 기차 안에서 찍은 선로


어쩔 수 있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 하지만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열차에서 내리는 예정 시각은 10시, 역에서 수도원까지는 걸어서 30분, 수도원 투어 예약은 11시였다. 수도원은 투어가 없으면 구경을 하지 못하는 시스템이었고, 수도원의 다음 투어는 1시였으나 빈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2시쯤에 끊어 놓아서 11시 예약을 놓치면, 그냥 하루를 날리는 거였다. 물론 기차를 다시 끊고, 수도원 예약을 바꾸고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그 시간 동안 뭘 하겠는가. 또 예약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기차도 변경이 안 돼서 돈이 두배로 나가는 판이었다.


나는 서둘러 다음 역이 언제 도착하는지, 그 기차역에서 멜크로 오는 기차는 언제 있는지 찾아봤다.

검색했을 때는 다음 기차가 2시간 뒤에나 있었다. 반쯤 포기하고 일단 다음 역에 내렸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작은 시골 기차역이었다. 표 구매하는 기계로 달려가 멜크행 기차표를 검색하는데 이런 행운이! 10분 뒤에 오는 기차가 있는 것이었다. 다급히 표를 끊고 기차를 타는 선로로 뛰어갔다. 마음이 급한 데 독일어는 모르겠고, 어디서 타는지 못 찾아 헤매다가 기차역을 청소하던 직원 분께 여쭤보니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이런 다급한 순간에 받은 친절은 참 사람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기차 도착 3분 전에 승차선로에 도착했다. 거기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현지인밖에 없었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더라. 외지인이 이 역에 있는 것이 신기했을 것 같다. 우리로 치면, 전혀 관광지가 아닌 외딴 시골 기차역에 외국인이 헥헥 거리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으면 한 번쯤 눈길이 가게 되듯이.


겨우 도착한 멜크역. 대중교통을 찾아보았지만, 비수기라 그런지 버스는 없었다. 그래도 빠른 기차를 타고 돌아온 덕분에 꽤나 시간이 있었고, 빠른 경보로 걸어 투어 예약 시간 5분 전에 수도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도원 입구에서 만난 친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또 땀 뻘뻘 흘리며 고생한 보람 있게 수도원은 그 나름의 아름다움으로 나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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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겪은 가장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쉽게 말해, X 한번 싸겠다고 내리기 직전 화장실 갔다가 기차역을 놓쳤으니.

그렇지만 이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란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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