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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May 23. 2019

268쪽

세 번째 유실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도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서 있었다. 맞은편 할머니가 내 쪽으로 갑자기 뛰어왔다. 빨간불이었다. 내 팔을 붙잡으며 마음이 급해서 무단횡단을 했다고 하셨다. 할머니를 보며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는데 신호가 바뀌었다. 괜찮으니 어서 가보시라고 말하며 길을 건너는데 할머니의 혼잣말이 들렸다. 이렇게 금방 바뀔 줄 알았으면 기다리는 건데.

 지각 5분 전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자리에 앉았다. 같은 라인 맨 끝에 앉는 슬기 씨가 지나가면서 오늘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었다. 늦잠을 잤다고 말하고는 컴퓨터 전원을 켰다. 컴퓨터가 켜지자마자 회사 메신저가 깜박였다. 팀으로 들어가기 버튼 옆에 48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어제도 늦게까지 퇴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내 놓은 요청사항과 전달사항이 메신저에 쌓여있었다. 서로 맞물려 있는 업무들이 많아서 초대된 방도 많았다. 내용만 확인했을 뿐인데 벌써 24분이나 지났다. 띠로롱 소리와 함께 개인 메신저 창이 떴다.

     

 나무 : 안 오는 줄 알았네.

 희양 : 마음은 그러고 싶었죠.

 나무 : 언니가 먼저야.

 희양 : 행복에도 위, 아래 있습니까?

 나무 : 당연하지. 왜 이제 오냐고 (이모티콘)(이모티콘)

     

 나무 언니가 급하게 나를 찾을 땐, 두 가지다. 엄청 엄청 열 받는 일이 있거나, 엄청 엄청 화나는 일이 있거나. 둘 중에 어느 쪽인지 아직 감이 오지 않았다.

     

 나무 : 회사 로비에 새로 생긴 기계 봤어?

 희양 : 지각 5분 전에 들어온 제가 뭘 봤을까요?

 나무 : ㅋㅋㅋㅋㅋㅋ

     

 언니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데 언니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저거 봐, 저거 점심시간인데도 줄 선 사람들 봐라.”

     

 도봉산 올라가는 길에 어설픈 파라오 형상을 한 손금을 봐주는 기계가 있었다. 산 오르는 초입에 왜 저런 흉물스러운 물건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어릴 때 생각했다.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지만. 3000원을 투입하고 파라오 가슴에 손을 넣으면 손금을 봐주는 기계였다. 10명이 손을 넣으면 5명의 손금 풀이가 똑같은 엉터리 기계. 기계의 목적은 푼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지문이 아니었을까? 어린 나는 늘 의심했지만, 사실로 확인된 바는 아무것도 없다.

 회사 로비에 새로 생긴 기계는 겉모습이 흡사 스티커 사진 촬영 기계와 비슷해 보였다. 용도는 다르지만, 겉모습은 비슷해 보였다. 기계의 작동법은 쉽고 간단했다. 버튼을 누르고 카메라에 눈동자를 맞추면 눈동자를 보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기계가 말해주는 것이었다. 저걸 무어라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인공지능 점쟁이 정도 되려나? 아니면 독심술 기계? 그것도 아니라면 미래파?

     

 “왜 생긴 거래요?”

 “모르지”

     

 기계가 왜 생긴 건지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들여놓은 기계라는데 정말 믿어도 되는 이야기일까? 여긴 학교가 아니라 회사다. 일한 만큼 돈을 받아가는 곳. 아니다, 소처럼 개미처럼 일해도 일한 만큼은 절대 받아갈 수 없는 곳. 그런 곳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런 요상한 기계를 직원들을 위해 설치했다고?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아무렴 어때 공짜잖아, 심심풀이로 하는 거죠, 재밌던데 양대리도 해봐.

     

 “넌 너무 예민해. 머리 아프게 그런 생각을 왜 해. 못 믿겠으면 이용하지 마.”

 언니가 내 식판의 햄을 집으며 말했다.

 

 “혹시 그거야?”

     

 그거라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덜컥 겁이 났다. 식판에 햄은 2개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런 대꾸 없이 밥과 햄 2개를 집어 입속으로 모두 욱여넣었다.

     

 “그, 그거 있잖아. 어떤 다른 세력이 있을 거라고 믿는 그거”

 “음모론이요?”

 “응, 맞아 그거 음모론자”

     

 졸지에 그렇게 음모론자가 되고 말았다. 나무 언니는 웃으면서 여기저기 내가 한 말을 퍼트리고 다녔다. 떠들고 와서는 자기가 어느 파트 누구에게도 그 얘길 했다면서 잘 찾아보면 회사 안에 나와 같은 음모론자가 두어 명 정도 더 있을지도 모른다며 깔깔대며 웃었다. 기왕 이렇게 음모론자가 된 김에 나무 언니에게 정보를 얻어 기계를 이용한 사람들 리스트를 만들었다. 구글로 만든 설문 폼을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에게 메신저로 보냈다. 설문의 내용은 간단했다.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대략 무엇을 물어보았는지. 정말 기계가 생각을 알아맞히고 거기에 맞는 대답을 해주었는지 묻는 주관식 설문이었다. 사람들의 질문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놀라운 사실은 기계가 말해준 대답이었다. 대략 50여 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설문 폼을 보냈는데 모두 같은 대답을 들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묘하게도 기계의 대답은 어떤 질문에도 그럴싸하게 들어맞았다. 자신이 한 질문에 대해서 밝히지 않은 10명을 뺀다고 해도 모든 질문에 꽤 괜찮은 대답이 되어주었다. 무릎팍 도사도 울고 갈 정도의 대답이다. 어쩌면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건 직원들의 생각이나 질문이지. 대답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처음부터 기계는 같은 대답을 하도록 세팅되었을 수도 있다. 어떤 질문을 머릿속으로 떠올린다고 해도 기계에 입력된 값이 하나라면 다른 대답은 있을 수 없다. 여러 가지로 생각했을 때, 다른 대답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50명의 설문자에게 모두 같은 대답을 들었다고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건 무척 김새는 일이기도 하니까. 우습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질문이 노출될까 꺼려서인지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서로 대놓고 말하지 않는 눈치였다. 누군가 한 명이 말하게 된다면 이 눈치 싸움은 끝이 날 테지만 1을 외치는 용감한 사람이 나타날까?

     

                                           

***


     

 동네 버스정류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출근은 싫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좋다. 가방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꺼냈다. 아침 일기예보에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하늘은 흐리지 않았다. 눈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핸드폰으로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곧 버스가 도착한다는 표시가 떴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컴퓨터를 켜기 무섭게 나무 언니에게 메신저가 왔다. 그건 내가 접속하기를 기다렸다는 알림 이기도 했다. 

 “놀라지 마”

 “이미 놀랄 준비 했어요. 오늘은 무슨 일인데요??”

 “내가 오늘 일찍 출근하는 바람에 기계를 이용해봤거든.”

 몸이 모니터 쪽으로 기울었다. 조금 시간차를 두고 답했다.

 “??”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대답이었다. 최대한 티 내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 대답은 처음부터 들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기계가 그렇게 대답했어요? 뭐라고 질문했는데요?”

 “대박은 질문이 아니야. 궁금하잖아.. 다른 사람들은 무슨 대답을 들었는지 그래서 몇 명한테 물어봤거든” 언니다운 방법이었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물었다.

 “진짜요? 그랬더니요??? 어떻게 됐는데요?? 궁금해요~ 얼른 말해줘용”

 “5명의 사람한테 물었는데 5명 모두 똑같아. 하나같이 다 똑같다고”

 사람들의 눈치 게임을 끝낸 1은 나무 언니였다. 왠지 언니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했지만 아니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예상이 빗나가면 나는 언니를 조금 다르게 볼 것이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언니는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기회를 얻게 되는 거니까. 빗나가지 않는 언니라서 다행이고 안심이 되면서 한편으론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언니가 기계처럼 느껴졌다. 마치 같은 대답만 하도록 세팅된 하나의 값처럼.

 

 회사 안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졌다. 회의 시간에도, 업무 외적인 시간에도. 사람들은 그 대답을 만능키처럼 사용했다. 일이 이쯤 되면 기계 앞에 사람이 줄어들 법도 한데 기계 앞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이미 대답을 아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줄 선 사람들 중 누군가는 자신만은 다른 대답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그 기계 앞에 서 있는 건지도 모른다.  

 101번째 사람은 마케팅 부서 박 주임이었다. 유일하게 다른 말을 들은 첫 번째 사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박 주임의 질문이 뭐였을까, 궁금해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왔다. 급기야 박 주임의 눈을 30초간 쳐다보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도 안 되는 미신까지 떠돌았다. 이번엔 사람들이 기계 앞이 아니라 박 주임 자리로 가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날, 미팅룸 앞에서 박 주임을 만났다. 우연을 가장했지만, 우연은 없었다. 오후 4시에 마케팅 부서 회의가 있다는 말을 건너 듣고 휴게실 앞에서 피곤한 척 넋 놓고 앉아있었다. 박 주임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안에서 의자 끄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머신 앞으로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눌러놓고 뒤편 회의실을 슬쩍 쳐다봤다. 블라인드가 걷히고 미팅룸 밖으로 사람들이 나왔다. 내 뒤로 누군가 줄을 섰다. 박 주임이었다.

 “오늘도 회의가 꽤 길었네요”

 “맨날 똑같아요.”

 “그렇죠, 하는 얘기야 거기서 거기니까”

 어떻게 물어보면 어색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커피머신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래도 박 주임님은 요즘 좋으시겠어요. 남들과 다른 대답을 들으셨잖아요”

 “아~ 그거요. 그게 좋은 일인가요? 로또 당첨도 아닌데”

 “로또 당첨이나 마찬가지죠. 유일하게 다른 대답을 들으셨잖아요”

 “그런가요??”

 커피머신에 두 번째 빨간 불이 들어왔다.

 “저도 다른 대답 듣고 싶어요”

 “제 눈을 보세요. 원하는 일은 뭐든 이뤄주는 눈입니다”

 “소문이 거기까지 났나 보네요”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자리로 찾아오니까요, 인기인의 삶이란 이런 건가? 최근에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각자의 커피를 들고 헤어지려는데 박 주임이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좋은 기운을 나눠주려나 보다 생각하고 박 주임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받았다. 뜻하지 않은 눈싸움이 되어가려던 찰나 박 주임이 내게 말했다. 사랑이... 그렇게 말하고선 혼자 배시시 웃더니 가버렸다. 뭐야? 웃긴 얘기면 같이 좀 웃게 말이라도 해주고 가지. 사무실 책상으로 걸어가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사랑이 뭐? 사랑이 대체 뭘 어쨌다는 건데?? 신기한 것은 일하는 내내 반쯤 잘린 말이 의자 어딘가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 사랑이 비밀을 내게 알려준 사람은 나무 언니였다.

     

 “좀 웃기지 않냐?”

 언니는 떡볶이를 헤집으면서 말했다.

 “다른 대답이라고 하길래 엄청난 말을 기대했는데 의외이긴 했어요”

 “그런 대답은 나라도 하겠다 내참, 어이가 없어서”

 사람들이 박 주임 자리까지 가서 줄을 서는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지하철 개찰구에서 헤어질 때까지 언니는 이야기했다. 어이가 없어서, 라는 말을 꼭 덧붙이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이가 없어서, 어이가 없어서, 어이가 없어서.

  

                                           

***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바람이 세게 불었다. 머리가 다 흐트러져서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다. 누군가 내 등을 툭툭 치길래 돌아봤더니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나를 색시라고 부르더니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찾기 시작하셨다. 가방에서 꺼낸 것은 종이 뭉치였다. 손에 쥐고 있는 종이 뭉치와 할머니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색시가 그동안 여기 떨어트리고 간 거 주워서 가지고 있었어. 찾으러 올까 봐서”

 어째서 그것이 할머니 손에 들려있을까? 버린 것이 아니라 읽히기를 바라면서 일부러 떨어트리고 간 것이었는데 말이다.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몰라 종이 뭉치를 가만히 내려보았다. 저것들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었던가? 내 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할머니를 쳐다봤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것들을 가방에 도로 넣으셨다. 막 도착한 140번 버스로 향하면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버스를 타고 떠나는 할머니를 보면서 오늘은 눈이 내릴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3월의 하늘은 흐리지 않았다.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창 밖을 봤다. 똑같은 하루의 아침 풍경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조금만,

  사랑이,

    조금만.



사랑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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