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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Nov 14. 2016

흠집이 아니라 생활 기스

ILLUST 전하은




대학교 1학년이던 4월,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이렇게 썼다. “내 인생의 봄은 끝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만난 남자친구에게 차였던 날이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나오지만 그때는 진지했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어려서 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서툴렀고 이성을 대하는 법을 잘 몰랐을 뿐이다. 그건 동갑이던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그만 만나자’고 하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이 미워졌다.      


‘내 인생의 봄은 끝났다’고 쓴 후로 정말 내 인생의 봄이 끝났던가? 당연히 아니다.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야만 선명하게 보인다. 스무 살에 당면한 문제들은 대부분 내 인생 최초의 것들이었고, 그래서 어려웠고, 체감하는 온도도 너무 높았다. 다른 사람들은 온탕에서 여유로운데 나 혼자만 열탕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연애뿐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부모를 잘못 만나서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부모에 대한 이상형이 있었는데 현실에서는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다.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가 단 하나의 세상이다. 그 세계에서 사랑 받지 못하거나 이해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오래 지속되면 그 결핍이 자기 연민, 극도의 인정욕구, 정서적 불안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부모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내 성격이 비뚤어진 이유, 자신감이 없는 이유도 모두 부모 때문인 것 같았다. 사람들을 만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부모가 내게 상처 주었던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가 들었던 부정적인 말들도 지나치게 오래 곱씹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났고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일에 대해서 끝없이 말하고 있을 수는 없다. 성인이 된 후에도 어릴 때 상처 받았던 이야기를 하면서 울고 있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부모님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하겠다고 마음먹고 찬찬히 살펴보니 내게서 부모님을 덜어내더라도 꽤 괜찮은 부분들이 있었다. 괜찮은 부분은 처음부터 있었는데 내가 상처 받았다는 생각, 그 상처가 너무나 크다는 생각, 실수가 아니라 실패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상처에 집중하다 보면 본래의 성질을 잊게 되니까.      


남편과 결혼반지를 맞추러 갔을 때 일이다. 점원이 14K를 할 것인지, 18K를 할 것인지 물었다. 설명하던 중 점원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18K가 금 함량이 더 높으니까 생활 기스가 좀 더 날 순 있지요. 그래도 결혼반지는 보통 18K로 많이들 하세요. 가격 차이는 약간 있어요.” 이때 들었던 ‘생활 기스’라는 말이 마음에 남아 정확한 뜻을 검색했더니 ‘사용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가구나 가전제품 따위에 생기게 되는 흠집’이라고 쓰여 있다.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긴다는 체념이라니. 나는 이 담대한 표현이 좋아졌다.


반면, ‘흠’은 “어떤 물건의 이지러지거나 깨어지거나 상한 자국”, “어떤 사물의 모자라거나 잘못된 부분”, “사람의 성격이나 언행에 나타나는 부족한 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흠이든 생활 기스든 스크래치가 난 건 똑같지만 그걸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의 차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상처 받지 않는 무균실의 환경이란 건 없고 누구에게나 상처는 절대적이고 개인적이니까 저마다의 흠이 나 있을 것이다.   

   

잘 해보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보석함 안에 고이 모셔둔 반지가 아닌, 매일 끼고 있던 반지에 생활 기스가 심하듯 열심히 살아온 사람일수록 더 많은 상처가 있는 것이다. 실패에서 오는 괴로움을 그렇게 이해하면 스스로를 좀 더 편안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건 그냥, 거대한 흠이 아니라 미세한 기스들인 거다.      


나는 걸을 때 약간 절뚝거린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이후로 그렇게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내가 걸으면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것 같았다. 재활운동을 할 때도 부끄러워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다시는 사고가 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찾아오는 밤에는 많이 울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울고 있을 수는 없다. 언제까지나 걷지 않고 있을 수 없듯이. 에이 모르겠다, 좀 절뚝거리면 어때, 라고 생각하자 걷는 것이 그렇게 스트레스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남에게 신경을 덜 쓰고 열심히 걷다 보니 이제는 더 좋아졌다.    

  

그러고 보면 인생에는 아주 약간의 '어쩔 수 없지' 하는 체념이 필요한 것 같다. 열심을 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로 인한 상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은 생활 기스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콤플렉스가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내 발목에는 교통사고로 생긴 7cm 길이의 흉터가 있는데 언젠가는 이 흉터가 시작되는 윗부분에 꽃 문신을 그려 넣을 것이다. 흉터의 전체가 활짝 피어난 꽃처럼 보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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