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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즈마리 Jul 30. 2024

통깁스와 집

4년전 어느 날의 일기

통깁스 사흘째.


안해도 되는 경험이지만 감사하다.

가족의 소중함, 함께 하고,나누고,더불어 기대며 살아간다는 것에 더없이 감사한 일주일이었다.


오늘은 아버지 엄마 기일. 음력 9월 8일. 9월 9일. 오늘따라 눈물이 났다. 기억 속에 조각으로 남아있는 고등학교 시절. 고 3시절, 객지에서 고군분투했던 대학시절의 힘주고 버티며 살아내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을까?

한가득 모여앉아 제사음식을 같이 만들면서 히히덕거리며 넉넉한 이 모습을 새삼 부모님이 살아 계셔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싶다. 이렇듯 자손이 번창하고 잘되게 잘 키워주시고 그느르심을 베풀어 주신 주님과 부모님께 감사하고 또 죄송하다.


아들이 남편 대신 따라와 든든하게 자기 몫을 해주고 다리를 다친 엄마를 곁에서 묵묵히 보호해준다. 이쁜 막내딸도 얼마나 배려심이 많고 잘 챙기는지ᆢ

고맙고 고마웠다.

언니들도 동생들도 형부도 올케도 제부도 모두모두  함께여서 유난히 감사했다. 잘하고 살아야겠다.


제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바람 쐬러 나섰다.

대관령 옛길!

대학시절, 서울과 강릉 집을 넘나들며 늘 만나던 그 고갯길!

학교로 돌아가기 싫다 생각하며 고개를 올랐고, 와, 집이다! 설레며 고개를 내려오던 그때가 불현듯 생각났다. 하늘과 그 고갯길과 울긋불긋 가을이 묻은 나무들 사이를 지나오며 간만에 추억에 잠길 수 있어 좋았다.


남편도 그립고, 이젠 정말 아이들에게 조금씩 기대고 의지할 때가 된 건가 싶기도 해서 많이 든든하고 또 아주 조금 우울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하되 아이들에게 내 몸을 맡기거나 도움을 청하게 되는 상황을 너무 애써 피하거나 서글퍼하지는 말자. 되어지는대로ᆢ


집[입주 5개월차 신축아파트]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쨌든 <자전거 여행> 속 김훈의 관점에서 보자면 난, "더 이상 인간의 편이 아닌 공간에 스스로 강제수용되어 한평생의 월급을 쪼개어 은행 빚을 갚아야하는, 마음 속에 찬 바람이 부는" 그런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공간이 좋다. 되도록 오래 깔끔함을 유지하고 싶을만큼ᆢ

그리고 한마디 꽥 하자면, "오래된 살림집"의 그 구가(舊家)로서의 면모는 무수한, 티도 나지 않는 여성들의 대를 이은 노동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사실! 멋만 있고 그 숨은 노동에 대한 언급은 없다. 새 아파트는 여러 면에서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줄여준다. 시스템과 과학의 이름으로ᆢ진보와 발전의 이름으로ᆢ 옛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옛것의 고풍스러움을 유지하며 그 방식대로 살아가자면 바탕에 깔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바로 값없이 치부되는, 헤아릴 수 없는 여성의 희생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머니! 종부! 며느리!


이 편리함과 심플함을 누릴 거다. 아끼고 윤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면서ᆢ


내일 아침에는 사과를 좀 깎아서 출근길에 먹어야겠다. 통깁스 환자 대신 출근길 발이 되어주는 언니와 함께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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