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야.
지난 토요일 나는 퇴사를 했어. 원래 퇴사할 예정이었는데 퇴사 일정보다 훨씬 앞당겨 퇴사를 했고, 일하는 중에 지금 당장 그만둘 테니 당신 혼자 알아서 다 하라고 하고선 시원하게 욕 박고 나와버렸지. 상대는 왜 갑자기 이렇게 흥분을 하냐면서 사과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되려 내게 ”후회 안 하시겠어요? “라고 물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더 참을 수가 없었어. 후회 안 한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하고선 알바생에게 짧은 인사말만 건네고 그대로 나와버렸어. 그 사람과의 트러블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더는 참을 수 없겠더라고. 아마 지난 트러블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그 사람의 태도가 자기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거봐, 너가 잘못했지?‘ 라는 태도로 의기양양하게 나와서 그때의 분노가 마음속에 남아있었나 봐. 결국 참고 참았던 분노가 터져버린 거지.
이곳 말고 더 내 마음을 솔직히 써두는 비밀공간이 있어.
거길 없애야지 없애야지 했는데 그러질 못 했네. 사실 그 공간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공간이라 친한 친구들, 사람들 그 누구도 모르는 곳이거든. 한 번도 오픈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 곳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그곳까지 찾아와서 나를, 나라는 사람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싫어해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겠지. 뭐, 이젠 상관은 없지만..
아빠는 이번 일로 나를 나무라지 않았지만, 엄마도 마찬가지고. 왜냐면 거기서 내가 당했던 일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고 갑질이 맞으니까. 거길 망하게 만들 생각 같은 거 없어. 물론 월급과 퇴직금이 들어오는 걸 봐서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 정말로. 그렇게 그곳에서의 좋았던 시간까지 망치고 싶진 않거든. 아빠가 그러더라 그 사람들이 너를 그렇게 대하도록 행동한 부분은 없는지 너 자신도 잘 돌아보라고. 아빠는 내 아빠지만 가끔 너무 아픈 곳만 정확히 찔러. 아빠 미워 (그렇지만 사랑해)
대학교 1학년 때 일이야. 복학생 호청년 오빠가 있었는데 학과 아싸였던 나를 잘 챙겨줬었어. 그때 나는 다른 복학생 오빠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오빠가 이렇게 하자면 그렇게 하고 저렇게 하자면 이렇게 했었지. 그날도 학교 수업을 째고 소풍을 가자길래 따라서 쫄래쫄래 가고 있었는데 나한테 잘해주던 호청년 오빠가 수업 안 듣고 어디 가냐고 수업 들어야지 했는데 가볍게 무시하고 좋아하던 오빠 따라 자체 휴강을 때려버렸지. 방학 때였는지, 그냥 주말이었는지 호청년 오빠한테 안부 전화가 왔었어. 어디냐고 오늘 날씨가 너무 좋은데 집에만 있지 말고 나와보라며. 학창 시절, 대학시절의 나는 어둠 그 자체였어. 물론 엉뚱하고 웃긴 애이긴 했지만. 그건 대외적인 이미지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집에 불 끄고 있는 걸 더 좋아했거든. 그땐 나만의 세상 속에 갇혀 살 때라.. 사람들을 편협한 시선으로 보고 판단하고 재단하는 게 더 컸던 시기였던 것 같아. 그때 내가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들은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나쁜 생각들이야. 여기 적어두진 않을래 왜냐면 나도 다시 보고 싶진 않거든. 그런 세상 속에 내가 살아가고 있었다니… 생지옥이었지. 한날은 오빠가 밤늦게 전화를 해서(술을 먹었는지 맨 정신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너는 왜 밥 사달라는 이야기를 안 하냐 힘든 얘길 안 하냐 물어봤어. 그때도 나는 농담으로 적당히 넘어갈라고 실없는 소리나 하하 호호 막 했던 것 같은데(철없던 어린 시절의 나..) 그날은 오빠도 양보를 안 하더라고, 집요하게. 그러다가 아주 잠깐의 침묵이 생겼는데 난데없이 오빠가 나한테 오빠의 비밀을 털어놓는 거야. 그땐 너무 어렸고,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 하나 감당하기도 힘에 부치던 시기라 오빠의 비밀을 품어줄 만한 여유가 없었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너무 크게 놀랐던 것 같아. 무슨 말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내가 아무 말도 못 하니까. 오빠가 놀랐어? 이러면서 그제야 장난이라는 거야. 그 말을 누가 믿어? 내가 바보야?? 그게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 왜 그때 오빠한테 ”그건 오빠 잘못이 아니라고 “ 말해주지 못했을까? 오빠가 오빠의 비밀을 털어놓은 건 오해 때문이었겠지. 나도 오빠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사실은 아니었는데 오빠가 아주 틀리게 본 것만도 아니야. 왜냐면 나도 비밀을 간직했던 사람은 맞으니까. 같은 비밀이 아니었을 뿐이지. 아마 오빠가 먼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면 내가 내 비밀을 말했을지도 모르지. 오빠가 그 당시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의 고백을 거절하면서 했던 말이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해. ”나 같은 놈 만나면 너까지 불행해져“
난 더 이상 나만 보던 어린 내가 아니야. 그만큼 성장하고 건강해졌거든. 오빠도 어디선가 비밀을 이겨내고 멋진 어른으로 잘 살아가고 있겠지?
내 모든 불행의 시작은 나 때문이었어. 내가 남들 눈치만 보느라 솔직해지지 못해서. 직접 물어보았으면 좋았을 일을 말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말자고 외면해서. 아직도 마음속에 분노의 불씨가 남아있어. 아마 모두 꺼지는 데는 조금 시간이 필요하겠지?? 내 분노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이미 그건 틀린 일 같아. 누군가는 원하든 원치 않든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과하진 않을 거야. 내 비밀공간은 초대한 적 없는 나만의 공간이니까. 그리고 누구도 내 마음에 대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강요할 순 없는 거니까. 퇴사한 곳 상사가 나한테 그러더라. 자기는 싫어하는 사람이 없대. 그러면서 나더러 왜 사람을 싫어하냐는 거야.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더라고. 내가 정말 사람을 싫어했으면 그짝 같은 사람이랑 겸상 안 하죠,라는 말이 목구녕까지 찼는데 차마 그렇게까진 말 못 했어. (대신 여기 적었네 ^^) 나도 가만히는 못 있는 성격이잖아. 아까 그 누구 기분 나쁘게 생겼다고 하지 않으셨냐고 그건 싫어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지. 그랬더니 그건 또 싫어하는 거랑은 조금 다르대. 무슨 궤변인지 모르겠지만. 뭐,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걸로 치자고.
어제 들은 설교 말씀도 정말 주옥같아서 그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샜네. 그건 뭐 차차 쓰지. 어차피 백수라 당분간은 시간도 많은데.. 다음 주엔 고딩 때 친구들이랑 오사카에 가. 친구들이 상처받은 영혼의 나를 많이 배려해 줘서 내가 여기 가고 싶다 하면 알겠다, 하며 우쭈쭈 해주는 중?이야. 이렇게 또 내 곁엔 좋은 사람도 많이 있다는 걸 확인받는 것 같아서 나쁘지만은 않아.
비밀공간은 곧 정리를 하려고 해.
어쩌면 진작 그랬어야 했는지도 몰라. 거기 찾아왔던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자기 자리에서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잘 돌봤으면 좋겠어. 건강하게 말이야. 이제 앞으로 나도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거야
내 행복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