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남동 고양이의 2015년 겨울
2015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종로 원남동에는 노란 고양이와 까만 고양이
두 마리가 살았다.
처음부터 길고양이였을리 없다고,
누군가가 키우다가 버리고 간 고양이일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곤 했다.
고양이 두 마리는 사람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관종’ 고양이라고 할 정도로
먼저 다가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점심 시간이면 그에 맞춰 길가에 나타나
배를 쓰다듬어 달라고 드러눕거나
사람들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갸르릉 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이 두 고양이를 예뻐해서
사료를 가져다주고,
담요를 가져다주고, 밥그릇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날씨가 점차 추워지자
스티로폼 집을 누군가가 가져다 놓았고,
며칠 후에는 그럴싸한 갈색집도 생겼다.
어느 날은 며칠 보이지 않는다 싶어 궁금해했더니
고양이가 자주 나타나는 길목에 “중성화 수술 시키고 올게요” 라는 종이가 붙어있었던 적도 있다.
나 또한 그 두 마리 고양이를 예뻐해서
매일 두번씩 보러 가고
먹이를 챙기고
손이 새까맣게 될 때까지 만지고 오곤 했다.
그리고 12월 중순이 되면서
까만 고양이가 사라졌고
노란 고양이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까만 고양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한 주민에게 전해 들었고
이후 노란 고양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입양되어 ‘이브’란 이름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 붙은 종이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두 마리 고양이가 보이지 않게 된 직후엔
그들이 살던 주변을 지날 때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는데,
얼마 후면 여기 있던 고양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퍼졌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시간이 더 지나면서
그 고양이들이 없어져 내게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억과 성격을 구성하는 어떤 한 곳에
가만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들에 대한 기억은 흐려지더라도
그때 내가 고양이를 보며 위안 받았던 마음,
고양이를 예뻐하던 사람들에게 느낀 따뜻함과
그로 인한 세상에 대한 긍정,
그 추운 날의 풍경과 온도,
정겨운 소음 같은 것들은
사라져도 사라지는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묵직한 느낌으로 남아
내가 원할 때 끄집어 낼 수 있는 곳에
존재한다는 생각에 안도가 되었다.
지금 내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도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내 옆을 떠나고
나 또한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없어지겠지만
한 존재 때문에 전달 되었던 온기는
사라진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느낌’으로 남기때문에
우리는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 라고
고양이가 살던 길목을 지날 때마다
가끔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