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발

샤오화 샤오화 어디갔다가 이제 왔어

by 아넷신
common.jpeg 가상의 현실, 전족이 현대사회에도 남아 있는 것으로 소설을 써보았습니다.



6년만이다.

이방인의 땅에서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색깔로 살고 있는 나. 그런 나를 어렵사리 찾아 오는 아이와의 어색한 재회.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그 긴 세월의 미어지는 그리움이 끝을 알 수도 없는 두려움으로 변했다. 아이를 보는 것이 이렇게 겁이 날 줄 생각하지 못했다. 준비하지도 못했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미어지는 가슴을 움켜쥘 줄만 알았지. 나는 그렇게 못난 사람이니까. 스스로 아픔에 지쳐 어린 아이마져도 지워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뛰쳐나온 여자가 나니까. 비겁하고 용기없고 이기적인. 염치도 없는 나. 때가 되면 그냥 아이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만날 수 있을거라 황당한 꿈도 꾸었는데. 이렇게 두려울 줄은 몰랐다. 내가 살아왔던 그 어떤 순간의 두려움도 이보다 더 막막하지는 않았다. 아이의 11살부터 17살까지. 누군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을 그때 나는 거기 없었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니까.

아이는 17살. 17살 사람의 모습은 어떨지. 키는. 몸무게는. 그 나이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엄마 없는 아이, 그런 아이의 시간을. 혼자서 어찌 감당하고 살았을지. 설마 그 힘든 세월의 괴로움때문에 조금도 자라지 않은 예전의 모습으로 아이가 내게 온다면……죄책감에 몸이 부서질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무섭다. 나때문에 애가 온전히 자라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나때문에 힘들었던 세월의 흔적이 아이 얼굴에 다 묻어나면 나는 그자리에서 장남이 되어 버려도 싸다. 동화속의 저주처럼 놀란 얼굴로 그자리에서 몸이 굳고 돌이 되어 버려도 싸다.

“왜 이렇게 늙었어?”

고개도 들지 못하고 쭈뼛쭈뼛 간신히 몸만 가누고 있는 나에게 목소리가 다가온다.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는 그 목소리. 민트색, 흙도 먼지 조금도 묻지 않은 운동화에 흰바지를 입고 그 위를 따라 올라가보니 흰색 멘투멘티셔츠, 그리고 아이의 긴 머리. 그위엔 나를 보는 주눅들지 않은 까만 눈동자. 미동도 없이, 낯선 재회의 어색함도 드러내지 않고, 그렇다고 긴 공백의, 내가 기대하기에는 가당치도 않는 재회의 기쁨도 있을리 없는 아이의 얼굴. 아이는 나를 보고 있다. 마치 어제 본 사람을 다시 보듯이. 이천 백 구십일-6년이라는 말은 너무 짧아서-시간의 장벽은 조금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 당당함에 기죽은 나는 더 쭈뼛해진다. 힘들었지라고 할까. 아니면 오랫만이라고 할까. 무슨 말이 첫마디로 내 뱉을지 막막해서 입술이 움찔거렸다.

“더워. 차 가져왔지.”

“난……여기에 차 없어……공항버스 타고 가자.”

“냄새 나게. 버스를 어떻게 타. 왜 차도 없어?”

“미안해……”

이천 백 구십일 동안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아이. 얼굴도 목소리도 편지도. 보통 이런 경우를 사람들은 왕래가 없었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왕래가 없었다는 말은 정말로 남남으로 단정지을 때나 쓰는 말 같아서 연락을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쯤으로 해두자.

공항버스를 타자면 5분쯤 걸어야 하는데 오늘은 날씨가 죽을 듯이 덥다. 하필 오늘 같은 날. 일생동안 어쩌면 대중교통은 한번도 이용해보지 않았을 아이인데. 택시가 차라리 낫겠다. 가장 깨끗해 보이는 택시를 잡아 타고 아이의 짐을 얼른 싣는다. 아이는 말이 없다. 공항버스 탄다며, 라고 물으면 내모습이 너무 궁색해 질 것을 아이도 알았으리라. 똑똑한 아이니까. 택시안에 앉으니 쿰쿰한 냄새도 나는 듯하고, 창가에 쌓인 먼지, 먼저 타고 내린 사람들의 남겨진 지문들이 거슬린다. 아이도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고. 집까지 오는 그 1시간 14분이 그만큼 길게 느껴질 줄은 알지못했다. 택시안의 쿰쿰한 냄새가 점점점 코를 막아서 숨도 못쉴 듯 답답하다. 내 괴로움이 만들어낸 상상의 냄새 일수도 있다. 나도, 아이도 아무 말없이 창밖만 바라본다. 내가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맞는 것인지. 무슨 염치로 애한테 지껄이나. 조용히 아이가 먼저 입을 열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맞는지. 궁리에……궁리에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멀미가 났지만 꾹꾹 눌러 참는다.

“여기가 니방이야. 좀 작아서 괜찮을지 모르겟어. 중국은 집이 구조가 좀 실용적이지 못해서. 맘에 안들면……아님, 다른 방을 니가 쓸래?”

“나쁘지 않아. 이거 쓸께”

물타기로 어렵사리 연결된 SNS에 아이가 메시지를 보냈다. 보러갈께. 메시지를 보고 또 보고. 그러다가 하루쯤 지나, 그래. 이 말한마디 남겼다. 나를 찾은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지만 온다는 소식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과거의 일정한 어느 시간동안 아이의 엄마였지만 이제는 아닌데. 혼자서 살던 작은 집을 떠나 다급하게 집다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도둑이사처럼 이렇게 마련한 순전히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

정리를 하고 나니 오늘이 나에게도 그집으로 정식 입주하는 첫날이다. 그리고 원래 이런 집에 살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애를 써본다. 하지만 아직도 낯선 집에서 나는 자꾸만 두리번 거린다. 화장실은 저기고 내방은 이쪽 아이방은 여기. 암기하듯이 자꾸만 뇌안에서 중얼거린다.

17살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6년전 아이가 좋아했던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와 약간 맵게 양념한 삶은 브로클리. 그 나이 아이들은 김치를 먹는지 않먹는지 모르지만 만약을 위해서 현지 배추로 담근 김치와 대부분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닝글로리 볶음을 준비했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기 전에, 아니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얼른 점심을 차린다. 아이도 말없이 주는데로 먹는다. 맛이 어떤지 묻고 싶은데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식탁 끝에서 어정쩡하게 왔다갔다 한다. 물이 마시고 싶을 타이밍에 얼른 가져다 준다. 제일 예쁜 컵에 담아서. 나는 마치 아이의 수행비서같다. 아니 집사같다. 관계를 증명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어정쩡함. 그리고 그것의 수백배에 이르는 어색한 오후, 더 어색한 밤이 되었다.

“타박, 타박, 타박……쾅”

12시가 조금 지나서 난데없이 쿵쿵거리는 윗층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아까부터 꼭 닫혀 있는 아이의 방문. 내 기억에 아이는 겁이 많아서 비가 조금만 거세게 와도 방문을 박차고 내 침대속으로 달려들었다. 불규칙하고 둔탁한 움직임. 거친 발소리. 웅얼거리는 듯하면서도 울부짖는 듯한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잡음은 한참이 지나도 그칠 줄을 몰랐다. 짐승이 내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가끔 명확하게 단어들도 들리는 듯하고. 또각또각했다가 다시 쿵쿵. 쾅쾅. 퍽.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조용하고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던 낮의 모습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낯선 소리. 아이는 아직도 방문을 잠그고 기척이 없다. 낯섦에 이골이 난 나에게도 섬뜩한 이 소리. 그런데도 아이는 여전히 아무 반응 없다.

“쾅쾅쾅쾅……으엉……으엉”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니고, 간간이 쿵쿵거리는 소리와 질질질 끌려 다니는 소리, 음침하고도 알 수 없는 소리, 무엇인가 정신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소리……타박 타박 쿵…… 멈추지 않는 소리에 나는 아이의 방문을 살짝 열어본다. 침대 끝에 앉아 천장을 겁에 질려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 아……마음이 쓰리다. 17살 아이가 11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 겁에 질려 앉아 있다. 조금 떠는 듯도 하다.

“무슨 소리야? 위층에 누가 살길레……”

“나도 잘은 모르겠어. 무서우면……같이 잘래?”

“……나 초등학생 아냐”

단호함과 냉정함은 아마도 유전인가보다. 저 단호함에 나는 또 기가 죽는다. 떠는 듯이 보인 것은 내 상상력이었나. 소리는 사라졌는데도 뜬눈으로 밤을 세운다. 다시 소리가 나면 아이에게 가보려고. 날이 밝을 즈음 아이가 잠든 방안의 문을 다시 살짝 열어본다. 고부랑한 삐쩍 마른 새우처럼 아이의 몸이 뼈만 남아 앙상하다. 자는 모습까지 안스럽다. 너를 두고 그렇게 도망치는게 아니었는데. 몸으로 버틸 수 있었으면 그깟 내 마음같은 건 어찌되어도 상관없었는데. 왜 참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을까. 너는 나를 참 좋아했었는데. 어느날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진 내가 너에게 준 배신감. 그놈-나는 아직 그에게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의 잘못이지 11살짜리 어린 너의 잘못은 아니었는데. 너에게 아무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그가 만들었던 어정쩡한 가족이라는 굴래에서 벗어났다. 나는. 거기서도 이방인. 하대와 멸시도 9년을 참았으면 정말 길게 버틴 것이다. 조금 더 살면 사람이 이렇게 미치는구나.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는구나. 너무 겁이나서 그나마 나마저도 잊어버리게 될것 같아서. 내이름 잊어버리고 그냥 못나고 부족한 사람이 되어서 살게 될까봐. 그래서 그랬다. 허벅지에 길게 남아 있는 그날의 흔적. 아이도 그걸 다 보고 말았는데. 울지도 못하고 침대끝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 숨도 못쉬면서 그걸. 그 광경을 다 보고 있었는데. 아이도 어쩌면 6년 전 나처럼 이곳으로 숨어들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설마. 너는 그래도 피붙이 딸인데 설마……. 그래서 더욱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한다.

그날 후에도 며칠을 늦은 밤 혹은 새벽, 같은 소리 때문에 나는 아이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밤을 지세웠다. 아이가 눈치 챘을까. 아무 일이 없듯 안심하고 잘 잔다. 내일은 아무래도 위층 사는 사람들에게 매일밤 감당해야 하는 그 고충을 얘기라도 해야할 것 같다.

“무슨 일이시지요?”

노크를 하고 위층의 문이 열렸을 때. 짙은 눈썹의 검은 눈동자가 나와 아이를 번갈아 본다. 화장기 없는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이목구비 무엇하나 반듯하지 않은 것이 없는 위층 여자의 얼굴. 중국에서 보기 어려운 미인이다. 백지장처럼 흰 얼굴. 긴 검은 머리와 가늘지만 아름다운 선을 가진 그런. 그녀의 가느다란 몸뒤로 가장 안쪽에 있는 방안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거기서 혼자서는 도저히 걸어나올 수도 없을 것 같은 백살을 훌쩍 넘은 듯한 노파가 몸의 반은 간신히 벽에 기대고 나머지 반은 어그적어그적 지팡이에 의지하여 오리처럼 뒤뚱뒤뚱 걸어나온다.

타박, 타박, 타박…….

노파의 느린 발이 한걸음씩 옮겨질 때마다 매일 밤, 이른 새벽 듣던 그 익숙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투박하게 생긴 빨갛고 작은 나무슬리퍼가 노파 발 위에 꽁꽁 묶여 있었다. 나무슬리퍼 안쪽으로는 빨간 복주머니처럼 생긴 양말인지 아니면……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어른의 신발이라기보다는 아이의 것을 몰래 빌려서 신은 것처럼 작고 불편해 보이는, 이상하게 생긴 그런 물건. 눈을 떼지않고 바라보다 아주 오래 전 책에서 보았던 한가지 형상을 떠올린다. 과거의 폐습으로 중국에서 이미 사라졌다는 전족. 노파의 발은 놀라울 만큼 작았다. 마치 불의의 사고로 발의 절반을 모두 잃었거나 태어날 때부터 기형적인 발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처럼. 여자는 노파를 한쪽 소파에 앉혔다. 정말로 어색한 조우다. 그런데 거기다가 괜찮으면 잠시 들어오라고 청한기까지 한다.

“제 엄마입니다. 아래층이면 왜 오셨는지 알겠네요.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미안합니다.”

눈부신 창 밖의 햇빛을 멍하니 바라보던 노파의 입가에 침이 흘러내렸다. 여자는 협탁의 서랍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노파의 벌린 입 사이로 흐르는 침을 닦는다. 노파는 여자가 부축해야만 겨우 움직일 정도인데 밤이고 새벽이고 언제든 정신을 놓치면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했다. 밤마다 들리던 타박거리는 소리는 전족 신은 발을 조금이라도 더 지탱해주기 위한 나무 슬리퍼의 움직임이었고 웅성거림은 노파와 여자의 말다툼이었으며 으엉으엉 울부짖음은 노파의 울음소리였다. 매일 밤의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을 치르는 여자치고 너무 고상하고 무척이나 아름답다.

“발이 정말 작아.”

“전족이야. 저런 건 정말 처음 보네……”

중국말을 한마디도 못알아 듣는 아이도 나도 전족을 눈앞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아이의 한국 말을 여자도 노파도 알아 듣지 못하겠지만 굳이 통역하지 않는다. 아이는 노파의 발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꽁꽁꽁 칭칭칭. 괴상한 모양이다. 저런 발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100년 전쯤 중국에도 계몽사상이 보편화되면서 대부분 살아졌다고 들었는데. 더구나 이미 오래전에 금지되어서 현지인들에게 조차도 낯선 물건이 아닌가. 노파의 얼굴이 한백년 훨씬 더 많이 살았음찍하게 보였던 것은 오랜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시간을 거슬러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라는 생각마져 들 정도였다. 노파의 목에서 소리가 난다.

“샤오화, 샤오화. 어디에 갔었어. 왜 이제 온거야. 샤오화.”

들릴 듯 말듯 희미한 목소리. 저승에서 들려오는 공허한 울림 같은 노파의 목소리와 오래된 생선의 꺼벙한 눈동자를 닮은 초점 흐린 눈이 갑자기 아이에게 말을 건다. 노파가 아이를 바라보며 힘없이 웃었을 때 당당하기만 하던 아이는 갑작스런 노파의 눈빛에 당황하여 내 손을 움켜쥔다. 본능이었으리라. 그 여리여리한 손이. 너무 애처롭다. 이 여리한 손으로 애는 어찌 여기까지. 나를. 찾아왔을까.

“금방 가서 조금만 놀고 온다더니. 왜 이제서야 왔어. 내가 냇가에 가면 안 된다고 했지 않니. 거기 나쁜 사람 있어. 위험하다고 했잖아. 위험하다했는데 왜 말을 안들어. 망할 계집애, 내 말을 듣지 않더니…… 계집애가 매일을 밖에서 돌아다니고……아 ……그러면 안되는데……그럼! 안돼고 말고!”

노파는 혼자서 여러사람의 이야기를 하듯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가 어린 아이처럼 말했다가. 알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가. 갑자기 성난모습이었다가. 다시 활짝 웃었다가. 남자의 목소리를 내는 듯했다가. 여자의 목소리를 내듯 다소곳이 얘기한다. 한장면의 변극과도 같다. 얼굴은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는 변극 마술사처럼 무쌍하게 바뀐다. 눈에는 사무친 그리움이 묻어나듯이 눈물이 줄줄 주름을 타고 번진다. 노인의 얼굴에서 눈물마저 길을 잃었다. 나는 굳이 노인의 이야기를 통역하지 않았다. 굳이 통역할 말들이 아니었으니까.

치매에 걸렸다는 노파는 아이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심성만큼은 착했던 아이. 말도 통하지 않는 노파의 말을 알아 듣듯이. 난생 처음 본 노파와 알 수 없는 교감이라도 나누듯이 찬찬히 서로를 바라보고. 노파가 웃으면 아이도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가. 노파가 아이 손을 주름 그득한 얼굴로 가져가 부비는데도 아이는 그대로 둔다. 지극히 어색한 첫 조우에서 아이도 노파도 전혀 낯설어 하지 않는다. 노파의 눈빛은 마치 죽어 있다가 살아나는 사람처럼 안감힘을 다해서 빛을 내는 듯하다. 자꾸만 흐르는 눈물은 젊은 사람의 그것처럼 주욱 흘러내리지 못하고 여전히 얼굴에 난 고랑을 물길 삼아 굽이굽이 번져 흐르고 만다.

“샤오화야. 내딸 샤오화. 내 귀한 딸.”

“어머니, 이 아이는 샤오화가 아니예요. 애가 놀라겠어요. 그만해요 어머니”

“샤오메이, 언니 이제 왔구나. 니 언니. 니 언니 찾았으니 나는 이제 소원이 없구나. 이제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되니 너무 좋구나”

여자의 이름은 샤오메이. 노파는 갑자기 나무슬리퍼를 잡아당기고 그 속의 전족을 벗어버린다. 갑작스런 노파의 행동에 여자는 어쩔줄을 몰라하지만 노파를 막지는 못한다. 전족을 벗은 그 안에서 슈트리 같은, 아니 그보다 더 흉찍하고 발가락을 잘라서 밑에다 붙인 것 같은 기괴하고도 괴상한 발이 나왔다. 연꽃발. 나는 놀라서 한동안 아무말도 못하고 그 흉직한 물건을 바라보기만 했다. 생선이 썩는 것과 같은 야릇한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사람의 발모양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지. 돼지의 발도 저것만큼이나 야릇하지는 않다. 저 발로 중국의 상류층 여자들은 마음껏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평생 집안에서만 있었다 하지 않았나. 노파의 발은 낸 제 살로 만든 굽이 족히 10cm는 넘는 듯 보인다. 여자는 얼른 의자 옆의 얇은 실크 이불을 가져다 노파의 발 위에 덮으며 당황하여 어쩔줄을 모른다. 낯선 이방인인 나에게 일어난 이 뜻밖의 상황이 감당이 되지 않아 그 당황스러움을 고스란히 표정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아이는 저 구겨진 발이 겁이 나지도 않는지 노파가 움켜쥔 제 손을 그대로 두고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틀어지고 일글어진. 그 연꽃발은 여성의 가장 중요한 부위보다도 더 은밀하게 감추려고 했던 부분이랬다. 이미 기능을 상실한 발이어서 아무리 작은발 여인,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해도 함부로 벗어 내보이지는 않았다 했다. 이 노파는 이방인인 우리 둘 앞에서 전족을 벗어 버리고, 연꽃발 그 흉물스러운 것을 틀어진 그대로 내보인다. 노파의 전혀 꽃을 닮지 않은 연꽃발을, 반세기보다 훨신 전에 금지된 어두운 그림자를 왜 아직까지 저렇게 간직하고 있을까. 이런 상황이 그저 어색할 따름이다. 더욱이 아이를 그런 괴상망측한 중국의 과거 족쇄 옆에 앉혀두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이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초면에 정말 실례가 많았어요.”

“제가 오히려……너무 염치가 없습니다. 아이가 놀라지 않았을지 걱정이네요. 아이가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거 같은데 너무 미안하다고 좀 전해주세요. 미안합니다. 저도 좀 뜻밖에 일어난 일이라서……”

“샤오화가…….누구지요? 아이를 자꾸 샤오화라고 부르네요.”

“17살에 죽은 제 언니예요…….어릴적에 일이 좀 있어서……온전하지 않은 정신으로 살다가 17살에 그만……”

여자의 이런 얘기들도 통역할 필요는 없다. 아이도 상처 투성이일지 모르는데.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어떻게 나에게 올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 묻지도 못하는 상황에. 다른 이의 슬픔 따위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는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니 6년의 중국생활에서도 꼭 알아야 할 업무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았다. 오늘 아이가 아니었다면 소리가 나거나 말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해결하려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을 텐데. 하필이면. 이런 뜻밖의 묘한 관계의 시작이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겁이나기까지 한다.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는게 아니었다. 이런 전혀 원하지도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이 올 것이라고 미리 알기라도 했다면.

그런데 뜻밖에도 아이는 편안해 보인다.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며칠동안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 대화라는 것을 정식으로 마주앉아 해본 적도 없는데. 이런 이상한 일을 겪고 나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머리가 복잡하다. 문제를 해결하러 위층에 갔던 것이 위층이 아니라 마치 다른 세상의 한 시점을 다녀온 느낌이다. 피안의 세계를 넘어 차안으로 내려오는 기분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아이는 계단을 내려오며 내 손을 잡는다. 아이가……내 손을 정말, 제 손으로 다가와 먼저 잡는다. 나는 흠짓했지만 그러면 내 손을 잡은 아이가 손을 뺄까봐 가만히 그대로 둔다.

“나……같이 있어도 돼? 여기 좋아. 여기서 살고 싶어.”

아이는 뜻밖의 말을 꺼낸다. 애는 이제 겨우 17살. 고등학교 1학년의 나이인데. 아직 해야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는 아이가, 엄마 였던 하지만 지금은 아닌 나와 함께 살고 싶다는 얘기다.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일이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아이를 바라보기만 한다.

“윗집 할머니가 내 손 잡았을때. 따뜻했어. 엄마……그렇게 우리집 떠난 이후에 난 매일 추웠는데. 추워서 죽을거 같은데도 기댈데도 없고……안아달라고 때쓸 사람도 없었는데. 할머니가 손 잡아줄때 너무 따뜻했어. 나 처음 몽우리가 생겼을 때도, 처음 피가 나왔을 때도 아무도 없어서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는데……엄마 가버린 거 이해하면서 너무 미워서 어디서 죽어버렸음 좋겠다. 나쁜여자. 다시는 만나지 않을거라고 이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공항서 엄마 봤을때. 미웠던 거 아닌거 알았어.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할지 너무 오래 고민했는데. 여기서 같이 살아도 돼? 엄마……”

아이가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나를 찌르는 날카로운 칼보다 더 아프다. 아이는 울지도 않았고 아이 눈동자는 편안해보이기까지도 했는데 나는 그 눈을 보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 이름을 데면 누구나 알듯한 유명한 대학교수 아버지와 교양과 지성이 넘치는 할머니-그 교양, 지성의 깊이에 나는 빠져 죽을 뻔 했지만-그리고 아버지를 닮아 유명대학생이며 대학원생이던 아이의 두 오빠까지. 그 잘난 사람들은 틈속에서 이 아이가 그렇게 추웠을 때, 그 잘난 이들은 벌벌 떠는 아이를 보지 못했을까. 아니면 못본척했을까.

내가 첫 월경을 했을때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내가 마치 무척 귀한 사람인 듯. 조심. 또 조심스럽게 대하시면서 곱게 접은 하얀색 수가 놓여진 면 기저귀를 주셨다. 그리고 그것을 어찌어찌 처리하는지 방법도 알려주시고 그것이 왜 오는 것인지 이유도 잘 설명해주셨다. 그래서 난 그 첫 월경의 의미가 나를 얼마나 귀한 사람으로 만드는지, 내가 이제 함부로 뛰어다니는 선머슴이 아니라 숙녀가 된 증표라는 것을 아주 잘 알았다. 하지만. 이 아이는……그 난감함과 두려움을 접어두고 편의점이나, 아니면 남자들이 볼 수 없는 그 어느 곳에 가서 수줍게 그것을 제 손으로 샀겠구나. 나는 그 애처러운 아이를 얼른 안아준다. 그때. 너에게 온 고귀한 변화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지 못해서. 그때. 너의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앙상한 아이를 안아주니 6년동안 덮어두기만 했던 내 마음의 상처와 아픔까지 터져버린 듯. 나도 모르게 봇물처럼 울음이 터져버린다. 내 눈에서 눈물이 그렇게 뜨겁게 쏟아진다. 아이도 나를 안았다.

“나는……너만 좋으면 괜찮아. 공주님처럼 자란 니가 나같은 사람을 엄마로 불러주면 그건 내가 고마운거지……고마워…… 고마워. 나한테 와줘서……”

나는 내몸 하나도 잘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못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목소리도 내지 않고 죽은 듯 살아오던 사람인데. 밥을 먹고 잠을 자는데도 살아야 할 이유도 알지 못했는데. 그런데 이 아이가 말해준다. 내가 누군지. 아이에게 나는 지나버린 과거 시간속의 엄마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아이에게 엄마다. 세상의 누구보다도 더 강한 존재라는 엄마. 나는 못난이였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듯하다.

나는. 엄마니까.

아이는 가방 속에서 노트 한뭉치를 꺼낸다. 엄마가 없어진 날부터 힘겹게 찾은 날까지 쓴 일기장이야. 아이는 말한다. 일기장을 보면, 피붙이도 아닌 나를 찾은 이유.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그대로 다 적어 놓았다고.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고. 아이의 꽁꽁 묶였던 아팠던 마음이 노파의 발을 싸매었던 족쇄처럼 풀어 지는 듯 했다.

나는 그날도.

그 다음날에도. 일기장을 펼치지 못했다.

아이가 나와 같이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여기까지 왔을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더욱 일기장을 볼수가 없었다. 조용히 살던 나에게 앞으로 닦칠 폭풍같은 일들이 뻔히 그려지지만. 나는 겁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아이의 피붙이들로부터 아이를 지켜야할 상황. 그걸 내가 온전히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사실 조금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정말로 일이 있기 전에는 아이의 지난 6년을. 너무 겁이 나서 내 손으로 돌이켜 보지 못할 듯 하다.

꼭. 봐야 할때가 온다면. 나는 그때 조금스럽게 일기장을 넘길 것이다.

그후로 풍풍의 눈과 같은 잠잠하고도 평화로운 하루가 계속되고 있다. 아이는 일기장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자고. 낮이면 위층 노파에게 가서 알아 듣지도 못하는 중국말들을 알아 듣는 양 듣고 오기도 하고. 노파도 아이가 가면 무엇이가 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가끔은 나도 같이 가서 차를 마시거나 유쾌하게 아이와 노파의 통역이 되어주기도 한다. 꼭 필요한 말들만. 아이는 처음처럼 노파와 같이 있을때 늘 편해보인다. 노파의 눈안에서 아이는 17세에 잃은 딸이 된듯 눈빛은 날이 거듭될수록 뚜렷해지는 듯하다. 노파가 치매 걸린 노인인지 나는 그 어느 순간에도 느끼지 못했다. 타박 타박 쿵. 으엉 으엉. 나무슬리퍼 소리도 노파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죽었다는 샤오화를 찾으러 가는 소동의 소리도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연꽃발 여인은 아무데도 마음데로 가지 못한다 뜻이라 했다.

연꽃발은 족쇄와도 같아서 집에 불이나도 빨리 걸을 수 없으니 도망도 가지 못하고 뒤뚱뒤뚱 오리처럼 걷다가 불에 타 죽을 수도 있었다 했다. 노파도, 나도, 아이도 제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하마터면 뒤뚱거리다가 이내 타죽고 말았을 것이다.

감추어져서 보이지도 않았지만 노파의 연꽃발만큼이나 일그러지고 뒤틀려버린 아이의 시간, 꼬긱꼬긱 펴지못해 접어두었던 쓰라린 내 지난 시간도 흉물스럽지만 더이상 숨길것도, 가려야할 이유도 없어졌다. 노파의 발은 이미 일그러지고 틀어져서 고칠 수 없지만 아이 마음의 족쇄, 내 마음의 그것은 아직 그렇게 많이 틀어지지는 않았으니까……그러니까 내가 아이를 위해 앞으로 감당해야할 일들이 감추어진 연꽃발보다 아프고 힘들더라고 바로잡아 보려고 한다.

처음 보다 훨씬 편한 모습으로 아이는 잠이 들었고,

아이 엄마인 나는 잠자는 딸의 흐트러진 이불을 정리해준다.

여느 엄마들이 그녀들의 잠든 딸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으로.

여느 엄마들이 제 귀한, 귀해서 바라보는 것도 아까운 딸에게 하는 그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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