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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Jul 15. 2015

모든 것에 답하려고 하면 잊어버린다, 자기 자신을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한 팁을 마스다 미리의 책들에서 보다 

마스다 미리,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지?” “뭘 하고 싶지?”같은 물음이었죠. 선택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자꾸만 질문을 던져야 하니까요. 우리는 주로 행동을 하기 위해 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행동은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이건 왜 이렇게 하는 거지?” “이 길이 맞는 건가?”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보다 받는 질문이 더 많아집니다. 어른들은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 거라고 하면서도 정작 흔들리는 꼴을 보면 답답해합니다. 성공에 대한 기억일수록 과장되고 미화되어 우연적인 사건조차 필연적으로 탈바꿈한다는 사실은 잘 간과되는 것 같습니다. 그걸 잊은 사람일수록 남에게 자주 묻습니다. “왜 이것밖에 못해?” 


저도 받는 질문이 항상 벅찼습니다. 대학의 비인기학과를 가서는 “취업은 어떻게 하려고 하니?”라는 질문에 줄곧 시달렸는데 지금은 “회사 그만 두면 뭐할 거야?”와 “결혼은 언제 할 거야?” “돈은 얼마나 모았니?” 같은 질문을 자꾸 받고 있습니다. 이러다 노년이 되면 “화장한 건 어디에 뿌려달라고 할 생각이야?” 같은 질문을 받을 것 같네요.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는 고민들을 주섬주섬 꺼내 천천히 펼쳐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질문 받는 것은 나를 한 마디로 요약하고 변호하는 일이었습니다. 대답은 분명하고 일관적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 바로 수긍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삶의 디테일이 빠집니다. 예를 들어 저는 천주교 세례를 받았고 성모마리아상을 집에 두고 있지만 불교 서적 읽는 것을 좋아하고 자주 절에 가 예불을 드립니다. 하지만 “종교가 뭔가요?”라는 질문에 “천주교를 믿는데 불교도 좋아해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이라는 문장에 제가 크게 감동한 배경에는 이런 피로감이 있었습니다. 이 대사가 등장한 마스다 미리의 책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에는 이런 대답도 있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아.” 


그의 다른 책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아무래도 싫은 사람』『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등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중년의 나이로 무난한 성격에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약 페이스북에 일상을 업로드하는 페친이라면 잘 사는 것 같이 보여 ‘좋아요’를 눌러줄 법한 인생이죠. 그런데 페이스북 속 친구가 대개 허세로 보이는 건 일상에 대한 공유없이 순간의 단면만 널어 전시해서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이 남을 부러워하고 자신을 미워하는데 시간을 씁니다. 


우리는 서로를 끝내 이해할 수 없을까요? 마스다 미리는 관찰했을 때 이해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배경쯤으로나 취급되던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영화로 치면 핸드핼드(Hand held : 카메라를 고정하지 않고 손으로 잡고 촬영하는 것)기법을 사용하여 고정되어 있던 시야를 뒤흔들죠. 덕분에 혼란스러운 순간, 자연스러운 변화의 순간을 포착으로 우리는 인생의 리얼리티를 더 가까이 만납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35세 미혼여성 수짱과 결혼 후 퇴직한 마이코를 대비해 보여줍니다. 미혼여성 수짱은 결혼하지 않은 삶에도 그럭저럭 만족하면서도 가끔 만나는 결혼한 마이코를 부러워하고 노후를 걱정합니다. 결혼해 임신한 마이코는 결혼생활에 큰 불만은 없으면서도 아이 때문에 크게 변할 미래가 두렵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수짱이 속 편해 보이기도 하죠. 이렇게 저마다의 입장이 팽팽히 대립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관계입니다. 1인분씩의 고통을 차지한 주인공들은 자기연민에 빠질 겨를이 없습니다.  


마스다미리는 『아무래도 싫은 사람』에서 주인공 수짱이 자꾸만 한 직원이 싫어지자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결말로 택합니다. 그 직원을 바꾸지도 않고 수짱이 마음을 완전히 고쳐먹지 않아도 되는 이 결론은, 각종 자기계발서에서 줄기차게 말하는 진취성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마스다미리는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 선택일 뿐이었다고 말합니다. 이후『수짱의 연애』속 수짱과 그의 상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런 작가의 세계관에서 기인합니다. “난, 요시코 선생의 일하는 방식이 좋아.” “하지만 전 이전 직장에서 반은 도망치듯 나왔어요.” “그런 건 지금은 상관없어. 그렇게 하길 잘했다, 하고 생각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니지. '도망쳤다'가 아니라 ‘그만 뒀다’ 단지 그뿐인 거야.” 


오랫동안 고민해 선택한 결과가 대단하지 않더라도 자신조차 시시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이 선택한 인생에 대해서도 시시하게 여기지 말라는 이야기를 작가는 여러 책에서 반복합니다. 작가의 에세이『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에서도 그는 성격 중에 마음이 드는 부분이 ‘한 가지 일에 실패해도 내 전부가 엉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담담한 긍정은 스스로에게 오래 질문하고 그 대답을 찾아온 사람에게 찾아오는 선물같은 통찰이 아닐까요? 

 

마스다미리처럼 시시하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선 남에게 묻는 건 줄이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스다 미리처럼 “당신이 원하는 건 뭐야?”가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라고 묻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날 우리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질문을 멈추는 건 더 이상 내가 궁금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니까요. “괜찮아?”라는 말은 남 말고 사실 자기에게 종종 해야 할 질문 같습니다. 



#마스다미리 #에세이 #공감만화 #어느날문득어른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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