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문정 Apr 30. 2018

부모님이 무례한 사람이면 어쩌죠?

부모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Photo by Matthew Henry on Unsplash

  

전작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출간한 뒤 독자와의 만남을 몇 번 가졌다. 마지막 순서에는 독자에게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제 부모님이 바로 무례한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이면 안 보고 살겠는데, 부모님이 무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질문을 하는 이들은 대개 이십대였고, 나 또한 부모님과의 관계로 많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났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남편과 함께 대구에 사는 나의 부모님 댁에 간 적 있다. 그때 우리는 일본에서 사온 고급 과자를 가져갔다. 아빠는 과자 한 봉지를 뜯어 맛본 후, 뜯지 않은 과자 한 봉지를 들고 동생 방으로 갔다. 방문을 여니 동생이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빠는 동생 얼굴에 과자를 던지고 문을 쾅 닫았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놀라서 내게 귓속말로 아빠가 왜 갑자기 화를 내시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아빠의 그런 모습이 익숙했기에 그걸 보고 놀라는 남편에게 더 깜짝 놀랐다. “화내는 거 아닌데. 그냥 아빠가 동생 챙기려고 그러는 거잖아.” “근데 얼굴에 던지셔? 처남이 상처받았겠는데.”


나의 부모님은 그런 사람들이다. 부드러운 표현 방식을 몰라 항상 오해를 사는 사람들. 좋은 일이 생기면 자기 몫이 아닌 것 같아 불안해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한편으로 안도하는 사람들. 피해의식이 많고 부정적인 성향이라 잘못될 것부터 걱정한다.


어릴 때 나는 글쓰기로 자주 상을 받았다. 처음 전국 단위에서 상을 받았을 때 아빠는 말했다. 

“소가 뒷걸음질쳐서 쥐 잡은 격이네.”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는데,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그런 부모님 사이를 울며불며 막아서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부모님은 언니나 남동생과 달리 내겐 무관심했다. 초중고를 다닐 동안 학교에 한 번도 온 적 없고 성적표를 본 일도 없다. 담임선생님이 진로상담 때문에 집에 전화했을 때 엄마가 너무 차갑게 끊어서 선생님이 나를 불러 친어머니가 아니냐고 물은 적조차 있다. 


부모님에게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넌 알아서 잘하잖아.” 충격을 받게 하고 싶어서 사흘 동안 가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가출했는지도 모르기에 내가 더 충격을 받아 다시는 가출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연애를 시작했는데 부모에게 못 받은 관심을 애인에게는 받을 수 있어 그 관계에 더욱 매달렸다. 부모에 대한 원망이 커질수록 부작용이 커져갔다. 못 받은 사랑을 대체하려다보니 연애를 할 땐 자꾸 내게 집착하는 사람에게 끌렸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땐 합당한 이유를 찾다가 언제나 부모를 떠올렸다. 부모 때문에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 되었고, 그러니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고. 부모에 대한 미움이 나에 대한 미움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이젠 부모 탓을 그만하자고, 정서적으로 부모와 결별하자고 다짐했다. 마음의 결핍을 해결하고 싶어 심리학 관련 책을 많이 읽었고, 특히 사회학과에 입학해 가족사회학 공부를 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조직에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학문이다. 가족 관계에 대한 다양한 케이스를 접하며 역사적으로 이상적인 가족상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알아보았더니 현대의 ‘정상가족’ 형태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었다. 어린아이가 환대받는 문화는 20세기에 들어서야 점차 확립되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부모의 헌신을 과도하게 추켜세우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자주 노출시키지만, 이처럼 정상가족의 이상향을 설정해놓고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식을 낳는다고 사람이 저절로 성숙해지지는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라. 아이에게 정말 좋은 부모가 될 것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보통의 미숙한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다. 육아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기도 하며, 자식들을 차별하기도 한다.


대학 때 한 잡지에서 어느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았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건 맞아요. 그런데 분명히 더 아픈 손가락과 덜 아픈 손가락은 있죠.” 그렇구나! 그날 이후 나를 붙잡고 있던 희뿌연 것들이 사라졌다. 부모는 공평하고 대단한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동안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취준생이거나 각종 시험 준비를 하는 자녀에게 “그것밖에 못하니. 네가 창피하다”고 말하는 부모들을 많이 보았다. 자녀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부모에게 내세울 것 없는 자식은 고민스러운 존재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영원히 포기하지 못한다. 부모 눈에 자식은 항상 어리고 가능성이 충분해 조금만 더 하면 잘될 것 같으니까, 충격 요법을 주어서라도 자녀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자꾸 이렇게 저렇게 상처 주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듣게 되더라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거리를 둘 줄도 알아야 한다. 모든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면 상처받거나 필시 싸우게 된다.


부모에 대한 이상을 버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할 것. 적당한 마음의 거리를 둘 것. 반드시 따로 나가 살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것. 부모에 대한 원망이 스스로에 대한 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 이 네 가지를 마음에 두면서 나의 상태도, 부모와의 관계도 좋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미워하다가 그렇게 미워했던 사람의 모습을 닮아간다.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하다가도 부모와 같은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놀라는 경우도 많다. 완벽한 부모는 없고 어떤 부모는 폭력적이다. 그러나 부모를 내 불행의 원인으로 삼으면 내 삶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불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부모는 그들의 인생을 살게 하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자. 


부모와의 오랜 투쟁에서 내가 깨달은 가장 확실한 답은 이것뿐이다.

이전 02화 가난하면서 관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