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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나

키워드 글쓰기 - 구름

by Anne Koh

어느덧 8주 차에 접어든 릴레이 키워드 글쓰기. 금주의 키워드 선정은 내 몫이다. 무엇에 대해 써야 할까 고민하기보다는 순간 떠오르는 단어를 잡고 싶었는데, 그게 더 어려웠다. 이건 너무 추상적이야. 이건 너무 뻔할 것 같아. 이건 몇 주 전의 키워드와 너무 비슷해. 이건 좀 억지스러워. 이 단어는 그냥 마음에 안 들어… 떠오르는 단어들마다 내 안의 감독관에 의해 가차 없이 탈락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왠지 피로해졌다. 사소한 일에 까탈스러운 접근을 하며 피로도를 높이는 것도 참 특기지 싶다. 답답함에 숨을 크게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창밖의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너는 참으로 평온해 보이는구나. 우습게도 순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늘 어딘가에 속박된 듯 여유롭지 못한 내 마음이 못나보였다. 그래, ‘구름’으로 하자.



하늘 보기가 습관인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든다. 고개를 들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하늘, 이만한 위로와 안식도 드물다. 반지하에 살던 시절에도 벽에 바짝 붙어 창밖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나마 창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매일 하늘 보기를 잊지 않았다. 우리의 낮을 따스히 비추는 태양이나 어둠을 고요히 밝히는 달, 머나먼 각자의 자리에서 이 지구별까지 강한 빛을 뽐내는 별들, 그리고 그 사이를 묵묵히 흐르는 구름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창공의 하모니는,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매일의 선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쩐지 해와 달, 별만큼의 신비가 구름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구름이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와 별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별을 맴도는 달마저도 대기권 아래 갇혀있는 우리 보통의 인간들에겐 닿기 어려운 존재다. 우주의 신비적 존재가 아닌, 우리와 같은 바람을 맞으며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구름이라니 왠지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구름 위에 누워보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포근하고 몽글몽글한 구름 위에 누우면 참 좋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보들보들한 솜털 구름이나 커다랗고 폭신한 뭉게구름에게는, 덩치 큰 나도 포옥- 안길 수 있겠지 싶었다. 고백하자면 어른이 된 지금도, 그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상상한다.


이 정다운 구름에게 한 가지 아쉬운 면모가 있다면, 한결같은 친구는 아니라는 점이다. 해와 달, 그리고 별에게는 정해진 위치와 궤도가 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늘 위에 제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은 구름뿐이다. 바람을 타고 정처 없이 흐르는 ‘하늘의 방랑자’라는 이름이 적절할까. 방향도 속도도 일정치 않으며, 기압과 온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달의 변화처럼 매달 규칙적이지도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는 내 기분처럼, 저마다 각자의 길과 속도를 찾아가는 우리 인생처럼, 구름은 그렇게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는 그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흘러간다. 한결같지 못한 나처럼, 인간을 닮은 구름의 면모에 또 한 번 정이 간다.


분명 닮고 싶은 구름의 모습에 마음이 이끌려 시작한 글인데, 이 친구의 안쓰러운 모습에 오히려 생각지 못했던 위로를 얻는다.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내 살결에 닿는 미세한 바람의 움직임을 느낀다. 텅 빈 문서에 글자를 채우는 동안, 내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오늘 나는, 구름과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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