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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셜리 Aug 05. 2023

회사에서 밀지 않는 책은 내가 민다

비주력 도서 편집자의 기쁨과 슬픔


놀랍게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6월의 낸 책의 홍보 이벤트를 올렸는데 참여자가 아무도 없었다. 책 읽는 사진만 올리면 되는 거였는데! 여름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배스킨라빈스 1만원권도 걸었는데! 책을 사서 사진을 찍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3주 정도의 참여 기간을 둔 것까지, 내 생각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이벤트였다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여서 충격을 받았다. 책에는 관심이 없어도 이벤트만 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무매력일 정도로 내 이벤트가 별로였나?나 이렇게 감이 없었나? 자책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여기서 물러날 순 없다

배스킨라빈스 상품권으로 지급하려던 예산 10만원이 굳었으니 회사에 뜻밖의 예산 절감 효과(?)를 가져다주고 조용히 묻힐 수도 있었지만,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예산은 아무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쓰기로 한 건 쓰고 끝내고 싶기도 했고, 시리즈로 벌써 네 번째 내는 이 책이 번번히 묻히는 게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안 민다고 나까지 안 밀면, 정말 멈춰버리는 책이어서 나만은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새로 이벤트를 기획했다.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이므로 책 내용과 관련된 것이나 책을 사야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배제한다. 둘째, 사람들이 쉽게 관심 가질 만한 소재를 접목한다.  셋째, 상품은 어른아이 상관없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네이버페이포인트로 바꾼다. 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등장인물들의 MBTI를 맞히는 이벤트였다. 기획안을 주간님께 보여드렸더니 '너무 없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관심 끌고 싶어하는 내 마음이 너무 많이 느껴진다고 ㅋㅋㅋㅋㅋ 너무 없어 보이지만 않게 잘 다듬어서 해보라고 하셨다.


무플 편집자는 어떻게 댓글 100개를 받았나

결과는? 좋아요 140개, 댓글 100개 이상을 받았다. 이벤트 규모는 10만원으로 동일했는데 말이다. 예산이 같아도 참여 방법을 쉽게 바꾸고 관심을 끌 수 있는 내용으로 바꾸면 결과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아주 작은 실험을 끝낸 박사처럼 조용히 기뻤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책의 등장인물들을 알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언급하며 주인공의 MBTI를 추측해준 댓글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벤트가 흥한다고 책 판매량이 급상승하지 않았다. 그치만 이렇게 조금씩 다가가면 우리 책도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무플의 슬픔이 댓글 100개로 완치됐다.

 

회사에서 밀지 않는 책은 내가 민다

이번 책 마케팅을 하며 느낀 건 내가 벗어날 길 없는 비주력 도서 편집자라는 것이다. 모든 회사엔 주력 상품과 비주력 상품이 있듯이 출판사에도 주력 도서와 비주력 도서란 게 있어서 주력 도서에는 편집부와 마케팅부가 모두 매달려 홍보에 힘쓰지만, 비주력 도서에는 마케팅부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마케팅부는 언제나 주력 도서 홍보에 힘을 쓰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비주력 도서를 담당하다 보니 마케팅부의 무관심은 익숙하지만 '내 책은 정말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구나' 하는 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건 유쾌한 감각은 아니다. 외로움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이벤트 참여자가 아무도 없을 때의 슬픔도 나 혼자, 이벤트 댓글이 100개 달렸을 때의 기쁨도 나 혼자의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비주력 도서만 주는데 나 혼자 뭘 어떡해' 하고 불평만 하거나, '나는 맨날 비주력 도서만 맡네. 내가 그런 존잰가' 하고 기죽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진 않다. 그건 마치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범죄자가 됐어요, 라고 말하는 태도와 같기 때문이다. 그런 삶은 삶이라고 할 수도 없다. 콩 심은 데 콩 나지만 비주력 도서라고 해서 편집자까지 힘을 아낄 필요가 있을까. 회사에서 예산 쓰지 말라고 눈치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되든 안 되든 이것저것 제안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할 때 나는 더 재미있었다. 회사에서 밀지 않는 책은 내가 밀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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