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더라도 근처에 가있기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연주하는 ‘정오의 음악회’에 종종 찾아간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이 음악회는 국악의 대중화를 표방하는 만큼 매회 다양한 대중가수도 출연한다. 평일 오전 열한 시에 시작하고, 일 년에 여섯 번 진행하는 이 공연은 2019년부터 꾸준히 지속돼 왔다. 공연 시간은 70분. 마치는 시간이 점심시간인 걸 고려해 방문객 모두에게 따끈한 떡 한 팩씩을 나눠준다. 꿀떡, 절편, 무지개떡 등 갈 때마다 떡 종류가 달라진다. 떡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국립극장을 둘러싸고 있는 남산자락을 한 바퀴 걷는다. 공연장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음악을 다 들었고 떡까지 먹었는데 아직 한시가 채 되지 않았다. 넉넉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이 공연의 제일 비싼 티켓 정가는 삼만 원이다.
12월에 열린 음악회에는 예전 회사 동료였던 제이(J)와 갔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내 후배였는데 이제 어엿한 팀장님이 되었다. 반차 쓰고 잠시 놀자고 유혹했더니 아예 연차를 내겠다고 했다. 무리하지 말라고 하니 초과 근무하는 날이 많아 휴가가 자꾸 불어나기만 한단다. 제이는 국립극장에 도착해서 코를 킁킁대며 탄식했다. 같은 서울인데 공기 질이 왜 이렇게 다르냐는 것이다. 평일 낮 야외 바람이 원래 이렇게 청정한 거냐고 자꾸 감탄하기에 서글픈 웃음이 나왔다.
그날 공연에는 가수 김광진이 출연해 ‘마법의 성’ ‘동경소녀’ ‘편지’를 불렀다. 실제로 본 그는 연예인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휴가 때마다 인도에 여행 가는 증권사 부장님이나 파마한 카이스트 교수님 스타일에 가까웠다. 걸음걸이도 쭈뼛거리는 게 영 어색했다. 사람처럼 걷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지만 자연스럽게 고개 드는 설정에서 오류를 낸 로봇 같았다.
아나운서 이금희가 그를 맞이해 이력을 소개했다. 1994년에 데뷔해 ‘마법의 성’으로 13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 후 꾸준히 히트곡을 여럿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펀드매니저 겸 애널리스트로도 활동했단다. 국제 재무 분석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 자산운용사의 투자전략 본부장으로 근무했다가 퇴사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토록 다른 두 분야 모두에서 성공할 수 있었냐고 이금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김광진이 이마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하죠. ‘마법의 성’이 잘 됐을 때 그쪽으로만 계속 활동했으면 어땠을까. 근데 그때 활동을 안 해서 지금 제 목소리가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거든요. 심지어 예전보다 지금 좀 더 잘 부르는 것 같아요. 그때보다 노래 실력이 더 늘었어요.”
공연이 끝나고 떡을 받기 위해 제이와 함께 줄을 섰다. 내가 김광진의 프로필을 검색했다.
“나 지금 찾아봤어. 1964년생이네. 근데 어쩜 저렇지? 아까 그 말 너무 멋있지 않았어? 예전보다 더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거. 나 저렇게 말하는 사람 처음 봤어.”
“아 진짜? 1964년생? 대박이다.”
“너도 나중에 그런 말 하면 너무 멋지겠다. 제가요, 예전보다 지금 더 잘한답니다.”
“그러려면 일단 나도 좀 쉬었다 와야 하는데.”
정확히 따지자면 김광진은 쉬지 않았다. 3집 ‘해피 아-워’를 마지막으로 그룹 ‘더 클래식’이 해체되고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음악 안에 있었다. 작곡가로서 이소라의 ‘기억해 줘’ ‘처음 느낌 그대로’와 아이유의 ‘별을 찾는 아이’를 만들었고 솔로 앨범도 띄엄띄엄 발표했다. 그가 표현한 쉬었던 활동이란 공연에 국한해서 말하는 것이다. 회사에 다니고 앨범을 내지 않고 콘서트를 하지 않는 동안에도 그는 계속 음악을 했다. 노래는 쉬었을지 몰라도.
대학원 입학 면접을 보던 날이 생각났다. 내가 마주 앉은 교수님에게 말했었다. 사는 게 바빠서, 당장 해야 하는 마감으로 바빠서 소설을 쓰지 못했다고. 문학과 너무 멀어져 있었다고. 그때 교수님이 물었다.
“소설만 안 썼을 뿐이지 계속 글은 써온 거잖아요?”
그건 그렇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공연을 함께 갔던 저녁에 제이에게 문자가 왔다. 문화생활을 오래간만에 하고 오니 리프레시가 된 것 같다는 감사 인사였다. 제이가 일을 바쁘게 하는 것도 좋지만 자주 마음에 바람을 쐴 수 있길 바랐다.
그날 이후 매일 김광진 노래를 들었다. 예전 영상도 찾아보고, 최근 노래도 확인했다. 과연 자기의 발전된 실력을 장담할 만했다. 이러한 댓글이 많은 추천을 받아 상단에 올라 있었다. “이 무중력 성대는 뭐죠?” “나이 들어 발성이 더 좋아진 가수는 처음 보네요.” 신기하게도 그의 목소리는 최근에 와서 더욱 소년 같아지고 있었다. 데뷔한 지 무려 30년이 지났는데도.
https://www.youtube.com/watch?v=bnmzFM8zbJE
[한겨레신문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