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 Mar 26. 2020

어느 날 갑자기 메르스가 왔다

게스트하우스, 이대로 괜찮을까?


가끔 나를 멘붕에 빠지게 하는 게스트들 때문에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여전히 보람있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해를 두 번 넘기는 사이 홍대입구역 주변으로 굉장히 많은 게스트하우스가 새로 오픈했고, 신축 호스텔과 호텔도 하나둘씩 문을 열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예약률이 조금씩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저녁, 우리나라에 첫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 뉴스를 처음 접할 때만 해도 메르스 사태가 그렇게까지 공포스러운 현실이 될 거라고는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모두들 사색이 되어 마스크며 소독제를 구비고,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연남동 경의선숲길 공원에 아무도 다니는 사람이 없는, 사위가 고요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날들이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나 진짜 공포스러운 일은 따로 있었다. 5월이면 이미 12월 예약은 물론, 그 다음해 설날까지 미리 예약이 되어 있을 시점이다. 우리는 수백 건에 달하는 예약이 단 며칠 만에 완전히 취소되는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매월 500만 원씩 월세와 인건비, 소모품비를 감당할 사장이 얼마나 될까. 게스트하우스 사장들은 모여서 연일 머리를 맞대고 결론없는 대책회의를 했고, 우리는 메르스 사태로 피해를 입은 관광숙박업 종사자를 위한 대출받았다. 메르스 사태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자가 사업자인지, 임차 사업자인지를 적나라하게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자가 사업자는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고, 임차 사업자들은 많이들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했다. 


메르스가 잦아들기 시작하자 사드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임차사업자는 아니어서 월세에 대한 염려는 없었지만, 대출이자와 생활비를 제대로 벌 수 없게 되면서 과연 우리가 언제까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슬슬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시설 좋고 위치 좋은 경쟁사는 점점 늘어가고, 메르스와 사드로 한번 떠난 게스트는 여간해서 다시 돌아와주지 않았다.

어떤 게스트하우스는 문을 닫았고, 어떤 게스트하우스는 셰어하우스로 전환했으며, 어떤 게스트하우스는 아예 월세와 전세로 돌렸고, 어떤 게스트하우스는 안정적인 재정확보를 위해 1층에 카페를 열었다. 단독주택이었던 우리집은 월세나 전세로 돌리기에 용이하지 않았으며, 셰어하우스는 아직 모험에 가까웠고, 용도 변경을 해서 카페를 낼 만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 게스트하우스 접을까?”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우리가 느낀 점은 달걀을 한바구니에 담아선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현금이 많거나, 둘 중 한 사람은 정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일을 했어야 했다. 그도 아니면 단기 게스트 외에도 장기 게스트를 함께 받거나 국제정세에 언제든 휘둘릴 수 있는 아시아 게스트 중심이 아니라 영미유럽권 게스트도 균형있게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메인 게스트는 중화권 단기 게스트였고, 남편도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사업에 올인하고 있던 때라 우리에게는 새로운 전략과 대책이 필요했다.


언젠가 또 이런 일이 생길 텐데, 공중보건이나 국제정치 이슈가 있으면 쉽게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리고 마는 게스트들의 등만 바라보며 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게스트하우스 시즌1을 종료하고 이제 막 시작한 참인 두 번째 인생 계획을 조금 수정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애초에 게스트하우스를 하기 위해 조금 무리해서 구입했던 집이었기 때문에 사업을 접기로 결정한 이상 아쉽지만 집도 내놓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하면서 우리에게 평생직장이 생겼다며, 재미있게 열심히 해보자고 파이팅을 외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일로 닫게 될 줄이야.


간간이 찾아오는 게스트를 받으며 버티는 시간이 이어졌고, 그로부터 1년 뒤 우리는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잔금일까지는 정신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새로 이사갈 곳을 찾아 계약하고, 이삿짐센터에 예약을 하고, 세무서에 폐업신고를 하면서 우리의 땀과 눈물과 웃음이 배어있던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픈을 준비하면서 이것을 살까 저것을 살까 머리아프게 고민하며 하나하나 소중히 구입했던 물건들이 중고나라를 통해 다른 쓸모를 찾아 하나둘 우리곁을 떠나면서, 비로소 우리가 이 사업을 접는구나 그리고 정답던 연남동을 떠나는구나 실감했다.


아파트에 비해 단독주택은 구석구석 물건을 쟁여놓을 공간이 많아서 정리해야 할 물건들이 상당했다. 3년 동안 찾지 못했던 책과 음반과 서류들이 지하실에서 끝도 없이 나왔고, 정리해야 할 CD가 너무 많은 나머지 결국 용달차까지 불러야 했다. 이삿날에는 비가 왔다. 만감이 교차했다. 


낯선 타국에서 서울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찬 눈으로 우리집을 방문했던 게스트들의 즐겁고 행복한 에너지가 가득했던 집을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구석구석 우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짧은 시간 많은 추억이 쌓인 집이었다. 연남동 단독주택을 선택한 건 우리였지만, 그 집을 완성시킨 건 잠시 머물다 간 여행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와 미소와 마음이 그곳에 남아 있다. 

아마 그래서인가보다. 어쩌다 연남동에 갈 일이 생기면 아침부터 설레는 이유가.


연남동 게스트하우스 시즌1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머지않아 우리의 사생활도 지키면서 어떤 상황, 어떤 게스트가 와도 지치지 않고 멋지게 대처하는 주인장이 되어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그때까지 잠시만 안녕. 덕분에 행복했어!

이전 13화 게스트하우스를 하지 않았다면 미처 알지 못했을 것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