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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May 02. 2019

에어컨 귀신

두 번째 유실물 

 

 7월이 되면 우리는 개울에 자주 모여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자기 이야기가 더 무섭다며 목소리를 키우는 모임이었다. 봉석이는 머리에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더 큰 땜빵이 있는 친구다. 별 이야기 아닌데도 매일 으샤샤, 라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놀라곤 했다. 골려 먹는 재미가 있던 녀석인데 그날따라 자기 집에 에어컨 귀신이 있다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길 시작했다. (에어컨이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귀신이 되는 거지?) 친구들은 봉석이 얘기라면 일단 믿고 거르는 편이었다. 그날따라 어찌나 울상 같은 얼굴에 더 울상 같은 얼굴로 말하는지. “진짜야!!”라며 눈썹이 팔자가 되도록 힘을 주어 말했다. 다들 쉬어가는 느낌으로 에어컨 귀신 이야기나 한번 해보라고 기회를 줬다. 자기 차례에 지레 겁을 먹었는지 비 맞은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개울에 모인 열댓 명의 아이들 모두 별 기대 없는 눈빛으로 봉석이를 쳐다보았다.


 거기 앉아서 이야기해도 될 텐데 아이들의 관심이 좋았는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울가로 봉석이가 걸어 나왔다. 어디선가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개중에 한 서너 명은 봉석이를 밀쳐서 개울가에 빠뜨리고 싶어서 안달 나 있었을 테지. 앞에 선 봉석이가 눈을 세 번 정도 끔뻑이더니 주변을 느리게 두리번거렸다. 아이들도 봉석이를 따라 덩달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뒷산과 물 흐르는 소리와 까만 어둠뿐이었다. 저러다 혼자 놀라 물에 빠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이들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준구가 민섭이에게 아주 작게 말했다. “저 자식 개울가에 밀어 넣고 우리 전부 도망갈까??”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봉석이가 그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집 에어컨 속에 눈이 있어. 바.. 바.. 바람구멍 날개 속에 눈알들이 몇십 개씩 바... 박혀서”


 말하고 있는 봉석이의 눈이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냇물 흐르는 소리와 까만 어둠. 봉석이의 까만 눈동자가 어둠 속에 떠 있었다. 어디선가 “쟤 지금 뭐라는 거냐?”는 말이 들렸다. 개울에 발목이 잠긴 봉석이가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아이들 모두 봉석이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말을 내뱉은 봉석이뿐이었다. 너무나 가엾게도 말이다. 도대체 누가 그런 거짓말을 봉석이에게 한 것일까? 봉석이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에어컨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모르는 눈이 희번덕 희번덕 거려. 따라와, 바.. 바람, 바람 밑에 있지 마.. 바람 밑에 있으면 안 돼. 날개 안에 눈이랑 마주치면 돌이 돼. 돌로 변해. 그러면 죽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준구가 개울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빙신 귀신님, 더위 잡수시고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거예요?” 아이들은 재미없다는 듯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집에 가려는 아이들 뒤로 아주 작게 봉석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죽어, 진짜인데…. 에어컨 귀신 있어. 눈이 자꾸, 자꾸만 따라와. 오른쪽, 왼쪽, 왼쪽, 오른쪽, 오른쪽, 왼쪽”


 그날 준구는 무슨 이유에선지 봉석이를 개울가에 밀어 넣지 않고 집으로 갔다. 개울가를 돌아보니 봉석이의 눈이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자기도 데려가라며 뒤쫓아왔을 녀석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대로 서 있었다.


 봉석이의 말도 안 되는 에어컨 귀신 이야기는 효과가 아주 대단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아이들 한두 명이 집에 혼자 있을 때,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아무도 에어컨 귀신을 믿지 않는다고 입을 모아 말했는데도 말이다. 에어컨을 켤 때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시나무 떨듯 서 있던 봉석이가 생각 나서였을까? 바.. 바람, 바람 밑에 있지 마.. 바람 밑에 있으면 안 돼. 날개 안에 눈이랑 마주치면 돌이 돼. 돌로 변해. 그러면 죽어. 이야기보다 에어컨 귀신에 대해 말하던 봉석이를 잊을 수 없었다. 봉석이를 따라왔던 눈은 어떤 눈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어컨 속을 들여다보면 봉석이의 목소리가 더욱 가까이서 들렸다. 그러면 죽어.
 
 그해 여름엔 장맛비가 꽤 길게 내렸다. 어른들은 한 해 농사를 다 망쳤다고 울상이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봉석이의 오래된 슬리퍼 한 짝 밖에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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