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게스트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얼굴이 빨개졌다. 안 가본 곳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어쩜 우리는 일본과 중국 말고 가본 나라가 이렇게나 없을까?
게스트하우스를 닫고 나자 그 질문들이 다시 떠올랐다. 늘 궁금했었는데. 홍콩은 정말 “Everywhere is like Seoul station”인지, 정말 “Very humid”한지. 타이베이는 서울과 비슷한지, 홍콩과는 어떻게 다른지.
"우리, 가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언제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막상 시간을 낼 수 없어 가지 못했던 도시들. 직접 가보지 않고 말로만 들어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던 도시들. 우리는 그들의 나라로 마침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호스트에서 게스트가 되어보기로 했다.
어느 도시를 먼저 갈까. 우리집을 가장 많이 찾아주었던 타이베이와 홍콩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이리스와 쉐리가 살고 있는 타이베이?키라와 피오나가 살고 있는 홍콩? 우리는 두 도시 중 타이베이를 먼저 가보기로 했다.
그들의 이야기와 달리 우리가 실제로 마주한 타이베이는 결코 서울과 비슷하지 않았다. 도시는 방콕과 도쿄를 조금씩 닮았고, 홍콩보다 훨씬 중국스러웠다. 투박한 듯하지만 그 안에 세련되고 귀여운 얼굴이 있고, 소박한 것 같지만 화려하기도 한 타이베이. 도시 어디에서나 우육탕 끓이는 냄새가 났다. 높은 습도, 뜨거운 태양, 크고 작은 오래된 회색빛 건물들과 거대한 짙초록 열대나무의 조화는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한국인과 이렇게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나 다른 기후 아래 살아가고 있구나. 머리속으로만 이해하던 실체를 마침내 마주한 느낌이랄까. 우리는 다안공원 역의 젠라이브러리 카페에서 아이리스, 쉐리와 반갑게 재회했다.
방콕, 타이베이로 시작한 우리의 여정은 몇 년에 걸쳐 도쿄, 교토, 프놈펜, 다낭, 발리, 홍콩, 청두로 이어졌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앙코르와트가 압도적이었던 프놈펜, 밀도있는 수천의 매력이 수직으로 쌓여있는 홍콩, 고요한 휴양의 도시임에도 에너지가 넘쳐났던 다낭, 어떤 말도 필요없이힐링 그 자체인 발리, 왜 그 도시가 미식의 도시인가를 증명해보였던 청두.
게스트하우스를 열기 전에는 무엇보다 잘 몰랐고 그래서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던 아시아의 많은 도시들은 이제 우리에게 의미있는 곳이 되었다. 그곳은 언제든 떠나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곳이며 그 친구가 일하고 사랑하고 살고 있는 곳이다.
연남동을 떠난 지 벌써 3년여. 그럼에도 나는 불과 한 달 전까지도 4월말에 예약하고싶다는 일본 사토 상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 사이 코로나19가 전세계로 심각하게 확산되어 그는 여행계획을 수정해야 할 테지만.
우리는 이렇게 종종 예약문의 메시지를 받았으며, 그때마다 이제 문을 닫았고 이사했으며 연남동의 더 좋은 게스트하우스를 추천해주겠노라고 그리고 언제든 함께 커피를 마시고싶을 땐 주저없이 연락달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아쉬워하며 언젠가 다시 문을 열게 되면 꼭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그때까지 그들이 우릴 기억할 수 있을까. 인사치레였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고맙다.
타이베이에서 다시 만났던 아이리스는 이후 도쿄여행때 우연히 출장중이던 남편과 길에서 마주쳤으며, 이후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홍콩에서 부모님과 함께 여행왔던 피오나와 일본의 준코는 이후 친구들과 연남동을 다시 찾아서 이웃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연결해주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처음에는 혼자, 두 번째는 여자친구와 함께 우리집을 찾았던 에릭은 이후 그녀에게 프로포즈하여 약혼을 하고 1년 뒤 결혼에 골인하였다. 도쿄의 우에노 상은 최근 서울에 왔다가 연락이 되어 이사한 우리집에 놀러와 몇 시간이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이베이의 쉐리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금은 화가로, 언론인으로, 또 새내기 정치인으로 더욱 열정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삶이 있다. 그들은 친구와 가족과 동료와 곧 가족이 될 사람과 혹은 혼자서 우리집에 머물렀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서울을 즐기고 각자의 추억을 가지고 다시 자신의 도시로 돌아갔다.
우리는 전세계로부터 온 수백 명의 여행자들을 내 집 거실에서 만났고, 그들이 서울을 즐기는 방식을 흥미롭게 지켜보았으며, 그들이 살고있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이 서울을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얻은 게 하나 있다면,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틀에 박힌 길을 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나만의 방식대로 재미있게 살며 뚜벅뚜벅 걸어가면 그뿐이다.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문을 닫으며 나의 연남동 생활은 막을 내렸지만 우리는 지금도 연남동으로 종종 산책을나선다. 이야기와 추억이 깃든 골목길, 우리의 옛집, 우리의 옛 단골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 연남동 사이에서 여전히 남아있다. 나의 살던 연남동. 거리의 풍경은 계속해서 달라지겠지만 고즈넉하고 우아한 골목길의 운치만큼은 오래도록 변치 말아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