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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Mar 26. 2020

게스트하우스를 하지 않았다면 미처 알지 못했을 것들

쉽진 않지만, 그럼에도 해볼 만하다

직접 뛰어들어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세상이 있다. 게스트하우스도 그렇다.


우리는 미처 몰랐다

Kpop팬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는 것을. 우리집에 머물렀던 Kpop 일본팬은 30대에서 60대까지 있었다. '스타일난다'와 '라인캐릭터'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 줄도 몰랐다. 트렁크 전체를 마스크팩으로만 가득 채워 가는 게스트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김 뿐만 아니라 한국의 라면, 과자도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딸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집에 머물던 대부분의 아시아 게스트들은 거의 매일 저녁 딸기를 먹었다. 그리고 참외라는 과일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몰랐다. 아침식사 후 가끔 후식처럼 내주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무슨 과일이냐고 신기해들 했다. 벚꽃과 단풍, 눈을 보러 생각보다 많은 여행자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규모가 게스트하우스의 경우 비성수기인 겨울에 스키투어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게스트를 유치하곤 했다. 

연남동 주민들이 정이 많고 친절하다는 것도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알게 되었다. 가끔은 시끄러웠을 텐데 감사하게도 단 한 번도 항의하시는 분이 없었다. 우리집을 찾아 헤매는 게스트를 직접 우리집앞까지 안내해주고 쿨하게 가시는 분들도 많았다. 연남동에 워낙 게스트하우스가 많다보니 어르신들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신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에게도 직업병이 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으로 살다보니 직업병이 생겼다. 매트리스 커버를 매일같이 벗기고 씌우느라 벽에 붙여놓은 침대를 좁은 방에서 이리저리 옮기다보니 손목에 무리가 온 것이다. 결국 정형외과를 드나들며 플라스틱 손목보호대를 한동안 차고 다녀야 했다.

나도 모르게 배인 습관으로는 이런 것들이다. 1. 세상의 모든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는 우리의 공부방! 여행을 갈 때마다 묵는 호텔룸의 구성, 액티비티, 어매니티 등 모든 것을 타산지석 삼는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꼼꼼히 기록한다. 2. 지하철역 환승역에서 지도를 보며 난감해 하는 여행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먼저 다가가서 "도와줄까?"하고 물어본다. 3. 연남동에서 트렁크를 끌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헤매고 있는 여행자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 웬만하면 해당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데려다준다. 내가 그렇게 도움을 받았듯이. 4. 지나가는 여행자가 대만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홍콩 사람인지 스타일과 언어로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 5. 트렁크 끄는 소리가 들리면 조건반사적으로 심장이 뛴다. 아, 이제 또 새로운 이들을 만날 시간이구나 하는 설렘과 떨림이랄까. 6. TV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게스트 입장에서 보게 된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찾아오는법,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들이 겪을 법한 어려운 문제들, 그들이 맛있게 먹는 한국 음식 같은 것들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7. 홍대입구역에 갈 때마다 요즘 외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오는지 나도 모르게 탐색하고 있다. 8. 나중에 게스트하우스를 다시 오픈하면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종종 구상한다. 9. 서울시의 외국인관광객도시민박업 강의를 시간이 날 때마다 꼬박꼬박 참석해 최신 정보와 트렌드를 공부하고 있다.



주인장이 하는 일의 70%는 청소-빨래-요리(또는 아침식사 준비)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루틴한 일을 잘 견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루틴의 대부분은 청소-빨래-요리다. 그외의 루틴으로는 이런 것들이다. 우리집을 홍보하고, 예약을 확인하고, 홍대입구역에서 우리집에 오는 길을 텍스트와 영상으로 보내주고, 새벽에도 날아오는 게스트의 SNS에 꼬박꼬박 답해주고, 체크인 도와주고, 연남동에서 가성비 좋은 한식당을 소개해주고, 명동이나 동대문에 가는 법을 알려주고, 환율이 좋은 환전소를 안내해주고, 아침식사와 커피를 챙겨주고, 체크아웃하는 게스트들을 위해 리무진이나 택시를 불러주고, 밤새 딸기며 맥주며 소주며 떡볶이를 먹고나간 흔적을 정리해주고, 쓰레기와 재활용품과 음식을 한데 섞어 버린 것을 하나하나 다시 정리하고, 타올과 침구류를 벗겨 빨래하고 건조하고, 그와중에 새로 체크인하는 게스트가 우리집을 못 찾아 헤매고 있다는 연남동 주민의 전화가 걸려오면 그 즉시 뛰어나가 게스트를 데려오고, 웰컴티와 지도를 주며 설명을 해주고, 제발 변기에 휴지 말고 다른 것(!)은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플랫폼에 프로모션을 걸거나 페이스북 등 SNS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하고, 슈퍼마켓에 가서 내일 아침에 요리할 재료와 샴푸, 휴지를 사오는 일. 이런 일이 매일같이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끔은 무례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게스트도 온다

대부분의 게스트들은 따뜻하고 매너있고 대화가 잘 통하는 멋진 사람들이다. 모두가 그랬다면 좋았으련만, 연차가 늘어가자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게스트들도 한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예약한 곳이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호텔인 줄 착각하는 게스트가 있다. 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는 게스트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 또 술을 먹고 새벽에 들어와 거실에서 매너없이 과하게 떠들고 샤워하며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게스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스트들도 있다. 몰래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더블룸을 예약해놓고 3명 4명이 오거나, 그렇게 당부했건만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게스트도 있다. 변기에 휴지 말고 다른 것은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해도(화장실에 휴지통이 따로 있다) 여전히 물티슈와 생리대, 콘돔을 변기에 버려 정화조 공사까지 하게 만드는 게스트들도 온다. 가끔은 말이다.


게스트와 너무 멀어도 문제지만 너무 가까워도 안 좋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바로 우리만의 사적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불편은 예상했으나 때로는 정말 피곤했다. 함께 살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보니 방문을 나서면 모든 곳이 게스트들을 위한 공용공간이었기 때문에 샤워를 하러 갈 때도, 볼일을 보러 갈 때도, 심지어 물을 마시러 갈 때도 조심조심 게스트들의 공용공간을 지나다녀야 했다. 방 안에 있을 때조차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 편한 복장으로 TV를 보며 쉬고 있는데 방문을 두드리며 손톱깎이, 귀파개, 이쑤시개, 빨래 비누, 세숫대야를 빌려달라는 게스트도 있었고, 치킨이나 짜장면을 시켜줄 수 있는지 묻는 게스트도 있었고, 내일 새벽 택시를 예약해달라는 게스트도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민박업의 취지가 주인이 사는 집의 남는 방에 외국인관광객에게 숙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사실 피곤할 때가 많다. 물론 그래서 게스트와 금방 친해질 수는 있었지만. 그래서 우리는 1층에는 게스트를 받지 않고 2층만 받을 때도 있었다. 무엇이든 적당한 거리는 필요한가보다.



생활비는 벌 수 있어도 큰 돈을 벌 수는 없다 

다른 자영업과 달리 게스트하우스는 일정금액 이상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다. 판매할 수 있는 객실의 수와 비용은 이미 정해져 있고, 객실가동률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싸움인 것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객실가동률을 월평균 70%쯤은 무난하게 하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실제로 운영해보니 55%를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외부로부터의 위협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연남동에 신규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섰고, 홍대입구역 주변으로는 호텔과 호스텔을 새로 짓고 있었다. 불법으로 운영하는 오피스텔 에어비앤비도 점점 늘어났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도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볼 만하다

큰 돈을 벌 수는 없지만 생활비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겸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다른 어떤 직업에서는 해보지 못할 경험이 있다. 우리가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전 세계에서 찾아온 좋은 이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것도 우리집 거실에서. 가장 좋은 점은 한국 여행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공항에서 막 우리집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뿜어내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매일 받는다는 것이었다. 나와 남편의 얼굴이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많이 밝아진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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