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 작가님의 <일할 자격>을 읽는데, 이런 구절이 나왔다.
"계속 사람이 성장하고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그게 기본값인데, 알바로 일하면 그 기본을 못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나는 뭔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뭐가 되어야 할진 모르겠고, 뭐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것만 알겠고."
뭐가 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 그게 너무 이해돼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늘 무언가가 되고 싶었던 내가 떠올라서. 대학생일 땐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고, 방송 작가를 그만둔 뒤에는 편집자가 되고 싶었고, 자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할 땐 기획 편집자가 되고 싶었다. 기획 편집자가 된 지금은 내 기획안이 통과되길, 잘 팔리는 책의 편집자가 되길 바라고 바란다. 영원히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에 휩싸인 채.
지망생을 움직이게 하는 건 불안이다. 미라클 모닝이니 루틴이니 하는 유행을 따라 보기도 하고, 만원 지하철에서 유튜브보단 책을 보며, 퇴근 후에는 운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달콤한 바닐라라떼는 건강과 절약을 위해 삼간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북토크나 강연을 쫓아다니고 독서 모임도 몇 개씩 들어놓는다. 연예인도 아닌데 의욕 넘치는 과거의 내가 잡아둔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일주일, 한 달이 무섭게 흘러간다. 여전히 지망생인 내 얘기다. 서른넷, 지망생 신분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내가 처음 '지망생'이라는 말에 주목하게 된 건 김목인의 <지망생>을 들었을 때였다. 거의 10년은 된 것 같은데, "모든 것의 뒷면은 가려져 있고"라는 지망생의 읊조림이 공감됐다. 지망생의 시야는 그렇다. 저 뒤엔 뭐가 있는지 전혀 가늠이 안 된다. 그냥 좋으니까 하고는 있는데 딱히 뭐가 보여서 하는 게 아닌 상태다. 젊고 시간은 많고 그것 외엔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 멜로디여서일까, 가수의 목소리가 여유로워서일까, 가사 속 지망생들은 불안해 보이기보다 해맑아 보이고, 안쓰러워 보이기보단 귀여워 보인다.
<일할 자격> 속 지망생들은 절박하고 <지망생> 속 지망생들은 낭만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은 같은 인물들일 게 뻔하다. 사람은 절박하다가도 '에라, 모르겠다. 언젠가 되겠지' 철없는 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 존재니까. 아마 이 둘을 갈라놓는 건 '지망의 주체'가 아닐까. 순수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지망하는 사람은 고되기보단 행복을 좇는 모습이 더 부각돼 보일 것이다. 반면, '이 정도론 부족해. 더 대단한 뭔가가 되어야지.' 하는 세상의 목소리에 이끌려 엉뚱한 걸 지망하는 사람은 측은해 보일 것이다.
나는 어떨까. 정말 원하는 것을 지망하고 있는 걸까. 졸업해서 취업하고 결혼까지 앞두고 있는 정석 코스를 밟아온 내가 세상의 목소리에서 자유롭게 욕망해왔다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원하지도 않는 것을 원한다고 되뇌며 젊음을 소모하고 있는 거 아닐까. 가진 것 없어도 마음 편히 '진짜'를 지망해야겠다. 그런 삶을 지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