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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Jul 24. 2020

몰라서 싫어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경험해보지도 않고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고 단정하지 않기



Photo by Farhad Ibrahimzade on Unsplash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okdom으로 시작한다. 오케이, 돔이 아니라 옥돔이다. 생선 옥돔의 영어식 표기로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가게에 가 “생선 있어요?” 물으면 옥돔을 꺼내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옥돔이 그쪽 업계에서는 대장 취급을 받는다는 뜻이다. 제주 사람들의 제사상에 옥돔구이는 필수고 생일이면 미역국에 옥돔 살을 발라 넣는다니 특별한 날마다 꼭 함께하는 고급 생선인 것이다. 


옥돔이 수산물계에서 특급 대우를 받듯 나 또한 작가로서 출판계에서 한자리 차지하자는 뜻에서 아이디를 그렇게 지었다…… 라는 건 뻥이고 옥돔에 얽힌 이야기를 하려면 십 년 전 겨울로 거슬러가야 한다.


2010년 겨울에 회사 워크숍으로 처음 제주도에 가봤다. 2박3일의 일정 동안 성산일출봉, 오설록 티하우스, 섭지코지 등 주요 명소에 갔고 멜젓에 찍어 먹는 삼겹살과 전복돌솥밥 등 관광객이라면 으레 먹을 법한 메뉴도 섭렵했다. 


갈치조림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직장 상사가 제주에 왔으니 먹어보라며 옥돔구이를 추가 주문했다. 바다를 끼지 않은 동네에서 나고 자라 그런지 옥돔이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했다. 메뉴판에 적힌 옥돔구이의 가격은 2만 5000원이었는데 나는 그 가격이 정식이 아니라 단품 기준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두 마리도 아니고 딸랑 한 마리 나온다는 데 두번째 충격을 받았다.


뽀얀 살에 분홍색 껍질이 있는 옥돔구이는 고등어나 갈치구이의 비주얼과는 뭔가 달랐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도 풍겼다. 한입 뜯어 맛보니 부드럽고 촉촉한데 쫀득하기도 하면서 생선구이에서 날 법한 비린내가 일 밀리그램도 느껴지지 않아서 어안이 벙벙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아왔네.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어야 하는 메뉴라 마음껏 덤벼들지 못하고 넋 나간 채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으니 상사가 그렇게 맛있으면 혼자 다 먹으라고 내 앞으로 한 마리를 더 시켜주었다.


첫눈에 반해버린 생선의 살을 음미하며 새삼스레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맛을 모르고 살았던 이유는 이 음식이 비싸서인데, 비싸도 뭔가 먹고 싶을 때 참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날 이후 제주도는 내게 옥돔구이 먹으러 가는 곳이 되었는데, 이때의 충격은 그동안 미식에 대해 생각하던 기준을 바꾸어놓았다. 그간 내가 가졌던 죄책감을 마주하는 계기도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먹는 데 돈을 많이 쓰는 건 탐욕이고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라고만 여겼었다.


어린 시절, 뭔가를 살 때는 ‘꼭 필요한 것과 안 사도 큰 지장 없는 것’을 구분하라고 배웠다. 방송인 유병재가 어릴 적 부모님께 무언가 사달라고 하면 “그거 안 하면 죽냐?”는 말이 돌아왔다며 그 기준에 맞춰 살 수 있는 건 쌀밖에 없지 않느냐고 항변해 웃프게 공감했던 적이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경험보다 물질적 소유를 중시하게 된다. 옷이나 신발, 사무용품이나 참고서같이 반드시 필요한 물품만 사는 데도 빠듯하니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경험에는 가성비와 대체품을 따져 돈을 최대한 아끼게 된다.


경험을 소비하는 것의 대표적인 예가 미식과 여행이다. 비싼 음식을 먹거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면 당장은 좋아도 남는 게 없으며 ‘그 돈이면 차라리 ○○을 할 수 있다’는 계산부터 하는 게 그때 나와 내 주변의 상식이었다. 


돈이 없을 땐 당연한 수순으로 식대부터 줄였다. 그때 또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입에 들어가면 결국 다 똑같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음식을 5000원이면 먹을 수 있는데 만 원에 먹는 건 바보고, 미식가도 아니면서 비싼 음식을 먹는 건 허세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런 멍청이나 허세꾼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니 항상 비슷한 맛, 익숙한 맛만 찾게 된다는 거였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맛은 대부분 학교 급식이 기준이었는데, 그 경험만으로 나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고 결론내렸다. 


급식실에 앉아 생선구이를 먹으며 생선을 좋아하게 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기에 오랫동안 생선구이를 싫어해왔다. 생선요리는 원래 다 비린 줄 알았으니까.


옥돔구이를 만난 후 나는 무엇에 관해서든 “결국 다 똑같다” “그게 그거다” 같은 말을 하지 않게 됐다. 예를 들어서 같은 고등어구이라도 식당마다 맛이 천차만별이고 요리는 맛이 전부가 아니라 분위기도 함께 소비하는 것인데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해 가성비만 따질 수 없다. 


해봤자 별거 없으리라 믿어버리면 어렴풋이 알다가 영원히 모르게 되고, 이로써 아직 경험할 여지가 있는 세상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만다. 잘 모르면서 경험해보지도 않고 싫어한다고 말하는 태도, 막연히 해봤자 별것 없을 거라고 속단하는 습관. 


“그거 먹을 돈이면 국밥을 몇 그릇 더 사 먹지” 같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게 되면 자신처럼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답답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세상에는 열두 색 크레파스만으로 칠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풍경이 있는 법이다.


카레와 커리의 맛이 다르듯, 세상은 자세히 알고 나서는 절대 똑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알아차릴 정도로 안목이 생길 때 나만의 특기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취향이란 그런 특기 있는 분야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아가면서 자신됨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전문가란 더 많이 경험한 사람이고, 그 덕에 남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된 사람이고, 남들이 못 보는 것을 짚어주는 사람이 아닌가. 한 발짝 더 깊이 음미해보지 않으면 섬세한 차이를 영원히 알 수 없고, 차이에 무감해지기 시작하면 인생이 단조로워진다. 우선순위를 정해 최소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서만은 형편이 되는 한 적극 체험해보면 좋겠다.


막연한 짐작이 아닌 나의 실감으로 판단하는 경험이 쌓여갈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나라는 사람을 잘 다루는 법도 알아간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고 단정하지 않기, 의견과 편견을 구분하기,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악한 짓만 아니라면 비난하지 않고 다만 궁금히 여기기. 


이런 노력을 통해 제대로 좋아하고 분명하게 싫어하고 싶다. 깊어지고 넓어지며 자주 감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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