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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셜리 Jan 13. 2021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었던 일이 일어난 적 있나요?

사기를 당한 지 1년이 지났다.


1년은 어떤 일이든 흐릿해지기 마련인 시간이다. 왠만한 일은 없던 일처럼 잊히기도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사건은 아직도 우리에게 현재형이다. 사기꾼은 도망갔고 우리는 돈 한 푼 받지 못했다. 아니, 돈은 자시고 1년이 지나도록 사기꾼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그놈의 인권이라는 것 때문에. 살면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지금 나는 이 글을 왜 쓰는 걸까. 내가 이만큼 힘들었다며 징징거리려고? 이제는 가볍게 풀 수 있는 썰이 돼서? 그렇지 않다. 힘듦을 털어놓아서 얻게 될 위로보다 치부를 들켜서 얻게 될 수치심이 더 크며, 아직도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울며 지내고 있다. 징징거리고 싶다거나 썰을 풀겠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우선 나는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이들의 고통과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다. 내가 특별하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먼저 겪어 본 사람이기에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엄마는 이 일로 인해 몸과 마음 모두 너무 많이 소진해버렸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게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다. 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서점에 가서 해답을 찾곤 하는데, 사기 당해 어찌할 바를 모를 때는 서점에도 답이 없었다. 『○○ 하는 법』 책은 그렇게나 많은데 『사기 당하고 사는 법』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 중 100명 중 1명은 사기를 당한다는데 말이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010319051469054


사기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절대 사기 당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나의 당부 따위 없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탈하게 살아가겠지만 나 역시 '사기는 누가 당하는 걸까' 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오지랖과는 거리가 먼 내가 이런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에게 하는 이유는 사기가 생각 이상으로 끔찍한 범죄였기 때문이다. 사기는 다른 범죄와 달리 원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며, 사기꾼은 무조건 잘해주는 사람의 뒤통수를 친다. 그래서 피해자는 '배신감'이라는 쓴잔마저 들이켜야 한다. 잘못 믿은 잘못으로 평생 스스로를 원망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겪기 전에는 짐작하지 못할 고통이다. 그러니, 이 고통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라고 말해두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사회가 더 이상 사기를 용인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기 당하고서 안 사실인데, 생각보다 거짓말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나는 연차 사유에 있지도 않은 가족 건강검진 같은 걸 써놓으면 놀면서도 마음이 불편한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담배 한 대 입에 꼬나무는 여유를 가진 이들도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법은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법만큼은 사기 치고 거짓말하면 잘못했다고 엄히 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경찰도 검찰도 밥벌어 먹고사는 직장인일 뿐인 이 사회에서는 구제를 바랄 수 없었다. 우리한테 3억 넘게 가져간 사기꾼도 2~3년만 감방에서 살다 나오면 죗값 다 치렀으니 떳떳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3년에 3억, 괜찮지 않은가? 연봉이 1억이라니, 건물주는 못 되더라도 사기꾼은 되겠다는 이들이 판치는 건 다 법이 그렇게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몰랐던 내가 바보였다.




2년이 지나면 괜찮을까? 3년이 지나면?


아마 지금보다는 형편이 나아져서 웃는 날이 많아질 수도 있겠다. 이 일을 생각해도 전혀 화가 나지 않는 날도 오지 않을까.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이 일을 당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 않는 일은 분명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었던 일도 일어난다. 밀려드는 불행을 잘 받아치는 방법 같은 건 없다. 나도 별다른 방어도 하지 못하고 받아내며 1년이 흘렀다. 그동안 잘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살아남긴 했다. 그리고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된 걸 보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내가 살아낸 변변치 못한 1년의 기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능성으로, 희망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믿는다. 누군가 살았으니 나도 살 수 있겠다고 믿게 만드는 디딤돌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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