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은 성시경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건 어느 새벽, 성시경 노래를 듣던 때였다. 초딩 때부터 삼십 대인 지금까지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에 가장 적합한 키워드가 성시경이라는 것을.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내 나름의 근거가 있다.
첫째, 나는 자그마치 23년 된 '성시경 고인물'이다. 중간에 탈덕기(앨범을 내지 않았던 기간)가 있었지만 그가 다시 노래를 부르자 그게 휴덕기였다는 걸 알았다. 뭐 하나 꾸준하게 하는 법이 없는 내가 20년 넘는 세월 동안 계속해온 것이 성시경 덕질이다. 초딩 때는 '성사모(성시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닳도록 들락거리며 했고, 지금은 유튜브 영상을 돌려보며 하고 있지만. 기술도 바뀌고 문화도 바뀌는 세월 동안 덕질 대상만 바뀌지 않았다. 대단한 일이다.
둘째, 나는 그의 얼빠다. 나의 취향을 저격한 것은 그의 노래만이 아니었다. 큰 키에 안경을 쓴 그의 외모마저 내 심장을 저격했는데, 지금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이 굉장히 쑥쓰럽다. 친구들한테는 대개 "노래만 좋아하는 거야"라고 하기 때문이다. 왜 그의 얼빠라는 사실을 밝히는 게 부끄러운 걸까. 어쨌든 나는 신화, 지오디에 열광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키 크고 안경 낀 성시경을 좋아하는 유일한 초딩이었다. 책상에 붙일 시간표나 축전 같은 것은 성사모에서 공수해온 것들이었다. 추측건대, 그때의 어린 나도 성시경의 외모에 혹했던 듯하다.
셋째, 그는 나의 진로에도 영향을 주었다. 푸른밤 막방 날 우발적으로 '나는 라디오 작가가 될 거야' 결심한 후로 신방과에 가서 실제 방송국 놈으로도 몇 년을 살았던 것이다. 인생을 걸어야 하는 진로에 연예인을 개입시키다니, 지금은 그 시기 고딩의 추진력이 놀랍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왜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엄마, 미안해.)
이 글도 성시경의 킬링보이스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쓰고 있다. 이쯤이면 『아무튼, 성시경』을 쓸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치만 좋아하는 마음은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게 이만큼의 이야기가 있지만 나보다 더 활발히 활동한 팬도 있지 않겠는가. (사실 나는 퍼플 오션도 아니고 앨범을 사모으는 편도 아니다.)
아무도 청탁한 글이 아니면 어떤가.
나보다 성시경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난들 어떠랴.
그냥 재밌으려고 쓰는 거다. 나 좋으려고 쓰는 거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큰 덩치에 성격까지 내성적이어서 '우직한' '묵직한'이라는 형용사하고만 어울렸던 내가 가장 가벼워질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연예인 얘기라서 가볍다는 게 아니라, 구질구질하거나 처절하지 않을 수 있는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주제라는 뜻이다.
확실히 성시경이라는 키워드를 풀어가다 보면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둘러싼 기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재밌어서 늦은 밤까지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 이 글과 앞으로 쓰게 될 글에 '성시경' 뒤에는 '님'이 빠져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