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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Jul 19. 2021

2배속 버튼을 누르지 않는 순간


최근 저는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좋은 책을 소개하고 인터뷰도 하고 고민 상담도 하는 채널인데 이름이 ‘정문정답’이예요(구독, 좋아요 눌러주세요!). 자기 목소리를 듣는 건 누구에게나 징그러운 일이잖아요. 그간 저는 한사코 제가 나온 영상을 보는 걸 피해왔어요. 어쩔 수 없이 처음 한 번만 확인하고 다음부터는 클릭하지 않았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는 전체적으로 조화로운지 위주로 보지만, 자기를 볼 때는 지엽적으로 하나하나 뜯어서 보게 됩니다. 


눈알은 왜 저리 불안하게 굴리는지, 사투리는 왜 이리 여전한지 생각하면 개선점이 끝없더라고요. 그런 걸 너무 의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말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도망 다녔는데요. 유튜브를 하기로 한 이상 이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제가 나온 영상을 모니터링했어요. 그렇게 보니 우선 말이 너무 빠르다 싶더라고요. 다른 것도 고칠 게 많지만 일단 이것부터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를 주변에 했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녜요. 요즘은 다들 말 빠른 걸 좋아해요. 천천히 말하면 답답하게 생각해요. 오죽하면 인터넷에서 영상 볼 때도 빠른 배속을 켜서 보는데요.”      


아! 그러고 보니 페이스북에서 보이는 짧은 영상들은 대부분 2배속을 한 듯 빨랐습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부터 이용자들이 재생속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기사를 읽은 게 기억났고요. 보고 싶은 영상은 많고 10분 내외의 스낵 영상과 그에 맞춘 속도감 있는 편집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꾸만 요약본 같은 콘텐츠를 찾게 되는 듯했습니다. 


책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는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저자는 선생님인데, 교실에서 학생들을 오래 관찰해온 바로는 빠른 호흡의 영상 문법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점점 더 지루한 걸 못 견뎌한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자주 접하는 매체에 대한 태도가 체화되면 사람들 간의 대화에도 영향을 어느 정도 미치는 것 같다면서요. 설명이 길어지면 불쑥 ‘그래서 결론이 뭔데?’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성급한 감각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궁금해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Photo by Brantley Neal on Unsplash




우리는 영상뿐 아니라 평소 일상에서도 2배속 버튼을 누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빨리 좀 지나가라’ 같은 생각을 끝없이 하지요. 월요일이 되면 빨리 평일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중요한 마감이 있으면 빨리 이걸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니까요. 생각해보면 어릴 때도 그랬어요. 초등학생일 때는 빨리 중학생이 되고 싶었고 중학생일 때는 고등학생이, 대학생일 때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콘텐츠를 보면서 2배속 버튼을 누르면 주요 내용은 놓치지 않을지 몰라도 제작진이 의도한 정서적 감응은 하기 어려워요. 예컨대 대화에서는 대사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망설이는 제스처, 눈빛과 손길 같이 비언어적인 표현에서 닿는 느낌이 더욱 중요할 때가 있잖아요. 강의처럼 정보전달만이 중요한 내용을 복습하는 거라면 모를까, 영화 같은 예술 작품을 빠른 배속으로 보는 건 추천할 만하지 않죠.      


제 인생에서도 가장 절실히 ‘빨리 좀 지나가라’를 외치던 순간이 있었어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네 달간 입원해 있었는데요. 4인실 안에서 고참이 되면 좋은 침대를 선점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복도 쪽 현관 앞에 있던 제 자리가 시간이 지나며 창가 옆 안쪽 로얄석으로 고정되었죠. 아무래도 질병이나 사고는 노년에 더욱 치명적이니까 수많은 할머니들이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저는 그들과 종일 함께 했습니다. 


헤어스타일이 똑같아서 뒷모습만 보고는 구분하기 힘든 할머니들은 아침에 눈 뜨면 ‘아침마당’부터 틀었고 그 후에는 고함 소리가 자꾸 나는 드라마를 보고 외국인 며느리가 나오는 고부갈등 프로그램을 봤고 건강 정보나 불행한 부부생활에 관한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았죠. 즐겨보는 프로가 거의 고정되어 있는 걸 보며 신기하게 느껴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창밖으로 한강이 보이는 집을 자랑하는 연예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 같은 건 실수로도 틀어두지 않더군요. 주로 ‘아이고, 쯧쯧’ 하는 소리를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아니면 그저 즐겁게 감상하는 1박 2일이나 전국노래자랑 같은 쇼를 보았죠.      


후에 저는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카카오 마음 날씨 플랫폼을 통해 일상생활의 행복을 점수화한 결과를 보고 동의가 되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한국인들 중 가장 불행하다고 스스로를 느끼는 세대는 20~30대이고, 가장 행복하게 느낀다고 하는 세대는 60대 이상이라는 결과를 내놓았거든요. 비교나 조바심을 벗어나서 오는 행복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할머니들이 제 나이를 물은 뒤 열이면 열 빠트리지 않고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자기는 인생을 돌이켜보면 아이를 키울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요. 그때가 제일 살기는 힘들었고 몸이 바빴으나 기쁨으로 가득했기에 돌아가고 싶다고요. 젊음이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아이들이 크는 걸 한 번만 더 보고 싶다고요.      


Photo by Christian Wiediger on Unsplash



아이를 키우는 요즘 종종 그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왜 그렇게 할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이를 키울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하는지, 그 비밀을 알아냈거든요. 육아는 힘든 가운데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체감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아이를 키워보니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언제 이렇게 자랐지?’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이 순간이 좀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가 어제 못했던 걸 오늘 할 때, 까르르 웃을 때,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책을 읽을 때,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평온하고 후련해서 이 시간을 최대한 느리게 만끽하고 싶은 때는 아기가 쿨쿨 잘 때죠. 이처럼 육아가 주는 선물은 ‘제발 조금만 더 자라’와 같은 순간이 최소 하루에 한 번은 꼭 있다는 겁니다.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책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걸 먹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행복에 있어서 강도는 중요한 게 아니고 자주 체감해야 하는 소소함에서 오는 거라면서 말이죠. 바꿔 말하면 이는 꼭 육아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시간을 멈추고 싶은 사소함을 자주 만날 수 있다면 행복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일 겁니다. 


우리가 여행을 그리워하는 이유도 비슷하겠죠. 여행지에서 우리는 이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라는 순간을 자주 마주합니다. 저도 여전히 기억해요.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서 라벤더가 펼쳐진 붉은 땅에 발을 디딘 순간, 코타키나발루의 한 호텔에서 오래오래 석양을 바라보던 저녁, 포르투갈의 땅끝마을 호카곶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있던 순간순간 시간이 흘러버리는 게 너무 아까웠죠. 


‘빨리 좀 지나가라’고 생각하는 일상 속에서 ‘이 순간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순간들을 애써 찾아보고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결국 우리가 훗날 그리워할 행복의 구체적인 냄새이자 형태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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