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May 30. 2024

천사의 탄식

절망이 절망에게


          

안녕, 나야

 

오늘의 퇴고는 끝났어. 마음에 따라 이렇게 전혀 다른 길로 갈 수도 있구나, 있었구나.

끝났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서 실패하고 있어.

이건 나쁜 걸까?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아니야, 아무 대답도 하지 말아 줄래)

이 사람, 저 사람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많이 슬픈 걸까? 그렇다면 왜 슬픈 거지. 무엇 때문에?

아냐, 이것도 다 내가 그냥 그런 거겠지. 그런 생각의 생각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질문이라는 거야.

하나님을 아는 것과 나를 아는 것이 사실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거지.      

사랑은 이렇게 말해 볼 수도 있대


함께 있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자기 확장인데

나를 나로 두지 않고 상대방을 포함시킨다는 거야.

자기 확장은 말하자면 내가 너이고 너가 나인 거지.

둘 사이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거야.

네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게 내 일인 거고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게 네 일인 것처럼..

우리는 이러한 자기 확장의 사랑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거야.      

내 친구 킹은 모든 일을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하거든.

셋이 정말 한 몸처럼 붙어 다니고 움직여.

그때 킹이 웃으면서 나한테 “우린 하나야.” 이렇게 말했던 게 생각났어

어떤 심리학자도 나와서 그러더라.

인간은 원래 나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인데

가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곤 하는데 그것은 상대를 나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라고.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두 주인공 선재와 솔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훨씬 쉬울 거야.

이 지구상에 둘만 남겨진 느낌.      


믿는 자의 하나 됨은 상호순환, 상호내주

쉽게 풀이해서 옮기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대     

서로와 함께, 서로를 위해, 서로를 인해

존재하는 거지.      


내가 머리를 한 대 땅 하고 맞았던 대목은 여기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타인을 위해서 죽은 게 아니라는 거야.

(에엥?? 첨 듣는 전혀 새로운 변증)

예수님 존재 자체, ‘나’로 죽으셨다는 거지.

자기 확장의 사랑으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겠어??

    

예배 갈 때까지만 해도 화가 너무 나서 가면서도 계속 욕하면서 갔거든.

예배드리러 갔는데 예배 중에 ‘회개’라는 말만 나와봐라.

바로 나와서 하늘에 퍽킹 날리고 다신 교회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겠다 마음먹고 갔거든.

근데 예배의 첫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더라.

아, 진짜 하나님 양꼬치세요? 진짜 이러시기 있기 없기??

후련하게 미련 없이 떠나려고 했는데.. (아뿔싸, 망했다)   

  

자기 확장의 사랑은 한 번에 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면서 절망한 그 자리에서 절망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는데(대략 이런 뉘앙스의 말이었음)

제발, 그만해.

알겠어요, 그러니까 그만..

눈물이 안 멈추더라고.   


   

나 요새 이상해.

마음이 너무 요동쳐서 이게 내 마음인지 네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야.

웃는 얼굴 정말 좋아했는데

그 웃는 얼굴 보는 게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될 줄 몰랐잖아.


이 기분은 뭘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제 바보 같은 일들은 그만 멈춰야 하겠지?

근데 잘 멈춰지지 않아..

어떡하지??

모르겠어..


이것 역시 시간은 시간으로 해결해 주려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린 더 개쩌는 인간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얕은 믿음 정도야.

     

기도하고 있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나를 넘어서는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을 간절히 꿈꾸고 있어.

일단 살아있으면 살아가다 보면 사는 동안 하나님이 어떻게든 이루어 가시겠지?      

    

모두가 나를 떠나고 등져도

계속 나로 남아야 하니까.

나로 남을 사람이야, 나는.     



너도 너로 남을 수 있겠어??    




      

 당신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집을 떠나면 반가운 나라가 보이고 그곳에서 모두 함께 만나 울면서 춤춘다는 말도 차츰 무서워진다. 어떤 표정으로 당신을 맞이해야 할까? 바다의 별같이 화려할 수는 없겠지만 준비 없이 고통받기 두려워 한 발 물러서면서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모순. 미워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잡히지 않겠다고 도망 다닌다.      

    

       마종기 / 천사의 탄식 중












작가의 이전글 비밀의 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