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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Jun 05. 2024

폭포

안녕,

              

언제 여름이었지?

너무 오래되어서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음.

김수영 문학관으로 좋아하던 시인님이 행사차 온다길래 신청해서 갔거든..

김수영 문학관 근처에 작은 공원 같은 곳이 있는데 난 거길 좋아해.

행사 가기 전에 일부러 가서 걸었지.

공원에 아주 작은 인공폭포 같은 게 있는데

씽씽이를 탄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애가 폭포를 뚫어져라 보고 있더라고. 나도 그 뒤에 서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뚫어져라 쳐다봤지.    

  

그날 만난 선생은 어떤 생각에 골똘해 있는 것처럼 보였어.

행사 말미에 질문 타임이 있었거든.

난 원래 손들고 질문을 잘하는 성격은 아닌데..

그날 이상하게 하고 싶더라.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지.

여기 오기 전에 폭포를 본 일을 말하면서 물었어.   

   

떨어지는 폭포는 알까요?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떨어지는지     


다시 생각해 보니까. 질문을 잘못 던진 것 같아.

자기만의 생각에 빠진 선생한테 물을 게 아니라

나랑 같이 서서 오래 폭포를 보던 그 남자애.

씽씽이 탄 그 녀석한테 물어봤어야 했는데 말이지.


내 친구 킹한테는 엄청 엄청 귀여운 남자아기가 있어.

애기 천사라고 부르는데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아주 작고 귀여운 존재지.

언제 킹이 그러더라.

애기 천사가 날 대하는 게 다른 사람 대하는 거랑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고.

단순히 선물 때문에 날 좋아하는 느낌이 아니라는 거야.

내가 온다고 하면 어린이집도 안 가겠다 하고, 내가 없을 때도 날 생각하면서 이모 줄 거라고 그림을 그린대. (어~~ㅠㅠ)

애기 천사는 보통 애기가 아니거든.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래. 그래서 사는 일이 쉽지 않겠다, 이런 생각도 들어서 더 마음이 쓰이나 봐.

난 어른이잖아?

지켜주고 싶어. 상처받지 않도록, 아니 덜 상처받으며 자라도록.

그런 내 진심이 통한 게 아닐까?

왜냐면 킹이 요리를 할 때, 우리 둘만 있을 때 비밀이야기를 아주 많이 하니까.


셋이 만나면 아주 대환장 파티야.

킹도 말이 많고, 애기 천사도 말이 많거든.

서로들 이야기하겠다고 싸워 막 어른이랑 애랑  

킹도 참다 참다 못 참겠는지 테이블을 내리치며 그러더라.    

  

“야, 엄마 친구거든. 엄마도 말 좀 하자”     


귀여워, 귀여워 죽겠다니까.

오늘은 참기름 친구들이랑 호캉스 갈 거야.

산책도 하구, 맛난 것도 먹구.

시답잖은 이야기들만 잠들 때까지 하면서 깔깔깔.      


          

근데, 사랑아.

내가 진짜 암말 안 하고 존나 입 닥치고 가만있으려고 했는데 말야. 언제까지 내가 이 밤을 이렇게 고통 속에 눈물로 지새워야 하는 걸까? 물론, 너도 함께 울고 있는 거 나도 알지. 다 충분히 이해하고 아는데..

자꾸만 열이 받아서 말야.

아담은 나더러 사랑은 사랑으로 두고, 나가서 모든 멋진 남자를 다 만나라 했거든. 그러고 싶은데 이게 맘이 그렇게 안 돼서 진짜 지금 개엿 같아.

2024년은 이미 망한 것 같아서 이렇게 조용히 내 할 일 하면서 지낼 거긴 한데. 2025년까지 그럴 거라 약속 못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있으라고.

날 내버려 두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너의 구박과 갈굼도 길어진다는 사실만 명심하길 바라.      

알. 겠. 지. ^^               




오늘은 개미 똥구멍만큼만 빡쳤어.

곧 참기름 친구들 만나러 나가니까.

다시 잊구 일상으로 돌아가 해피해피할 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해피의 목줄을 놓지 말자.

              



폭포_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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