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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Nov 01. 2023

기생충이 어른이 되었다.

순환하는 사회에 대하여

“망했다. 공짜 와이파이 못쓴다. 윗집 아줌마가 'IPTIME' 암호를 거셨다 이제.”

윗집 와이파이에 기생하는 기택의 첫 대사이다. 나도 기택가족 같을 때가 있었다. 스물여섯 살에 직장을 가지기까지 나라에, 학교에, 교회에, 한국장학재단에 기생하고 살았다. 나에게는 교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주는 반찬도시락이 유일한 만찬이었다. 중1 때 담임선생님에게 받은 월 2만 원의 돈이 처음 받은 용돈이었다. 이 모든 숙주를 거쳐 홀로 살아남게 된 후에야 비로소 가난을 논할 수 있게 되었다.


가난은 죄라는 글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이 문장이 공식처럼 반복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 배달원의 일화를 빌리자면 부촌의 손님들은 여유로워서 그런지 친절하다고 한다. 반대로 빈촌의 고객은 고마움을 모르는 악바리로 묘사한다. 나는 그런 글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뾰족해진다. 나의 숙주들이 다만 숙주로만 존재했던 나날들을 보면 죄라는 글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난이 죄인가를 물어보자. 얼마 전 붐비는 일본 난바의 번화가에서 한 노숙자를 만났다. 온몸엔 악취가 풍겼고 머리카락은 덕지덕지 뭉쳐있었다. 그 머리카락을 비닐로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노숙자는 다른 사람에게 냄새를 덜 풍기고 싶은 마음과 비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비닐을 모자처럼 쓴 게 아닐까? 노숙자에게 감히 죄명을 씌우기 어려웠다. 다만 과거의 나에게 고한다. 받는 거에만 익숙해 가만히 있으면 죄이다. 고마운 줄 모르고 욕심만 부리면 죄이다. 가난 속에서도 급을 나누면 죄이다. 기여는 없이 기생만 하면 죄이다.


2024년에는 육각형인간이 트렌드라고 한다.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등 모든 것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한 사람'이 바로 육각형인간이다. 이는 타고난 요소를 더 높이 사는 일종의 '담쌓기'라고 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나는 육각형 중에서 겨우 절반의 각만 살아있다. 용이 못나도 사람은 나는 나라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할 뿐이다. 엄격한 기준은 별나라 달나라 이야기처럼 환상의 세계로 넘기면 그만이다.


완벽을 추구하기보단 베푸는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 기생충이 사람으로 변태 하기 위해서다. 차비 달라는 말을 못 해 걸어 다닌다며 가난이 죄냐는 어린 학생의 토로에 한 어른이 답했다. 버스비 정도는 지원해주고 싶으니 댓글을 달아주라는 답이었다. 나도 이런 어른이 될 수 있다. 나라와 학교와 교회와 제도와 그리고 어른들이 나에게 숙주가 되어준 것처럼. 기생인지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공생으로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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