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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Nov 12. 2017

너는 줬지만 나는 받지 않았어

"머리가 좀 나쁘신 것 같아요."


머릿속의 퓨즈가 휘익- 소리를 내며 암전했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손이 덜덜 떨렸다. 잡지 기자로 일하다 팀을 옮겨 국내 대기업의 온라인 홍보를 대행하는 일을 하게 된 지 한 달이 안 됐을 때였다. 기업의 큰 행사를 홍보하는 콘텐츠를 작성하고 컨펌을 받는 과정에서 담당자는 과도하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처음 그 일을 하게 됐을 때 인수인계를 해주던 사람은 “그는 낯을 많이 가리니(?) 처음에는 트집을 잡고 화를 많이 내겠지만, 내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그때부터는 잘해준다”고 조언해주었다.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안정기에 접어들 테지만 그 전에는 ‘길들이기’를 하느라 좀 까칠하게 대할 것이라고도 했었다. 내가 당황하자 원래 저 정도 레벨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을’을 대하는 것이 직업이라 그런 식의 '조련'을 배워 한다는 거였다.      


그렇게 잘 참아보라며 조언해준 사람은 갑자기 뇌에 종양이 생겨 휴직했고, 내 전임자는 일한지 3개월 만에 스트레스로 시력에 이상이 생겼다며 퇴사했다. 그런 케이스들을 보며 마음 준비를 단단히 했다. 트집 잡히지 않으려 더 일을 꼼꼼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그 말을 들은 것이다.


큰 실수를 해서가 아니라(설사 큰 실수를 했더라도 그렇게는 말하면 안되는 거다) 지시하는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자 왜 한번에 알아듣지 못하냐며 준 핀잔이었다. ‘머리가 나쁜 것 같다’라니. 해외출장 중인 그의 스케쥴에 맞춰 컨펌을 받느라 밤 11시쯤 이야기하던 중, 그 말을 듣자 완전히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그날 밤엔 너무 슬퍼서 잠들지 못했다.     


한동안 그와 연락을 해야 할 때가 되면 머리가 묵직해졌다. 대응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사람이여야지, 이렇게 안하무인인 사람에게, 갑을이 철저한 관계에서 내가 어떤 대응을 할 수 있겠는가? 설령 반격하더라도 그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 외에도 그가 나를 ‘길들이기’ 위해 공격적으로 말할 때마다 위축되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좀 심하게 몰아붙였다고 생각된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크게 칭찬했다. 나는 점점 애완견처럼 그의 기분이 어떤지 살피게 되었다. 그가 나를 칭찬한 날엔 온종일 기뻤고, 화를 내면 오랫동안 우울한 기분으로 침잠했다.      



그가 한 말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하던 중, 평소 좋아하던 법륜스님의 강연을 찾아보았다. 어떤 여성이 스님에게 고민을 상담했다.


 “스님, 어떤 사람이 저에게 상처를 준게 자꾸 생각나요. 고등학교 때 학교 폭력을 당했거든요. 저는 아무 이유 없이 욕을 들었는데 남자라서 때릴까봐 욕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1년이 지났는데도 자꾸 생각나서 괴로워요.”


내 이야기 같아 마음이 시렸다. 스님이 물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누가 자기에게 뭘 주고 갔어요. 선물인줄 알고 열었는데 안을 보니 쓰레기예요. 그럼 질문자는 어떻게 하겠어요?” 질문자가 말했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겠죠.”      


스님은 부연 설명했다. “나쁜 말은 말의 쓰레기입니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고, 그 중 쓰레기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가 가만히 있었는데 그 사람이 쓰레기를 던졌어요. 그러면 쓰레기인 걸 깨달았을 때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탁 던져 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 쓰레기를 주워서 1년 동안 계속 가지고 다니며 그 쓰레기봉투를 자꾸 열어보는 거예요. ‘니가 어떻게 나한테 쓰레기를 줄 수 있어’ 하면서 그걸 움켜쥐고 있는 거죠. 그 사람은 그 쓰레기를 버리고 이미 가버렸잖아요. 질문자도 이제 그냥 버려 버리세요.”      


한 번에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받은 말의 쓰레기도 버리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 내 감정을 틀어쥐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쾌했다. ‘너는 쓰레기를 줬지만 나는 받지 않았어. 그럼 그건 네 거지 내 것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회사에서 업무를 함께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휘둘리지 않으려 마음 속에 선명히 금을 그었다. 그 선을 넘는 어떤 감정도 받지 않고 배드민턴하듯 받자마자 튕겨보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말에 일희일비하는 정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비난하거나 칭찬하더라도 그건 원래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덜 상처받게 된 것이다. 어떤 말을 듣더라도 별다른 동요 없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서 잊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의 말투를 흉내내며 농담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은연중에 와이파이처럼 에너지와 기운을 주고받게 되어 있다. 그런 모습에 담당자는 당황하면서 나를 만만치 않은 사람으로 느끼는 듯했다. 인정을 갈구하지 않게 되자 그는 되려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존중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그가 본 ‘을’이라면 이 정도 길들이기를 했을 때 쩔쩔 매면서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갔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완벽하진 않지만 파트너로서 일하는 모습으로 균형을 맞추어 갔다. 그는 나와, 우리 회사에 크게 만족하면서 앞으로도 함께 일해주길 요청했다. 그렇게 2년을 함께 일한 후 우리는 산뜻하게 서로 고마워하며 헤어졌다. 이제 나는 그를 떠올려도 아무 느낌을 받지 않는다.      


가끔 일상에서 쓰레기를 휙 던지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웃거나 정색하면서 대응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도 있지만, 어찌할 방법 없이 무기력해지는 경우도 있다. 권력 관계가 확고할 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일 때 우리는 상처 받은 마음을 안고 오랫동안 곱씹는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것이다. 그렇게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했던 이 방법을 추천해주고 싶다. 재활용도 안되는 쓰레기는 들고 다니며 울고 있지 말고 미련 없이 쓰레기통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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