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nne Park
Dec 31. 2020
아주 시골은 아니지만 그래도 읍..단위인 아버지의 고향집에선 음력설을 쇠지 않고 양력 1월 1일에 가족들이 모이곤 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식들이 좀 편하게 다녀가라고 (한동안 음력설이 없어진 즘) 할아버지가 그러자고 하신 것 같았다.
나머지 풍경은 다른 집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는데 지금 기억에 남는 건 찹쌀가루로 반죽한 떡을 삼촌들과 아버지가 번갈아 가며 큰 나무망치로 치고 치대던 것.
(집안 구석구석을 꿰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도대체 저 망치가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 의심스러웠는데 1월 1일이 지나면 또 훌쩍 자취를 감추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장난이라도 칠까 봐여서인지 어디에다 넣어두는지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가래떡은 방앗간에서 뽑아 오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 집에선 이렇게 반죽하고 치댄 것을 팬에 둥글게 구워냈다. 금방 구워 찰지고 끈적이면서 고소한 떡을 몇 접시 정도는 조금씩 젓가락으로 찢어 조청이나 꿀에 찍어먹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찬 방에서 굳혀 딱딱해지면 한 입에 들어갈 크기로 썰어서 가래떡과 함께 떡국을 끓였다.
그저 ‘굽은 떡’이라고 부르던 이것을 떡국에 넣으면 굳었던 것이 풀어져 다시 찐득하고 걸쭉해지고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하는데 국 속에 끈적하게 풀어진 떡이 든 음식이 나는 좀 싫었다. 조청에 찍어서 먹을 땐 좋았지만 뭔가 단정하게 끓고 있던 국을 흐트러뜨리는 것 같았다. 싫다고 그냥 떡국만 막겠다고 하면 어른들이 맛을 모른다고 괜히 타박을 주곤 했다.
시집을 오니 시댁이 있는 경북에선 그런 풍습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고 하시는 걸 보면 어쩌면 할머니의 고향인 평북 지방의 음식인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부엌일에서 물러나시고 돌아가시고 난 후로는 그런 떡국은 먹어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 대에선 동생과 나, 사촌 형제들 중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나만 ‘굽은 떡’을 자세히 기억하는 것 같아 조금 우습지만 애들에 좀 더 크면 집에서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고. ㅋ 아직은 주변의 많은 일들이 이렇게 기억으로만 남는 일이 아니라 다행이다. 아직은 나도 시끄러운 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