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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Jun 02. 2024

입장표명 하세요. 얼른요~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꿍짜라 꿍짜

안녕, 나야.


하루에 두 개씩이나 업로드를 하다니 참 열심히네 그치?

오늘도 예배를 나갔자나..

저번주보다는 화가 많이 가라앉긴 했는데 분노가 다 사그라든 건 아니어서

예배당 가면서도 속으로 하나님을 막 협박하면서 갔거든.

내가 물어보는 거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고 똑바로 대답하셔야 할 거라고.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론 대답 안 하시면 너가 어쩔 건데? 막 이런 생각도 하면서 말이지.

근데 오늘 말씀 제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율법이 들어갔어.

에헤이~율법이요?? 법을 지켜라?? 벌써 듣지도 않았는데 듣기 싫어짐.

말씀도 하필이면 율법장 레위기여~

아, 이렇게 오늘이 마지막인 건가? 하고 있는데

역시나.. 무슨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시는 건지 모르겠는 이야기가 계속됨.

듣다가 뜬구름..이라고 노트에 적고 거의 반수면상태로 있었는데

갑자기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래.

제사의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태도와 중심이 중요한 거래.

오호~ 일단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음.

그렇지만 목사님이 설명해 주신 건 기독청년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노잼 버전이기에-

나는 그걸 이렇게 해석하고 받아들였어.      


엄청 엄청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

근데 그 연인이 매일매일 입으로만 사랑한다 하고, 나에게 시간도 안 쓰고 마음도 안 쓰고  

데이트하러 겨우 나와서는 돈만 있으면 누구든 살 수 있는 그런 선물 하나 띡 던져주곤 내 이야기도 안 듣고 내 눈도 안 쳐다보고 로봇처럼 앉아서 나 사랑해? 물어보면 영혼 없이 너 보려고 나왔잖아 이럼서 옆에서 내 말 안 듣고 딴짓만 하면서 말로만 계속 사랑하지 사랑하지 이러는 거야(와, 상상만 해도 벌써 화나네 ^^)

하나님은 그런 제사는 기뻐 받지 않으신다는 거야.

근데 사람들은 이제 형식에만 집중했다는 거지, 제사를 드린다는 것에만.

그러면서 이번 한 주는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써보자고 하면서 예시를 들어주셨는데 엄청 소소한 것들이었어. 예를 들자면 한 주 동안 잘 예배하기 위해 건강하기. 예배할 때 피곤하지 않도록 잘 자기. 하나님 너무 귀엽지 않아? 이 정도만 해도 봐주신다는 거잖아.

어~~(큐티뽀짝해)     


예배 끝나고 미술학원에 가서 퇴사를 하게 된 일과 지금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 쌤한테 주절주절 떠들었거든. 마음이 막 화가 났다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관찰하다 보면 내가 뭐 땜에 화가 났었지? 이러다가 또 막 화가 났다가 화가 난 나를 봤다가 왜 화가 났지? 다시 또 막 화가 났다가 화가 난 나를 봤다가 계속 이것의 반복이라고 했더니.


쌤이 딱 한 마디 하시더라 “메타 인지네요”


그러면서 다시 주일예배에 나가게 된 일과 하나님을 협박하고 못 살게 괴롭히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하나님한테 입장표명 하라고 하신 거냐며..

입장표명이란 말을 듣자마자 그전 회사 상사랑 요즘 기자회견 자주 하는 분이랑 동시에 오버랩되면서

헐.. 내가 지금 하나님한테 내가 가장 싫어했던 사람들이 한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하고 자각하면서 현타가 세게 옴.

어~~ (하나님 불쌍해..>>그 하나님 오늘 오후까지도 몹시 괴롭히다 온 사람)


저번 주의 하나님은 되게 다급한 하나님이셨어.

야, 왜 그래 또 나 그런 사람 아니야 하면서 맨발로 뛰쳐나온 하나님이었다면

오늘의 하나님은 안락한 소파에 앉아 샌드위치 먹다가 내 협박받고 왜 또 그러니 저번 주에 다 끝난 거 아니었니? 하면서 오이를 떨어트리는 하나님.

내가 상상한 하나님을 쌤한테 말하니까 오이를 떨어트리는 그 부분이 되게 귀여운 하나님 같대.

원래 신이라는 것도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명의 신이 있는 거 아니겠어?

다들 자신이 믿고 싶은 신만 믿는 걸 테니까.

내가 믿고 싶은? 하나님은 아마도 귀여운 하나님인가 봐.

그래서일까? 하나님한테 측은지심이 생기더라.

난 빡쳐서 퇴사하고 문 박차고 나왔지.

하나님은 나 같은 인간들 천지빼까리인데

쓰벌,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 나도 너네 하나님 안 하련다 이러고 그만도 못 두시잖아.

이게 바로 인간을 사랑한 신의 고통인 건가?     


쌤은 종교가 없으신데.. 내 이야길 한참 들어주시다가 돌아갈 곳이 있고, 토로할 곳이 있으며,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되게 좋은 일이네요. 종교의 순기능 같다고 하셨어. 그런 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일이기도 하니까. 기도할 대상이 있다는 것. 어쨌든 신한테 이야기하면서 나를 보게 되는 거니까. 이것도 일종의 메타 인지인 셈인가??

하여간 그래서 하나님더러 입장표명 하라는 일은 앞으로 좀 자제하려고. (멈추는 건 죽는 날까지 조금 어렵지 않을까, 기질상??)


난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남들 다 하니까 한다? 한다면 왜 해야만 하는가? 하고선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던 때가 있었거든. 그때 내가 붙잡았던 키워드는 쌤이 말한 것과 같아. 사람은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한다. 밖에서 아무리 얻어터지고 왔어도 집으로 돌아가서 위로받고, 위로하며 다독이며 가야 한다. 그게 바로 가정이고 가족이었던 거지.

맞아, 사람은 누구나 돌아갈 곳이 필요해.

시를 읽으면 사람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는 내 마음처럼 말야.

     

그러면 이제 앞으로 이 분노를 녹이기 위해 어째야 하는 걸까?

일단 SNS를 다 삭제했고요. 당분간 사람들을 많이 안 만날 계획이고요.

만나더라도 얼마 전에 해봉을 만났을 때처럼. 어떤 견해나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하찮은 일상적 대화만 나누는 관계들 있잖아. 그런 친구들만 만나야겠다 싶었어.

해봉 만났을 때 내가 분노게이지가 좀 높았을 때여서 막 싯팔 저팔 이러면서 욕을 계속하니까. 해봉이 놀란 거야. 원래 욕도 잘 안 하고 집, 교회, 집, 교회밖에 모르던 핵노잼 홀리몰리였거든.. 그랬던 내가 막 쌍욕을 하니까. 해봉이 교회를 안 나가면서 온갖 악이 너한테 다 달라붙은 거냐며.. 많이 놀란 모양인지 나를 이대로 그냥 둬선 안 되겠다 싶었는지 만날 친구 나밖에 없는 거 알지 않냐며 다음날도 같은 시간에 만나서 서브웨이를 가자는겨.. 그래서 연속 이틀을 내리 만났잖아.

헤어질 때마다 안아달라고 해서 허그 꼭 꼭 받아냄. (허그충 그건 바로 나)

에픽하이 오빠들 콘서트 실황 영화 보러 간댔더니 아, 미쓰리 그분 티비 나온 거 봤다고 해서 개빵터짐.

 예전에도 RM을 MR이라고 하더니 이 친구는 교육이 안 됨  내가 몇 번을 정정해 줬는데도 그거나 그거지 이럼서 개뻔뻔..(미쓰리 좀 웃기긴 했음. 쓰라 오빠 미안..)

     

고2 때 친구들 만나면 단골로 등장하는 20살 바닷가 내가 있거든..

그때 성인 됐다고 다 같이 어디 바다였지? 동해였나 거기로 여행을 갔는데

친구들 다 물에 빠져서 재밌게 노는데 나만 물에 안 들어가고 사연 있는 여자처럼 백사장 걷는 사진이 있어. 하필 그때 날씨도 구름 낀 날씨여서 보면 되게 음산하고 나도 되게 음산하게 찍혔거든. 그때 이야길 계속해 친구들이(한 마디로 놀리는 거지) 당시 왜 저래 이럼서 내가 엄청 꼴 보기가 싫었대. 나도 그 당시 내가 진짜 꼴 보기 싫었거든. 정말 지우고 싶은 흑역사 중에 하나지. 왜 그러고 다녔나 몰라. 으~ 다시 생각해도 나지만 정말 재수 털리네. 지금까지 그런 나랑 손절 안 하고 친구 해주는 착하고 고마운 내 친구들. (내가 더 잘할게) 갑분 사랑고백.      


아, 미술학원에서 쌤이 뭔가 목표가 있는 일 대신에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하셔서 무지성 칠하기, 라고 해서 오늘은 색 조합만 해서 빽만 여러 개 칠하고 집에 옴. 무지성 칠하기 하다 보니까. 무지성 시 쓰기를 해도 좋겠다 싶더라고. 아무 생각 없이 의미도 없이 아무 말 대잔치처럼 언어를 살살 굴려서 밀고 나가는 거지. 그렇게 쓰다 보면 지가 알아서 뭐라도 되어있지 않을까?


분노맨을 죽이기 위해 한동안 내게쓰기도 안 하고 소소한 일들(산책, 등산, 책 읽기, 맛있는 거 먹기, 요리, 영화 보기 등등)만 하면서 그렇게 한번 시간을 보내보려고. 그래도 쌤이 나 정도면 회복탄력성이 좋은 것 같다고 하심. 회복탄력성이 좋은 나를 잘 구슬려 앞을 향해 또 가야지.      

한동안 내가 조용하더라고 그러려니 해줘.

아니지, 드디어 조용히 살 수 있겠군 이럼서 원하던 대로 되었다고 안도의 한숨 쉬고 있는 거 아니냐?

갑자기 살짝 빡칠라 하네.. ^^

메타 인지로 다 보인다.      


아참, 하나님 너무 맘 푹 놓고 안락한 쇼파에 몸 기대고 앉아 계시지 마세요.

제가 담주엔 일본 가서 주일 예배 못 드리는데-

거기서 삶의 예배 드릴거구요. 친구들이 2박3일 내내 술 마시자 해서 2박3일 내내 술도 마실 겁니다.

우리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다녀와서 계속 이어나가 보자고욧!          

아우, 요새 화를 너무 냈더니 개피곤 함.

아무 생각 없이 바로 기절하기가 오늘 마지막 미션이다.      






그럼, 당분간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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