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문 밖으로 나선다. 하나는 어둠 속에서 혼자임을 느끼지만, 무섭다는 생각을 반대로 뒤집으며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리며 출근길을 재촉한다. 생각은 자꾸만 나아가는데 나아가는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내릴 곳을 놓치고야 만다. 생각을 줄이자 했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만 될까.
여러 사람들이 모여 수요일마다 글을 쓴다. 다정하며 다감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각자의 손에 봉투 하나씩을 들고 어떤 이는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또 어떤 이는 팥앙금이 많이 든 단팥빵을 또 어떤 이는 감자를 가지고 나오는 작고 소소한 모임이다. 하나의 주제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것들을 따로 따로 분리하지 않고 이어서 쓴다. 그렇게 합쳐진 이야기는 하나인 것도 같고, 흩어진 조각같기도 하다. 같이 두고 보면 따로라고 말하기도 어렵겠지만 말이다.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는 손들이 부산하다. 그 부산함 속에 오고 가는 서로의 안부들. 누군가는 그 모임을 비생산적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경쟁의 우위를 두고 본다면 그럴테지만. 사람은 앞다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사라진 이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내달린다. 누군가 주소를 물으면 모른다. 모르면서 가는 일. 그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멋진 일이기도 하다.
안개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답은 무엇일까? 나는 그러한 정답을 내 답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그걸 답으로 가져올 수 없기에 그렇게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동그란 수박안에 씨가 있다. 이 씨가 없으면 수박은 생겨날 수가 없다. 그러한 줄무늬를 나는 간직하며 본다. 서로의 다른 줄무늬 속에서 느껴지는 어떤 통일감. 그런 해방감 속에 우리는 다시 같은 선상에 놓여질 수 있다. 사람은 비슷비슷하고 어쩌면 다 똑같다. 거기서 거기일지도 모른다. 그걸 깨닫기까지 우리의 모임은 앞으로 몇번이나 더 예정되어 있을까? 사실 나는 쓰는 일이 즐겁지만 조금 지치고 피로하기도 하다. 허나 내뱉은 말이 있고, 지킬 것이 있어 여기 나와 쓴다. 갈 수 있는 다른 곳이 없어서. 그렇게 누적하며 가는 일. 그 일이 설레여서 새벽같이 일어난다. 일할 자리의 기쁨. 더이상 주저앉으면 안 될텐데 하면서도 사실상 자신은 없다.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없어질 때 옆 사람의 얼굴을 본다.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전혀 이상하지 않은 얼굴을.
눈이 맑고 예쁜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간다. 나는 큰 창에서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본다.
"이모, 보고 싶을 거야"
저렇게 오래 얼굴을 내놓으면 안 될 텐데 걱정하면서도 그 얼굴이 사라질 때까지 보고 또 본다. 내가 선물한 엉터리 곰인형은 아이의 품에 있다. 아이를 지켜주고 싶어서. 아이가 혼자라 느껴지고 이유없는 슬픔이 찾아 올 때 그것을 꼭 안으면 다시 뒤집히는 모래시계처럼 금방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며 횡단보도 앞에 선다.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 속에 건너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조금 망쳤지만 다 망친 것은 아니다. 길가 담장에 핀 장미처럼. 긴 침묵을 배우며 붉게 다시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