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하는데 좋아하는 일이 있나요
최근에 면접을 하나 봤다. 잡지사 에디터 면접이었는데 서류 전형에서부터 20자 자기 소개와 서평을 쓰라고 하더니 면접에서 글에 관한 질문으로 나를 K.O.시켜 버렸다.
면접관 중 한 명은 내 서평을 평가할 생각은 없지만(정말로?) 내 서평을 읽고는 이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들 것 같다는 말로 질문을 시작했다. 그러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서 '지극히 사적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인지 집요하게 물어봤다. 어떻게든 대답을 하려고 책 속 내용을 쥐어짜 봤지만 대답을 제대로 못했고 그게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쓴 표현인 걸 알게 됐다. '나 생각보다 생각 없이 글쓰네?' 했던 순간이다. 그리고 다른 면접관은 내 SNS 계정을 살펴본 모양이었다. "본인이 이 SNS에 잘 썼다고 생각한 글을 좀 알려줄래요?"라고 물어봤다. 그 말은 살펴봤는데 잘 쓴 글을 못 찾았다는 소리. 그런 질문을 받고 나니 나도 머릿속이 혼란의 카오스가 됐다. 어떤 글을 잘 썼다고 해야 하는 거지? 좋아요를 많이 받은 글? 댓글이 많이 달린 글? 조회 수가 높은 글? 결국 그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난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글밥 먹고살 생각을 한 거지?'
결국 이 면접에는 떨어졌다. 지원자가 많아 이번에는 함께하지 못한다는 정중한 이메일. 하지만 그쪽도 나도 알고 있다. 내가 글을 못 써서 떨어진 것임을.
사실 놀랍다. 나 그래도 스물넷부터 글밥 먹고 살아온 사람인데 글 못 쓰는 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말이다. 서른둘, 천직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적인 적성은 파악했어야 하는 나이인데 이토록 자신을 모르고 살아온 건가?
그리고 처음으로 곰곰 생각해 봤다. '정말 나는 글을 잘쓰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런데 생각의 결론은 이거였다. 나는 글을 잘 쓰진 못한다. 하지만 정리는 잘한다. 실제로 내 SNS 계정에서 반응이 좋았던 글은 정보를 깔끔하게 정리해둔 스타일의 글이었다. 적성을 아예 잘못 파악한 건 아니었다. 정보성 글도 글이니까. 하지만 세부적으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말머리도 없고 표도 없이 맨땅에 헤딩해서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는 잡지 글도 잘 쓸 거라고 지레 짐작했으니 말이다. 스스로의 재능을 과대평가한 것이 패착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왔다. 근자감 같은 거 1도 없는 내가 말이다. 어쩌면 쭈구리도 인생에 하나쯤은 이런 오만을 품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그래서 자유 글쓰기가 나의 강점이 아닌 약점임을 알게 해준 이 경험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너 이거 못 해'라고 솔직히 말해주는 이 없는 안전지대에 사느라 생각 없는 멍청이로 살았는데 오랜만에 나를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달까. 내가 못 하는 걸 알았으니, 그럼 앞으로는 좀 더 주제에 맞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하나. 잘하는 것만 하고 살아갈 것인가, 못 하는 것이지만 좋아하는 일도 하고 살아갈 것인가다. 앗, 그런데 결론이 이미 나 버린 건가? '못 하는 일'에 '좋아하는'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버렸으니 말이다. 살면서 느낀 건데,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음'이라는 요소를 내포하는 것 같다. 못 하지만 좋아한다니 또 하고 살아야지 뭐…….
생각해보면 나, 글 잘 쓰려고 노력해 본 적 별로 없다. 긴 호흡의 글을 주기적으로 써 본 적도 없고, 정말 내 생각을 담은 글을 남 앞에서 평가받은 적도 없으며, 필사나 글쓰기 수업 등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본 적도 없으니 그간은 날로 먹은 글밥이었다. 앞으로는 '나 글 못 쓰네?'라는 정확한 자기 인식 위에 글쓰기 실력을 쌓아가야지. 필사도 시작하고 독서 모임에도 들어서 사고력을 키우는 일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면접 하나의 영향력이 꽤 막강하다.
좀 아쉽긴 하다. 나이 서른둘쯤 되면 자기가 뭘 잘하는지도 척척 알고 어디 가서 자기에 대해 말하는 것쯤은 능수능란해야지, 그런 것도 못하는 스스로라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자기반성은 딱 거기까지. 결국 좋아하니까 잘하기로 마음먹은 스스로에 집중하기로 하자.
살면서 자기가 못 하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은 피할 수 없다. 까이는 경험은 좀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못 한다고 포기할 건가? 그건 바보 같은 짓이다. 살면서 '좋아한다'라는 마음이 드는 일, 그리 많이 생기지 않으니까. 그리고 처음엔 누구나 다 못 한다. 왠만하면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 좋아한다면 포기하지 말자. 나는 그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