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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Oct 18. 2023

회피형 인싸의 다짐


회사 선배들이 나에게 그만 좀 나가라고 한다. 결혼 후에도 자유롭게 사람들과 만나는 모습이 아슬해 보였나 보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매주 친구를 만나고 글쓰기와 볼링모임에 가서 에너지를 얻는 파워 E형 인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사람이란 피하고 싶은 존재이다.


저 멀리 누군가 보인다. 단정한 머리와 검은 맨투맨, 특유의 걸음걸이를 봐선 내가 아는 과대가 맞다. 0.1초 만에 알아보고는 나는 어떻게 저 친구를 모르는 척할지 머리를 굴렸다. 가슴팍에 안고 있는 책을 괜히 뒤적이며 걸었다. 휴~ 인사 없이 무사히 지나쳤다. 나는 1km 너머에서 찰랑이는 머리카락만 보아도 단번에 알아보는 관찰력을 아는 사람을 모르는 척하기 위해 총동원했다.


어려서부터 이웃을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한다고 배웠다. 나는 어디에서나 인사만큼은 쉽게 하지만 어색한 사람에게는 예외이다. 상대방이 다가오길 기다리면서 나는 피하기만 하니 거리감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길에서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힘들어하는 후배의 자리는 너무 멀고, 시누이의 생일선물 고르기는 어렵다. 익숙하지 않은 모든 일들은 번번이 귀차니즘이 발목을 잡았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나는 회피형이다. 살던 대로 살면 편할진 몰라도 변하진 못할 것이다. 모르는 척 외면한 일들은 늘 찝찝한 잔여물을 남긴다. 이제는 할까 말까 고민하는 힘을 모아서 성의 있게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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