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고도 여유있게 화제를 돌릴 수 있다
친구들이 하나둘 아이를 낳는다. 친구들이 하소연하는 말을 들으면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사는 건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 듯 싶다. ‘맘충’이라며 엄마들 전체를 싸잡아 주눅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육아 방식에 대해 간섭을 많이 한단다.
심지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 훈계를 듣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엄마 혼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만만한가봐. 아이가 딸이면 집안에 아들은 한 명 있어야 한다고 하고, 왜 양말을 안 신겼냐 하는 것까지 지적을 해. 아니, 내가 왜 밖에서 모르는 사람한테 혼나야 하는 거야?”
길에서 만나는 사람 뿐 아니다.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이런저런 질문을 받아야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약자일수록, 소수자일수록 질문 세례가 쏟아진다. 질문인 것 같지만 우회적인 비난인 경우도 있다.
“왜 ~를 안하는 거야?”에서 시작한 질문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로 전개되어 “너처럼 이야기하는 애들이 꼭 나중에 후회하더라” 같은 결말이 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딱 자신의 경험만큼만 남을 이해한다. ‘관심’이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간섭하고 충고를 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무례한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생각할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또한 내가 불쾌감을 표현했더라도 그의 행동이 바뀔 가능성은 매우 적기에, 이 같은 감정소모는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일처럼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례한 발언을 자주 해서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집안의 어른인 경우나 직장 상사의 경우라면 현실적으로 화를 내기 어렵다. 이들은 좋은 의도로 충고하(고 있다고 믿는)는 경우가 많아 정색하기도 애매하다.
그렇다고 참고만 있기에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상처받지 않고 대화를 종결하는데 필요한 자기만의 언어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 같은 경우, 그런 상황에서 주로 두 개의 문장을 사용한다. 그건 바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는 피하고 싶은 상황 앞에서 거리를 두게끔 하는 말이다.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말을 들었지만 논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닐 때, 상대를 쳐다보면서 감정을 배제하고 말하면 효과적으로 대화를 종결시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알겠습니다” 라며 경청 그 자체에만 포인트를 두는 것이다.
세대가 다르고 경험과 처한 환경이 다르면 그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내 생각도 언제든 바뀔 수 있고 틀릴 수 있다.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는 무덤덤한 인식은 상대에게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하지 말자는 다짐이 되기도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부정적인 말들을 모두 거대하게 느끼다가는 정신력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는 대답하고 싶지 않고 할 필요도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유용한 말이다. 애정이나 관심인지, 간섭이나 훈계인지는 듣는 사람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혼은 언제 할 거니?” “돈은 잘 모으고 있니?” “남편 아침밥은 잘 챙겨주고 있니?” 같은 질문이 반복될 때, 더 이상 대꾸하고 싶지 않다면 싱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 부분은 제가(저희가) 알아서 할게여~”
미셸 오바마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들 부부를 공격하는 트럼프의 행태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니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