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 Park Dec 31. 2020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

독후감(?)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 (철 지난 스포;)

평범한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지만 그런 맥락에서의 ‘평범’은 (과락이 없는) 제법 괜찮은 인생을 겸양을 담아 부르는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을 평가할 때 평범함을 장점으로 삼는 사람의 거의 없다. 특히 어떤 일을 업으로 삼아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라면 치열한 경쟁에서 당연히 남들보다 조금은 눈에 띄는 인물이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리고 눈에 띄는..이란 말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마땅한' 누군가가 되고 싶은 갈망과 그 뒤에 숨겨진 다양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가진 이런 다양한 콤플렉스와 이들이 서로 이익을 다투는 이야기를 달콤하고 맛난 “과자”와,  에도 막부 시절 각 영지의 외교관이자 홍보담당자인 "루스이야쿠"란 직책을 통해 들려준다.

배경이 되는 에도 막부는 사회와 문화를 떠받치는 나름의 튼실하고 논리적인 구조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비논리적인 요소와 함께 섞여 있던 묘한 시기. 이렇게 논리와 논리의 빈틈을 채우는 갖가지 미신과 관습, 빈약한 주머니 사정에도 절대로 구길 수 없는 체면, 그리고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자신이 속한 번의 이익(혹은 최소한의 피해)이라는 여러 개의 공을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고 공중에 돌아가며 띄워야 하는 곡예사가 바로 루스이야쿠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죽은 형을 대신해, 이제 막 번의 새로운 루스이야쿠가 된 젊은 주인공 신노스케에게는 또 하나의 짐이 더해진다. 멋진 외모와 출중한 능력에다, 주변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던 형이 할복한 이유를 밝혀내고 형의 약혼녀이자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정인情人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소용돌이 한가운데에는 막부에서 각 번에게 할당하는 무리한 부역과 공사를 누가 맡고 누가 피해 갈 것인가라는 정치적인(?) 문제가 등장한다. 신노스케는 다행히 이러한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막부 내 가장 강력한 집안의 인물과 인연이 닿는다. 그런데 이 실력자(?)는 집안의 막강한 세력을 배경으로 가졌지만 매사 전면에는 나설 수 없는 서자 출신이다. 이 사람이 도움을 주는 대신 대가로 바라는 것은 바로 막부가 여는 공식 신년회에 나오는 과자. 자신은 참석할 수 없는 '적자'들의 다과상 과자를 가져다 달라고 한다. 그것도 종류별로 하나씩. 비범한 인물의 어렵고도 평범한 소원이다.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신노스케는 그렇지 않아도 악화일로인 번의 경영난으로 다른 루스이야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로비 자금 혹은 홍보 자금은 꿈도 못 꾸는, 빈약한 형편을 죽은 형에게서 직책과 함께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 신출내기 루스이야쿠는 오히려 자신의 평범함을 무기로 매사에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번이 직면한 위기를 돌파해 나간다. 물론 뇌물에 필요한 특별한 '과자'를 구해오는 일까지도.

도박에 비유되는 인생에서 적은 판돈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것, 혹은 체면을 지킨다는 것은 때로 중요한 방어책다.
그렇지만 덕분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실제 당면한 문제 자체보다 지키고자 하는 체면과 가지고 싶은 허상에 휘둘릴까?

 계급장을 떼고, 나를 이런 사람이려니 여기게 해주는 갖가지 무대장치를 소거하고 난 뒤의 평범하고 그래서 딱히 끌리지 않는 해결책을 우리는 선택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체면과 허세를 버린 진실을 받아들이는 건 민낯으로 증명사진 찍기보다, 가발 없이 소개팅에 나가기보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기본기와 성실함이 눈에 띄었던, 아주 재미있는 소설.

작가의 이전글 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