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개인이 쾌적하게 있기에 필요한 점유공간을 뜻하는 말인데, 나라마다 이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거리가 달라서 일본은 1.01미터, 미국은 89센티미터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사람과 가까이 있게 될 때 불편한 이유도, 지하철에서 자리가 났을 때 최대한 떨어져 앉으려고 하는 것도 이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려는 본능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퍼스널 스페이스란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마음의 거리다’고 말한 바 있다.
낯선 사람과는 날씨 정도를 화제에 올릴 뿐이지만, 친분있는 사람과는 깊이 있는 주제를 화제에 올릴 수도 있는 건 마음의 퍼스널 스페이스 거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영역의 감각이 있는 이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에 인간관계를 원만히 할 수 있지만, 이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감각이 낮은 사람들은 자꾸만 선을 넘는 발언을 하거나 친밀도에 맞지 않는 질문을 던져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이처럼 거리를 두지 않고 훅 하고 질문 세례를 던지는 사람들을 대할 땐 그에 맞는 대꾸법이 따로 있다. 나의 경우 같은 질문이어도 누가, 어떤 뉘앙스로 하느냐에 따라 대답을 달리한다. 내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면서도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대화를 종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을 때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되묻는 것이 좋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나 상사에게 갑자기 “요즘 바빠?”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아, 과장님이 더 바쁘실 것 같은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경험 상,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서 갑자기 SNS로 ‘요즘 어떻게 지내?’하고 연락이 온 경우는 결혼식 참석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에는 ‘오랜만이다! 넌 요즘 어떻게 지내?’ 하고 되물어 의중을 파악한 후 ‘축하해. 그런데 내가 요즘 좀 바빠서 결혼식에는 못 갈 것 같아~’ 정도로 대답할 수 있다. 덥석 반가워하며 바쁘지 않다고 말한 후에는 초대를 거절하기 어려우니까.
질문자의 의도를 곧바로 알 수 있지만 대답하기 불쾌한 경우에는 딴청을 부리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너 페미니스트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네” “아니오” 같은 대답부터 하지 말고 “페미니스트가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 또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하고 물어보는 것이 좋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쾌한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모르는 척 되묻기만 해도 “여성우월주의자를 페미니스트라고 하지 않나?” “너가 아까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처럼 상대가 해명을 하다보면 스스로의 빈약한 논리를 주워 담다 급히 대화 화제를 돌리는 경우가 많다.
질문자의 의도를 모르더라도 대답하기 꺼려지는 질문, 논쟁이 예상되는 질문에는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과 토론을 할 수는 없다.‘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최저시급이 오른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같은 질문을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받았을 때는 그저 대화의 공을 상대에게 넘겨주자.
이 경우는 보통 상대가 나를 훈계하거나 떠보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쪽으로는 별로 생각을 안 해봤어요” 하고 나의 패를 보이지 않는 정도로 끝내는 것이 대화를 빨리 종료하는 기술이다.
이처럼 나의 공간을 문득문득 침범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를 잘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다.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나의 깊은 감정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는 사람들. 그런 이들에게까지 나의 공간을 열어 보일 필요는 없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과 중요도에 따른 시간과 에너지의 분배다. 이것이 잘 되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은 정작 서운하게 하고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마음을 쓰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사람마다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감각은 저마다 달라서,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훅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관계를 마주하려면 나름의 대처법이 필요하다.
평정을 유지하며 나만의 고유한 공간 감각을 유지하기란 어렵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결국 이는 ‘나를 지키는 법’과 관련되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